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밀양(密陽) 김귀삼(金貴三)의 의옥(疑獄)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2:45

밀양(密陽) 김귀삼(金貴三)의 의옥(疑獄)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

 

 


예로부터 의옥이 한이 있겠습니까마는, 밀양 사람 김귀삼이 그 사위 황장손(黃長孫)을 치사케 했다는 사건은 의혹이 극심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초검에서는 실인(實因 사망 원인)을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이라 하였고, 복검에서의 실인도 역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이라 했는데, 이번의 삼검(三檢)에서는 갑자기 강요당했다는 뜻의 ‘피핍(被逼)’ 두 글자를 덧붙여 실인을 삼았으니,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별다른 본 것이 있어서 이 같은 단안을 내린 것입니까?
대저 이 옥사는 이미 세 차례 검험(檢驗 검시)을 거쳤으나 내내 어림짐작이어서, 상처난 자국의 치수에 가감된 것이 많았을 뿐 아니라 활투두(活套頭)인지 사투두(死套頭)인지조차도 분명치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논단하면서 검안(檢案)에 자상하고 소략함이 심하게 차이 난다 하여 초검과 복검을 모조리 의심하고 삼검에만 무게를 두어서는 물론 안 될 것입니다.
대개 장손이 목을 맨 것은 딴 여자를 얻어 들인 데서 발단하였고, 소를 두고 다툰 데서 결과한 것이니 저 길 가는 사람이 사연을 듣더라도 당연히 그 장인에게 의심을 많이 둘 것입니다. 하물며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검관(檢官 검시관)의 도리로서 혹시 숨은 무엇이 있을까 끝까지 캐 보려고 한 것은 필연적인 형세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때에 목매달아 죽은 나무에 대해 가까운 곳을 피하고 먼 곳을 대는 등 진술이 여러 번 뒤바뀌니, 묵은 의심 새 의심이 무진무진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삼검의 실인에 있어 갑자기 ‘피핍’이란 단안이 덧붙여진 까닭입니다.
이른바 ‘피핍’이란 말은 겉으로 얼핏 보기에는 긴요하고 무게 있는 말인 듯 보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따져 보면 이렇다 할 형적이 없는 것입니다. 혹 뜻밖에 의심을 받거나 일이 당초 마음먹은 것과 어긋날 경우에, 빈정대는 것도 아니요 나무라는 것도 아니나 오는 말이 가시가 돋쳐, 낯이 뜨거워지고 속이 타서 더더욱 답답하고 원통할 때가 있습니다. 이 쓰라리고 괴로운 심경을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이겠습니까마는, 조급하고 경망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자살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른바 ‘피핍’이란 것은 왕왕 이와 같은 것으로서, 원인이야 비록 남 때문이지만 죽음은 스스로 자행한 것이니, 지금 비록 ‘피핍’이란 두 글자를 덧붙인다 해도 옥사의 진상에는 별로 가중될 것이 없습니다.
이제 의심 갈 만한 자취를 들어 용서할 만한 정상을 참작해 본다면, 남편과 아내, 장인과 사위 사이에 일찍이 눈 부라리고 말다툼한 적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무슨 소 찾는 일로 인하여 어찌 암암리에 살해할 리가 있겠습니까? 또 그 의복을 망가뜨리고 문기(文記)를 찢어 버린 것을 보면 비록 정을 아예 끊어 버린 듯도 하지만, 상놈들이란 분이 나면 들이받고 치고 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적인 일인지라 조금 지나 술을 받아 함께 취토록 마시고 한이불 속에 자고 나면 묵은 감정은 하마 풀리고 옛 정이 되살아나는 법인데, 졸지에 스스로 목매달았다는 것은 실로 상정이 아닌 것입니다.
대저 장손의 자결은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새로 사들일 논값은 얼마이며, 전에 기르던 소값은 얼마인가, 딴 여자에게 장가가던 첫날밤부터 온갖 계획이 이 소 한 마리에 달려 있었는데, 급기야 소를 찾으러 와서는 비단 당초의 계획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무한한 비웃음과 꾸지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속담에 이른바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빼기 어렵다’는 격이라, 분김에 멍청한 꾀를 내어 죽어 버리겠다는 말로 남을 위협하겠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농지거리한 것이 마침내 참말로 되어 버린 것일 수가 있습니다. 