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2:34

발승암기(髮僧菴記)

 

 


내가 동쪽으로 풍악산(楓嶽山)을 유람할 때 그 동구(洞口)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지금 사람들이 이름을 써 놓은 것이 보였는데, 크게 쓰고 깊이 새겨진 것이 조그마한 틈도 없어 마치 구경판에 어깨를 포개 선 것 같고 교외의 총총한 무덤과 같았다. 오래 전에 새긴 글씨가 겨우 이끼에 묻히자 새 글씨가 또 인주(印朱) 빛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무너진 벼랑과 갈라진 바위에 이르니 깎아지른 듯 천 길이나 높이 서 있어, 그 위에는 나는 새의 그림자조차 끊겼는데도 홀로 ‘김홍연(金弘淵)’이란 세 글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실로 맘속으로 이상히 여기고, ‘자고로 관찰사의 위세는 족히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으며, 양봉래(楊蓬萊)는 기이한 경치를 좋아하여 그분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곳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거늘, 저 이름 써 놓은 자가 도대체 누구기에 석공(石工)을 시켜 다람쥐, 원숭이와 목숨을 다투게 했단 말인가?’라 했다.
그 후에 나는 국내의 명산을 두루 유람하여 남으로는 속리산, 가야산에 오르고, 서로는 천마산, 묘향산에 올랐다. 외지고 깊숙한 곳에 이를 때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오지 못한 곳을 나만이 왔노라고 스스로 생각하곤 하였다. 그러나 노상 김(金)이 써 놓은 것을 발견하고는 그만 화가 치밀어,
“홍연이 어떤 작자길래 이다지도 당돌한가?”
라고 욕을 했다.
무릇 명산에 노닐기를 좋아하는 자는 지극한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어려움을 물리치지 않으면 절경을 찾아낼 수 없다. 나 또한 평상시 지난날의 발자취를 추억할 때면 벌벌 떨면서 스스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산에 오르게 되면 전번의 다짐이 어느새 온데간데없어지고 험준한 바위를 딛고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썩은 잔교(棧橋)와 앙상한 사닥다리에 몸을 의지하기도 한다. 왕왕 천지신명께 속으로 빌면서 오히려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벌벌 떨며 두려워하기도 하는데, 그런 곳에서도 사슴 정강이 크기만 한 큰 글자가 인주로 메워져 늙은 나뭇가지와 해묵은 칡덩굴 사이로 보일락말락 서려 있다 하면 반드시 ‘김홍연(金弘淵)’ 석 자였다. 그런데 이때에는 도리어 마치 위험하고 곤경에 처했을 때 옛 친구를 만난 듯 기뻤으며, 그로 인해 힘을 내어 기어 올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다.
평소에 김(金)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은 바로 왈짜인데 왈짜란 대개 항간에서 방탕하고 물정 모르는 자를 일컫는 말로서 이른바 검사(劍士), 협객(俠客)의 부류와 같소. 그는 젊은 시절에 말달리기, 활쏘기를 잘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했고 힘도 능히 호랑이를 죄어 죽일 만하며, 기생 둘을 양옆에 끼고 두어 길 되는 담장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오. 녹록하게 벼슬 구하기를 즐겨하지 않았으며 집이 본래 부유해서 돈 쓰기를 더러운 흙같이 하였다오. 고금의 법서(法書), 명화(名畵), 칼, 거문고, 이기(彝器) 기이한 화초들을 널리 수집하여 한번 맘에 드는 것을 만나면 천금도 아끼지 않았으며, 준마(駿馬)와 이름난 매가 늘 그의 좌우에 있었지요. 이제는 늙어서 백발이 되자 송곳과 끌을 주머니에 넣고 명산을 두루 노닐어 이미 한라산(漢拏山)을 한 번 들어갔고 장백산(長白山 백두산)을 두 번이나 올랐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손수 돌에다 새겼으니,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하오.”
나는 물었다.
“이 사람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김홍연이오.”
“이른바 김홍연은 누구요?”
“자가 대심(大深)이지요.”
“대심이란 누구요?”
“발승암(髮僧菴)이라 자호(自號)하는 사람이오.”
“이른바 발승암은 누구요?”
얘기하던 사람이 답이 막히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옛날에 장경(長卿)이 무시공(無是公)과 오유선생(烏有先生)을 설정하여 서로 힐난하게 한 바 있었소. 지금 내가 그대와 함께 오래된 암벽과 흐르는 물 사이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문답을 하고 있으니, 훗날에 서로 생각해 보면 모두 오유선생이 될 터인데 이른바 발승암이란 게 어디 있겠소?”
그가 발끈해서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내가 어찌 황당한 말로 꾸며 내었겠소? 이 사람은 정말로 있었소.”
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너무나 집요하군. 옛날 왕개보(王介甫 왕안석(王安石))가 극진미신(劇秦美新)이란 작품을 변증(辨證)하여, 틀림없이 곡자운(谷子雲)의 저작이지 양자운(揚子雲)의 저작이 아니라 했고, 소자첨(蘇子瞻 소식(蘇軾))은 서경(西京 장안(長安))에 과연 양자운이란 인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했소. 무릇 이 두 사람의 문장이 당대에 빛났고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지만 후세에 옛일을 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와 같은 의심을 가졌거늘, 하물며 심산궁곡 중에 헛된 명성을 남겨 바람에 삭고 비에 부스러져 백 년이 못 가서 마멸되는 것에 있어서리오.”
이 말을 듣고 그 또한 크게 웃고 떠나갔다.
이로부터 9년 후에 나는 평양에서 김을 우연히 만났다. 뒤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이가 김홍연이오.”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그의 자를 부르면서,
“대심(大深), 그대가 발승암이 아닌가?”
하였더니, 김군이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보더니 말했다.
“그대가 나를 어떻게 아오?”
“옛날에 만폭동(萬瀑洞)에서 벌써 그대를 알았네. 그대의 집은 어디 있는가? 옛날 모은 것을 지금도 꽤 가지고 있는가?”
김군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이 가난하여 다 팔아넘기고 말았소.”
“왜 발승암이라 부르는가?”
“불행히도 몹쓸 병에 온몸이 훼손되고 늙은 몸에 아내도 없어 늘 불당에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오.”
그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매 옛날의 기질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으니, 내가 그의 젊었을 때를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도다!
하루는 그가 내가 묵고 있던 집으로 찾아와서 청했다.
“내가 이제 늙어서 다 죽게 되었소. 마음은 벌써 죽고 터럭〔髮〕만 남았으며, 거처하는 곳은 모두 승암(僧菴)이오. 그대의 글에 의탁하여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기를 원하오.”
나는 그가 늙어서도 자신의 포부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겨, 드디어 예전에 유람 중에 만났던 사람과 문답한 것을 써서 돌려주고 또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이 게(偈)를 설하였다.

