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109화 |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1강.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백년, 18세기 조선 | 2011.07.25 |
110화 |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2강. 조선 후기 최대의 필화사건 문체반정 | 2011.07.26 |
111화 |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3강. 연암과 다산, 평행선을 그린 두 천재 | 2011.07.27 |
112화 |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4강. 발랄하고 유쾌한 여행기〈열하일기〉 | 2011.07.28 |
2012.11.21.수 KBS 2TV, 「TV특강」은 고미숙 선생의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정조시대의 지식인 집단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비교하는 재미있는 강의였습니다.(2011.7.27.방영)
연암과 다산은 생전에 서로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두사람은 이질적이었습니다. 연암은 노론계 주류에 속했지만 끊임없이 권력중심부로부터 이탈하려 했습니다. 젊은 시절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인계 다산은 유배 중에도 우국충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장난을 좋아하고 권위의식이 없었던 연암은 친구가 많았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모범생인 다산은 친구가 없었습니다. 연암은 소품문 같은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습니다. 다산은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 적극 나서 패관잡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책문을 올렸을 정도로 진중한 글쓰기로 일관했습니다. 연암은 유머러스했습니다. 다산은 진지했습니다. 연암은 동일성을 깨려는 사유를 했습니다. 다산은 지배체제의 전복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경학자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거대담론이 지배했던 20세기에는 다산이 각광을 받았지만, 그것이 해체된 21세기에는 연암이 조명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강사의 논지였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이었습니다만, 현대프랑스철학의 영향 아래 연암을 연역하는 것은 아니냐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시말해, 욕망을 긍정하면서 기존의 형이상학을 균열시키면서 유목민으로서 연대와 소통에 주력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적용시켜 이 시대에 적합한 기린아로 연암을 해석하려했지만, 현대의 철학사조로써 과거를 소급하는 방식이 타당한지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강사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연암과 다산의 속성은 아래와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① 연암의 속성 : 다양한 접근로를 개발해 기존인물에 대한 통념에 전복적 사유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에 보내는 길을 대개 택합니다만, 그는 자동차로 늘 함께 이동하면서 어머니를 유목민처럼 살아 있게 하는 방식으로써 고정관념과 위선을 깨고 있습니다.
② 다산의 속성 : 그러나 소통에는 아직 미흡한 편입니다. 무한책임자녀와 유한책임자녀는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한책임자녀가 무한책임자녀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무한책임자녀의 내성(內省)이 더 깊어져야 달성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을 이해해주는 것은 가벼운 소통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의 생각이 더 깊어져야 생각이 없는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