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영사암기(永思菴記)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1:46
영사암기(永思菴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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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성(開城)에서 잠시 지낼 적에 남원 양씨(南原梁氏)와 서로 무척 사이좋게 지냈는데 그의 종형제 수십 명이 하나같이 질박 돈후하고 꾸밈새가 적으며 남을 진실되게 사랑했다. 정녕 그 윗대에 거룩한 덕인(德人)이 있어 무한히 상서(祥瑞)를 발하고 음덕을 드리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급기야 그 분암(墳菴)을 둘러보니 산은 웅장하고 골짜기는 깊숙하여 등성이와 기슭이 굽이굽이 서려 있고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석인(石人)과 망주석(望柱石)은 크고 위엄 있으며 여러 모양의 봉분들이 나무가 뿌리를 서로 맞댄 듯이, 물이 여러 갈래로 나뉜 듯이 자리 잡고 있어, 마치 효도하고 우애하며 화목하고 믿음 있는 가문이 담을 잇대어 가지런히 집을 지어 놓고 집기를 서로 빌려 쓰고 곡식과 포백(布帛)을 사사로이 숨겨 두지 않고 사는 모습과 같았다. 진실로 그 자손들 가운데 돈후하고 점잖은 분들이 많이 나와 그 조상의 음덕을 입어 선조가 남긴 복을 오래도록 보존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 분암을 영사암(永思菴)이라 이름하였으니, 아! 이 이름을 지은 이는 아마도 어진 사람일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길이 효심으로 사모하니 효심으로 사모하는 것이 곧 법칙이 되니라.〔永言孝思 孝思維則〕” 하였으니, 이는 먼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시들지 않게 함으로써 능히 계승함직한 법칙이 되게 함을 일컬음이다. 온 세상 사람 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없다. 진실로 능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근본을 밝히면 비록 아득히 먼 조상이라도 모두 나의 부친이라 할 수 있고, 또 미루어 범위를 넓히면 단문(袒免)의 원족(遠族)이라 할지라도 모두 나의 동기(同氣)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풍속이 쇠하여 무너짐에 족계(族系)가 차츰 멀어지니, 문호를 나누고 한솥밥을 먹지 않으며 곡식과 포백과 집기를 서로 빌려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하물며 산지(山地)가 화복(禍福)을 정해 준다는 풍수지리설이 효도하고 우애하며 화목하고 서로 믿는 마음을 능가하게 되어 각각 따로 산소를 둠에 있어서랴!
심하면 묏자리에 대한 송사를 일으키기도 하며 묘목(墓木)을 두고 다투게 되며, 간악한 자가 족당(族黨)에 생기고 원수가 가문에 생기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는 족장(族葬)하는 집안이 드무니, 일찍이 나는 이를 두고 마음 아파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각각 그 근본을 잊지 않아 조상의 마음을 거슬러 생각해 본다면, 자손을 슬하에 열 지어 두어 비록 백대라도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조상이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양씨 가문의 산은 가까이로는 기복(朞服)과 공복(功服)을 입는 친족으로부터 멀리로는 단문(袒免)의 원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를 이어 매장되어, 수목을 서로 가꾸어 키우고 묘역도 함께 수호한다. 봄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릴 때면 모여서 선조들에게 제사 지내며, 모두 함께 이 분암에 올라 높은 어른은 앞자리에 앉고 항렬이 낮거나 어린 사람들은 뒷자리에 앉아 함께 음복하고 물러나 사방을 둘러보면, 북쪽과 남쪽의 언덕에는 소(昭)와 목(穆)의 순서에 따른 묘들이 있고 동쪽 등성이와 서쪽 기슭에는 시복(緦服)과 공복(功服)을 입는 친족의 묘들이 있으니, 상심한 듯이 멀리 사모하며 눈앞에 뵈는 듯이 길이 사모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효자가 끊어지지 아니하여 길이 너에게 선(善)을 내리리라.〔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으니, 양씨 가문의 자손들이 이에 그 효심으로 사모함을 능히 그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리는 복과 산지에서 발하는 상서가 길이 선을 이르러 오게 할 것이다. 나는 장차 그 씨족과 세대가 더욱 번창함을 볼 것이다. 무릇 그런 뒤라야 세속의 이른바 풍수지리설이 장차 우리를 속이지 못할 터이니, 우선 이 글을 써서 그날을 기다리는 바이다.
