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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지원에 관해서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09. 11. 29. 11:14
- 박지원에 관해서
- 박지원(朴趾源, 영조13-순조5, 1737-1805) 조선 후기의 소설가. 문신. 학자. 서울 출생.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烟湘). 열상외사(洌上外史). 아버지는 사유(師愈),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이다. 연암은 이런 명문 거족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에 그의 아버지 사유(師愈)가 일찍 죽으므로 그의 조부인
필균이 양육하였다. 1752년(영조28년)에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혼인하면서 {맹자}를 중심으로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다. 수년간
학업에서 문장에 대한 이치를 터득하였고, 처남 이재성과 더불어 평생 문우로 지내면서 그의 학문의 충실한 조언자가 되었다. 1760년
할아버지가 죽자 생활은 더욱 곤궁하여졌고, 1765년 과거에 응시했다가 실패한 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 백탑(白塔) 근처로 이사하여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유금 등과 이웃하면서 학문적 교류를 가졌다.
그러나 당시 홍국영이 세도를 잡던 시기라 벽파인 그의 생활이 어럽게 되어 결국 황해도 금천(金川) 연암협(燕巖峽)으로 은거하여 농사와 목축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된다. 이때 그의 아호가 연암(燕巖)으로 불려진 것도 이에 연유한다. (1780년(정조4년)에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이
청고종 70세 진하사절로 북경에 갈 때 수행하여 압록강을 거쳐 북경. 열하를 여행하여, 그후 열하일기라는 불세출의 견문록을 남겼다.
1786년 음사(陰仕)로 선공감 감역 등 말직에 머물다가 1792년 안의현감(安義縣監)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
1800년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1805년 69세의 일기로 그의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안의현감 생활을
하면서 쓴 (열하일기)와 면천군수 시절에 남긴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 등은 연암의 현실 개혁사상을 이론적으로 펼쳐보인 대표적인
저서에 속한다. ●한문소설* (열하일기) 옥갑야화에 수록 <허생전>* (열하일기)
궐내정사(闕內程史)에 수록 <호질(虎叱)> : 도학자의 거짓과 간악(奸惡)함을 풍자. 액자식.* 방경각외전(소위 9傳)에 수록
<마장전(馬 # 傳)> : 미천한 자들의 교우(交友)를 통해 충의에 대한 재래적 견해 비판. 양반 사회
비판<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 천민(賤民)의 성실성과 양반의 무위도식을 비교<양반전> : 양반의 타락과
무위 도식 풍자<민옹전(閔翁傳)> : 올바른 삶의 길을 소설의 효용에 실어 전달<김신선전(金神仙傳)> :
신선 사상의 허무맹랑함 풍자<광문자전(廣文者傳)> : 거지인 '광문'을 통해 미천한 자의 의로운 삶을 칭송(건강하고 소박한
삶의 인간형 제시)* 주제별1)중상주의적 이상향 추구 : 허생전2)허위에 찬 양반 풍자 : 호질, 양반전,
마장전3) 문학관 제시 : 민옹전4) 인간성 옹호 :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양반전-박지원(연암집 제 8권
'방경각외전')강원도 정선에 학덕이 높은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관곡을 빌어다 먹었는데 천 석이나 빚을 지게
되었다. 순찰 중인 관찰사가 천 석이 부족한 것에 대노하여 군수에게 그 양반을 하옥시키라고 명한다. 빚 갚을 방도가 없는 양반은 밤낮 울기만
한다. 양반이 되기를 소원하던 서민 부자 한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양반을 찾아가 관곡 천 석을 갚아 주는 대신 양반 신분을 양도받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수는 양반 신분의 매매 증서를 만들어 서명해 주기로 하고 고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은다. 군수는 양반권 매매 증서에
양반으로써 행해야 할 형식적 행동 절차 백 가지와 갖가지 권리를 열거했다. 부자 서민은 양반의 생활이 겉치레뿐이고 구속이 심하여 갖가지 월권
행위가 도둑들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여 결국 양반이 되기를 포기한다. ▶갈래 : 한문 소설, 단편소설, 풍자
소설,고전소설, 골계소설▶문체: 산문체, 역어체, 문어체▶사상적 배경 : 실사구시(實事求是)▶성격 :
풍자적▶풍자대상 : 무위도식하는 무능한 양반, 분수없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상인계층▶주제 : 양반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과 풍자.▶표현상의 특징-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 모습을 비판 풍자함-전대(前代)에는 불가능했던,
평민 부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함-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근대 의식을 보여 줌-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 사상을 문학