까마귀는 새마다 검은 줄 믿고 / 烏信百鳥黑
해오리는 딴 새가 희지 않음을 의아해하네 / 鷺訝他不白
검은 놈 흰 놈이 저마다 옳다 여기니 / 白黑各自是
하늘도 그 송사에 싫증나겠군 / 天應厭訟獄
사람은 다 두 눈이 달려 있지만 / 人皆兩目俱
애꾸는 눈 하나로도 능히 보는걸 / 矉一目亦覩
어찌 꼭 쌍이라야 밝다 하리오 / 何必雙後明
어떤 나라 사람은 한 눈뿐이네 / 亦有一目國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불만족하여 / 兩目猶嫌小
이마에 덧눈을 달기도 하고
/ 還有眼添額
더더구나 저 관음보살은 / 復有觀音佛
변상도(變相圖)에 눈이 천 개나 되네 / 變相目千隻
달린 눈이 천이랬자 별거 있겠나 / 千目更何有
소경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는데 / 瞽者亦觀黑
김군은 불구의 몸으로 / 金君廢疾人
부처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네 / 依佛以存身
돈 쌓아 놓고 쓸 줄 모른다면 / 積錢若不用
비렁뱅이 가난과 뭐가 다르리 / 何異丐者貧
중생은 다 제멋으로 사는 법 / 衆生各自得
애써 본뜰 건 없지 않은가 / 不必强相學
대심은 중생과 달리했기에 / 大深旣異衆
이로써 서로들 의심한 게지 / 以玆相訝惑

세상에서 못내 명예를 좋아하여 외물에 의탁해서 불후(不朽)를 도모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였으니, 그들은 이 글을 보면 망연자실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붓이 춤을 추고 먹방울이 뛰노니 《시경》의 이른바 “북소리 두둥둥 울리거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창을 겨룬다〔擊鼓其鏜 踴躍用兵〕”는 것이 아마 이를 두고 이름인저.

게어(偈語)는 특히 원오경발(圓悟警發)하다.

영감게(靈感偈)나 나한찬(羅漢贊)의 사이에 두어도 어느 것이 옛 글이고 어느 것이 요새 글인지 알지 못하겠다.