풍속을 도탑게 하고 세교에 유익한 글이다. 이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효도하고 우애하는 마음이 뭉클 일어나게 한다.
풍수가의 발복설(發福說)로부터 말을 세우되 중점은 효도하고 우애하고 돈독하고 화목한 것으로 돌아갔으니, 풍수지리설은 그 속임수가 용납될 여지가 없다.
余客遊中京。與南原梁氏相厚善。其從父昆弟數十人。皆質厚少文。恂恂愛人。意其上世。有鉅人碩德。發祥垂庥於無窮也。及歷其墳菴。山雄谷邃。崗麓盤紆。松楸森鬱。翁仲華表。宏侈魚雅。而堂斧馬鬣之封。若木之互根。水之分派。如孝悌睦任之家。連墻比屋而居。器什之相資用。穀帛之無私藏。信乎其子弟之多質厚長者。得其庇蔭。而保流慶於久長也。其菴名曰永思。噫。爲此號者。庶乎其仁也歟。詩云。永言孝思。孝思維則。謂其不替追遠之心。而能爲可繼之法也。天下之人莫不思孝於其父母。苟能溯而原之。則雖鼻玄之遠祖。皆吾之考禰也。推而廣之。則雖袒免之疎屬。皆吾之同氣也。然而世衰俗敝。族系浸䟽。分門異爨。糓帛器什。不相資用者久矣。而况堪輿禍福之說。勝其孝悌睦任之心。而各私其塋域乎。甚者。至訟其兆穴。爭其梧檟。奸宄起於族黨。敵仇成於門庭。由是而世罕族葬之家。竊甞痛心於此也。若使人人者。不忘其本。追思祖先之心。則未有不欲其列子孫於膝下。雖百世而同居者也。今梁氏之山。近自朞功。遠至袒免。皆得世葬。樹木相養而長也。封域同護而守也。春秋霜露。會祭其先。同登斯菴。尊長居前。卑幼在後。共飮其福。退而四望。則北阡南陌焉。有昭而有穆也。東岡西麓焉。若緦而若功也。其有不愴然遠慕。僾然永思者乎。詩云孝思不匱。永錫爾類。梁氏之子孫。能不絶其孝思。則天之降福。山之發祥。長以類至矣。吾將見其族世益大以昌。夫然後世俗所謂堪輿之說。將不誣吾。姑書此而俟之。
敦風俗裨世敎之文。讀之令人孝悌之心油然而生。
從山家福蔭上立言。而歸重在孝友敦睦。堪輿之說。無所容其誣誕。
[주D-001]남원 양씨(南原梁氏) : 양호맹(梁浩孟)ㆍ양정맹(梁廷孟) 형제를 가리키는 듯하다.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당시 연암은 양호맹의 금학동(琴鶴洞) 별장에 기거했다고 하며, 《연암집》 권3 만휴당기(晩休堂記)에서 연암은 자신이 개성에 노닐 적에 양정맹과 서로 무척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였다. 양호맹은 호가 죽오(竹塢)인데 연암은 그를 위해 ‘죽오기(竹塢記)’(《연암집》 권10)를 지어 주었으며, 또한 그의 부탁으로 ‘양 호군(梁護軍) 묘갈명(墓碣銘)’(《연암집》 권7)을 지어 주었다.
[주D-002]분암(墳菴) : 산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 근처에 지어 놓은 집이다.