작품 속에 반영함-소재를 현실 생활에서 취하고 사실적인 태도로 묘사함-'도둑놈'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횡을 일삼는 양반을 풍자적으로
고발함▶ 배경① 시대적 배경: 1745년 9월② 공간적 배경: 강원도 정선③ 시대적 배경: 18세기
신분변동이 활발하던 시기④ 사상적 배경: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조선 후기는 임진 병자 양란의 후유증으로 조선 건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상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발달 등으로 평민 부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한편 당시의 지배 관료층은 혼란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공허한 명분에 얽매여 있었으며, 관료 사회의 부패 또한 자심하였다. {양반전}은 이와 같은 조선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문학적 의의① '호질(虎叱)', '허생전(許生傳)'과 함께 실학적 안목으로 양반
사회를 풍자 비판한 국문학상 대표적인 작품으로 근대문학적 성격을 띠었다.② 실학사상 선양에 크게 기여하였다.크게 다섯
단락을 나누어지는데, 양반 매매 증서를 중심으로, 부자의 인식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제1단락: 곤궁한 처지에 빠진 한
양반▶제2단락: 부자가 양반의 신분을 삼▶제3단락: 군수의 양반 위로▶제4단락:① 양반 매매 증서1- 양반
문권(文券)에 규정된 엄격한 준수 조항은 형식과 가식에 얽매여 꼼짝도 할 수 없게된 양반 사류(士流)의 모습을 희화화② 양반 매매
증서2- 세덕에 기대어 무단을 자행하는 일그러진 양반의 작폐 표출▶제5단락: 부자의 양반 포기▶양반: 어질고 글읽기는
좋아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물.▶양반의 처: 양반이란 신분에 회의하는 현실적인 인물('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걸'이란
말)▶서민 부자: 부자이지만 양반 신분이 부러워 양반을 샀으나, 양반의 허례 허식과 도둑과 같은 특권 신분임을 알고는 포기하는 건실한
인물▶ 군수: 정선 고을의 군수로, 교활하지만 반대로 양반 신분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외집燕巖外集}의 (방경각외전)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선비란 것은 천작이며, 선비의 마음은 곧 '지(志)'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뜻이란 어떠한 것인가. 첫째, 세리(勢利)를 꾀하지 말 것이니, 선비는 몸이 비록 현달하더라도 선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몸이 비록 곤궁하더라도 선비의 본분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 소위 선비들은 명절(名節)을 닦기에는 힘쓰지 않고 부질없이
문벌(門閥)만을 기화(奇貨)로 여겨 그의 세덕(世德)을 팔고 사게 되니, 이야말로 저 장사치에 비해 무엇이 낫겠는가. 이에 나는 이 양반전을 써
보았노라.이처럼 박지원은 임진 병자 양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평민의식의 성장과 이에 따른 조선 전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붕괴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철저한 유교적 신분 질서의 와해는 급기야 유교적 질서의 붕괴를 가져오고, 시민 정신의 발아라는
근대정신으로의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양반 관료층은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명분에 집착하여 변화를 거부하면서도 전통 양반으로서의
자질을 잃고 있었다. {양반전}은 이와 같은 조선 후기 사대부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이 시대의 이상적인 선비형을 제시하고자
했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있었다. 그는 성질이 어질고 정직하지만 매우 가난하여 군에서 꾸어 먹은 환곡이 천 석에 이르렀으나 갚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관찰사가 순행하다가 이 사실을 알고 양반을 잡아들여 벌주려 한다. 이때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천민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항상 신분이 미천한 것을 한탄하였다. 그러던 중 이 사실을 안 양반이 대신 천 석의 환곡을 갚고 양반을 산다. 환곡을 갚은 것을 안
군수가 양반을 위로하려고 집을 방문했으나 이미 양반을 판 후라 상민이 되어 있었다. 전후 사정을 안 군수는 부자 양반을 칭찬을 하고 문권을
만들어 이 사실을 군민들에게 밝히기로 한다. 군민을 모아놓고 군수가 밝힌 첫 번 문권엔 양반이 지켜야 할 준수 사항을 하나하나 열거하는데 무려
30여 가지가 되었다.".....소매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먼지를 털어 물결 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양치질해서 입내를 내지 말고,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느릿느릿 신발을 끈다......손에 돈을 만지지도 말고, 쌀값을 묻지도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떠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지식 쑥쑥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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