둘째, 남의 권고를 받아들여 애써 딴 여자를 보았으나 소까지 몰고 이 집을 아주 떠난다는 것은 제 본심이 아니었으며, 전에 살던 곳을 잊기가 어려워 옛집을 다시 찾아갔으나 두루 질책만 쏟아져 몸 둘 곳이 없었으며, 옛날을 그리는 정은 심중에 간절했지만 성깔 사납고 투정 많은 계집은 돌아보는 척도 않아서 한밤중에 서성대고 기다려도 그림자도 발자국 소리도 영영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속담에 이른바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다’는 격이어서, 떠나기도 어렵고 있기도 어려워 원망과 후회가 한꺼번에 몰려드니 술김에 슬픈 생각이 일어나서 차라리 죽어 버리고 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정상을 헤아려 보면 반드시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또한 정세를 들어 말하더라도 귀삼은 늙고 잔약한 몸이요, 장손은 힘 있는 장정이니, 설사 귀삼이 정말로 몰래 해칠 계획을 지녔더라도 장손이 어찌 남에게 제 목을 매라고 내맡기고 손 하나 까딱 않으며 그대로 얽어매였겠습니까. 설혹 늑살(勒殺 목 졸라 죽임)이라 한다면 어찌하여 빨리 구렁에 밀어넣어 그 흔적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시친(屍親 피살자의 친척)에게 급급히 통부(通訃 부고)를 했겠으며, 기필코 검험하고 말 관가에 허둥지둥 알리어 자진해서 원범이 되어 스스로 죽을 땅에 들어갔겠습니까? 통탄할 바는 목매단 장소를 끝내 곧이곧대로 말하지 아니하여 옥사의 진상에 의혹을 자아내게 한 것인데, 오직 저 어리석은 백성이 헛되이 사중구생(死中求生)의 꾀를 내어 이와 같이 어물어물한 것이요, 장손이 제 손으로 목 매어 제가 죽은 것만은 매한가지입니다. 등유목(燈油木)에 목을 매었건 도리목(都里木)에 목을 매었건 간에 그 죄에는 그다지 경중의 차이가 있지 않은 것인데, 즉시 장소를 바른대로 대지 않은 것은 그 행동을 따져 보면 비록 교활하고 흉악한 듯하나 그 정상을 헤아려 보면 그다지 괴이히 여길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오직 가볍게 처벌하는 것이 진실로 옥사를 신중히 하는 도리가 되는 것이니, 재량하여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從古疑獄何限。而至於密陽金貴三之致死其女婿黃長孫而極矣。初檢之實因曰自縊。而覆檢實因。亦惟曰自縊。則今此三檢之忽加被逼二字。以爲實因。未知有何別見而爲此斷案也。大抵此獄已爲三經檢驗。而一直摸撈傷痕。分寸旣多加减。套頭死活。亦不分明。到今論斷。固不可以檢案之煞有詳略。全疑于初覆。歸重於三檢也。盖長孫之縊項。權輿於改娶。結果於爭牛。雖使行路聞之。固多致疑於婦翁。况以檢官愼重之道。慮有隱情。期欲窮覈。乃是必然之勢乎。際此弔掛木之諱近指遠。屢變其招。則舊訝新疑。轉生府節。此三檢實因之所以遽添被逼一案也。所謂被逼。外面驟看其所下語。雖似緊重。細究本事。無跡可尋。或情外見疑。或事違初心。而匪謔匪詈。來辭芒刺。外烘內熬。轉益煩寃。心之茶苦。孰使之然。不耐躁妄。守諒溝瀆。所謂被逼之形。往往有似此者。孽雖由人。死則自遂。則今雖加被逼二字。無甚加重於獄情。今以可疑之跡。參究可原之情。則夫妻翁婿之間。曾無反目翻唇之事。而一朝因甚索牛之擧。寧有暗地戕害之理乎。且其破衣冠裂文記。雖似斷情。常漢之乘憤隳突。卽其常事。少焉沽酒同醉。聯席共眠。則宿怒已解。舊情可見。而忽地自縊。實非常理。大抵長孫之自决。有兩般情境。新買之畓價幾何。舊喂之牛價幾何。宴爾之初。萬事商量。只在此牛。及其來索之日。非但未遂初計。反被無限嗤罵。諺所謂刀入他鞘。則忿頭愚計。以死嚇人。霎時弄假。遂以成眞一者。受人慫慂。僶勉更娶。驅牛永去。非厥本心。而宿處難忘。還尋故居。偏讁交加。無地自容。戀舊之情。雖切于中。妬狠之女。不肯惠顧。中夜徊徨。影響斷絶。諺所謂失蟹兼網。則去留雙難。尤悔並至。酒後動悲。寧就溘然。究厥情事。必當居一於是。且以理勢言之。貴三老孱。而長孫壯男也。設使貴三眞有潛害之計。爲長孫者。寧肯任人結項。拱手就絞乎。設或勒殺。則何不速塡溝壑。以滅其跡。而汲汲通訃於漠然不知之屍親。遑遑首告於必也檢驗之官家。甘作元犯。自納死地乎。所可痛者。弔掛處所。終不直陳。以致獄情之疑晦。惟彼愚氓。徒爲死中求生之計。有此呑吐。長孫之自縊致死則一也。燈油木都里木之間。無甚輕重於其罪。而不卽指一首實者。論其跡則雖似狡惡。究其情則無足深恠。此等付之惟輕。允爲審恤之道。伏惟裁酌。


 



 

[주C-001]의옥(疑獄) : 죄상이 뚜렷하지 아니하여 죄의 유무를 판명하기 어려운 사건을 이른다.
[주D-001]활투두(活套頭)인지 사투두(死套頭)인지 : 투두(套頭)는 자살할 때 쓰는 올가미를 말한다. 활투두는 올가미의 고를 움직여 죄었다 늦추었다 할 수 있어 살아날 수 있는 것이고, 사투두는 고를 단단히 매어 옴짝달싹할 수 없으므로 죽게 되는 것이다.
[주D-002]문기(文記) : 소유권이나 기타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로, 문권(文券)이라고도 한다.
[주D-003]등유목(燈油木) : 나무로 만든 등잔걸이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04]도리목(都里木) :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로 쓰이는 재목을 말한다.
[주D-005]옥사를 …… 도리 : 원문은 ‘審恤之道’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에는 ‘審愼之道’로 되어 있다. 앞의 편지에서도 ‘審愼之道’라 하였을 뿐 아니라 이는 재판과 관련하여 흔히 쓰는 표현이므로, 이에 따라 고쳐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