[주D-003]여러 모양의 봉분들 : 원문은 ‘堂斧馬鬣之封’인데,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나오는 말로 당(堂)은 마루같이 네모반듯하고 높은 봉분을 가리키며, 부(斧)는 도끼날처럼 아래는 넓고 위가 좁은 장방형의 봉분으로 말의 갈기와 비슷하다 하여 속칭 마렵봉(馬鬣封)이라고 한다.
[주D-004]길이 …… 되니라 : 《시경》 대아(大雅) 하무(下武)에 나온다.
[주D-005]부친 : 원문은 ‘考禰’인데, 돌아가신 뒤에는 부친을 ‘고(考)’라 부르고, 사당에 신주가 모셔진 뒤에는 ‘예(禰)’라 부른다.
[주D-006]단문(袒免) : 상복을 입지 않고 윗옷의 왼쪽 소매를 벗고 관을 벗은 뒤 머리를 묶기만 하는 상례(喪禮)를 말한다. 고조의 친형제나 증조의 당형제(堂兄弟) 등과 같이 오복(五服)을 입지 않는 먼 친척의 초상 때 지키는 예법이다.
[주D-007]족당(族黨) : 《하풍죽로당집》에는 ‘宗黨’으로 되어 있다.
[주D-008]족장(族葬) : 조(祖)가 같은 자손들이 한 묘지에 무덤을 쓰는 것을 말한다. 《周禮 春官 墓大夫》
[주D-009]기복(朞服)과 공복(功服) : 기복은 1년 동안 입는 복을 말하며, 공복은 9개월 동안 입는 대공(大功)과 5개월 동안 입는 소공(小功)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주D-010]소(昭)와 목(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하여, 1세를 가운데에 모시고 2ㆍ4ㆍ6세는 소에 3ㆍ5ㆍ7세는 목에 모신다.
[주D-011]시복(緦服) : 시마(緦麻)로 된 상복을 입는 3개월의 상을 말한다
[주D-012]효자가 …… 내리리라 :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나온다.
[주D-002]분암(墳菴) : 산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 근처에 지어 놓은 집이다.
[주D-003]여러 모양의 봉분들 : 원문은 ‘堂斧馬鬣之封’인데,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나오는 말로 당(堂)은 마루같이 네모반듯하고 높은 봉분을 가리키며, 부(斧)는 도끼날처럼 아래는 넓고 위가 좁은 장방형의 봉분으로 말의 갈기와 비슷하다 하여 속칭 마렵봉(馬鬣封)이라고 한다.
[주D-004]길이 …… 되니라 : 《시경》 대아(大雅) 하무(下武)에 나온다.
[주D-005]부친 : 원문은 ‘考禰’인데, 돌아가신 뒤에는 부친을 ‘고(考)’라 부르고, 사당에 신주가 모셔진 뒤에는 ‘예(禰)’라 부른다.
[주D-006]단문(袒免) : 상복을 입지 않고 윗옷의 왼쪽 소매를 벗고 관을 벗은 뒤 머리를 묶기만 하는 상례(喪禮)를 말한다. 고조의 친형제나 증조의 당형제(堂兄弟) 등과 같이 오복(五服)을 입지 않는 먼 친척의 초상 때 지키는 예법이다.
[주D-007]족당(族黨) : 《하풍죽로당집》에는 ‘宗黨’으로 되어 있다.
[주D-008]족장(族葬) : 조(祖)가 같은 자손들이 한 묘지에 무덤을 쓰는 것을 말한다. 《周禮 春官 墓大夫》
[주D-009]기복(朞服)과 공복(功服) : 기복은 1년 동안 입는 복을 말하며, 공복은 9개월 동안 입는 대공(大功)과 5개월 동안 입는 소공(小功)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주D-010]소(昭)와 목(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하여, 1세를 가운데에 모시고 2ㆍ4ㆍ6세는 소에 3ㆍ5ㆍ7세는 목에 모신다.
[주D-011]시복(緦服) : 시마(緦麻)로 된 상복을 입는 3개월의 상을 말한다
[주D-012]효자가 …… 내리리라 :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