 

[주D-001]내가 …… 때 : 금강산(金剛山)을 사철에 따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른다. 연암은 1765년(영조 41)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였다. 그때 만폭동(萬瀑洞)에 이름을 써서 새겼다고 한다. 《瓛齋集 卷9 與尹士淵》
[주D-002]양봉래(楊蓬萊)는 …… 없었다 : 봉래는 양사언(楊士彦 : 1517~1584)의 호이다. 양사언은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린 인물이다. 자연의 경치를 좋아하여 지방관으로 전전하며 곳곳에 많은 글씨를 남겼다. 특히 금강산을 좋아하여 만폭동(萬瀑洞)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주D-003]그 후에 …… 올랐다 : 1771년(영조 47) 연암이 과거(科擧)를 폐한 직후의 일이다. 《過庭錄 卷1》
[주D-004]왈짜 : 원문은 ‘濶者’인데, 왈짜(曰者)ㆍ왈패(曰牌)라고도 부르는 무뢰배를 말한다.
[주D-005]이기(彝器) : 고대에 종묘 제사에서 사용하던 종정(鍾鼎)류를 이른다.
[주D-006]김은 …… 하오 : 김홍연(金弘淵)은 본관이 웅천(熊川)으로 개성의 부유한 양반가에서 생장했으며 무과에 급제했으나 불우하게 지냈다. 말년에 평양 영명사(永明寺)에 기거할 때 연암을 찾아와 글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韶濩堂文集 卷9 金弘淵傳》
[주D-007]장경(長卿)이 …… 있었소 : 장경은 전한 때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이다. 사마상여는 사부(辭賦)를 잘 지었다. 무시공(無是公)과 오유선생(烏有先生)은 그가 지은 자허부(子虛賦)와 상림부(上林賦)에 나오는 가공 인물들이다.
[주D-008]극진미신(劇秦美新) : 왕망(王莽)이 한 나라 황실을 몰아내고 신(新) 나라를 세우자 양웅(揚雄)이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봉선문(封禪文)을 모방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도량형을 통일한 진(秦) 나라 시황(始皇)을 비판하고 새로 들어선 신(新) 나라 왕망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지은 글이다. 《文選 卷48》
[주D-009]곡자운(谷子雲) : 자운은 곡영(谷永)의 자이다. 경서(經書)에 해박하고 특히 천문(天文)에 정통하였다. 전한 원제(元帝) 때에 태상승(太常丞)으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천재지변의 현상을 가지고 조정의 득실을 논하였고, 성제(成帝) 때에는 황태후를 비롯해 외척 왕씨(王氏)들과 가까이 지낸 탓에 성제로부터 경계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와 몇 달 후 사망하였다. 곡영이 사망한 해는 성제의 치세인 기원전 8년으로, 왕망이 신 나라를 세운 기원후 8년과는 16년의 차이를 보인다.
[주D-010]양자운(揚子雲) : 자운은 양웅(揚雄)의 자이다. 학문에 다방면으로 밝았으며 특히 사부(辭賦)에 뛰어났다. 왕망이 신 나라를 세우자 대부(大夫)가 되었고, 왕망을 옹호하는 글을 지어 올려 후대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위의 곡영(谷永)과는 동일한 자(字)를 사용하고 활동한 시대가 겹쳐 있으며 왕망의 일파와도 가깝게 지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주D-011]뒤에서 …… 있기에 : 원문은 ‘有背指者 此金弘淵也’인데, 김택영(金澤榮)의 《연암속집(燕巖續集)》에는 ‘有背指者曰 此金弘淵也’로 되어 있다.
[주D-012]애꾸는 …… 보는걸 : 이 구절의 운자로 ‘覩’ 자가 쓰였으나, 입성(入聲)이 아니고 상성(上聲)이어서 운이 맞지 않는다. 김택영의 《연암속집》에는 입성인 ‘矚’ 자로 바꾸어져 있다. 《주역》 이괘(履卦) 육삼(六三)의 효사(爻辭)에 “애꾸도 볼 수가 있고 절뚝발이도 걸을 수 있다.〔眇能視 跛能履〕”고 하였고 상전(象傳)에 “애꾸도 볼 수 있다고 해서 눈이 밝다고 할 수는 없다.〔眇能視 不足以有明〕”고 하였다.
[주D-013]어떤 …… 눈뿐이네 :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에 일목국(一目國)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외눈이 얼굴 한복판에 있다고 하였다.
[주D-014]두 눈도 …… 하고 : 불교에서 대자재천(大自在天)은 보통 사람과 같은 두 눈 외에 정수리에 일체의 사리를 꿰뚫어 보는 외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를 정문안(頂門眼)이라 한다.
[주D-015]북소리 …… 겨룬다 : 《시경》 패풍(邶風) 격고(擊鼓)의 한 구절이다.
[주D-016]원오경발(圓悟警發) : 기발한 표현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주D-017]영감게(靈感偈)나 나한찬(羅漢贊) : 모두 소식(蘇軾)이 지은 글이다. 영감게는 영감관음게(靈感觀音偈)를 가리키고 나한찬은 십팔대아라한송(十八大阿羅漢頌)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