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순찰사에게 답함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16
순찰사에게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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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범 살인 옥사가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만, 이 옥사처럼 상리(常理)에 어긋난 것은 없었습니다. 형적이 의심되는 것은 정상으로써 헤아리고, 죄수의 말에 숨김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증인의 말을 참고하는 법이니, 옥사를 신중히 살피는 대체(大體)가 진실로 이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옥사의 경우는, 정상으로 보면 죄수의 공초에 일컬은 바와 같이 친척 관계는 비록 외삼촌과 조카 사이이지만 아버지로 부르고 자식으로 기른 처지였고, 형적으로 말하면 검시장(檢屍場)에서 증험된 바와 같이 곧바로 칼로 찔러서 피가 다하자 죽음이 뒤따른 것이었습니다. 죄수의 말은, 몹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로서 진실로 그의 방탕한 마음을 깨우쳐 주자는 데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증인의 말은, 우물쭈물 횡설수설하는 가운데도 오히려 그자가 칼을 가졌다는 것은 숨기지 않았습니다. 정상과 형적을 참조하여 연구해 보아도 진실로 상리가 아니고, 죄수와 증인의 말을 되풀이해 따져 보아도 더욱 의혹만 생깁니다.
왜냐하면 당초에 판열(判烈)의 아비 조응붕(曺應鵬)이 그 처남 임종덕(林宗德)과 더불어 한 마을에서 수십여 년을 살아 왔는데, 살림이 모두 넉넉하고 서로간에 관계도 아울러 돈독한 처지였습니다. 판열이 어릴 때부터 그 외삼촌에게서 자랐으므로, 종덕은 판열을 자기 자식같이 보아서 그에게 훈계하고 독촉하기를 부지런히 했고, 응붕은 실지로 종덕의 앞에서는 판열이 자기 자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판열이 장성하여 장가든 뒤로, 몇 년 전부터 주색에 빠져서 남의 꾐에 넘어가 종덕의 집 여종아이에게 현혹되어 정실을 소박놓고 무뢰배와 휩쓸렸습니다. 그 때문에 그 외삼촌만이 깊이 우려한 것이 아니라 그 아비 역시 밤낮으로 버릇을 고칠 방도를 생각하였으나,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정이 지극하여 망나니 자식을 위엄으로 억제하지 못하다 보니 평소에 외삼촌보다 덜 무서워하고 어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판열을 손수 끌고 종덕에게로 함께 가서 잘못을 자복하도록 강요하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맹렬히 꾸짖었던 것이니, 그날 사건의 원인은 이와 같은 데 불과했습니다. 종덕은 성품이 어리석고 멍청한 탓에 일에 임하여 어려워할 줄 모르고, 함부로 가장으로 자처하고 엄준한 역할을 자임하다가, 갑자기 패악한 행동을 저질러 스스로 흉악한 짓을 한 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아, 부자간에 책선(責善)하는 것도 오히려 크게 경계하는 바인데, 하물며 외삼촌과 조카 사이에 은의(恩義)를 상한다는 것은 생각지 않는단 말입니까. 아이가 죄를 지었으면 회초리로 때리면 그만이지 어찌 잔인하게 칼로써 위협하며, 사랑할진댄 살리고 싶은 법인데 어찌하여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 옥사는 죄수와 증인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형적을 가지고서 정상을 따진다면, - 이하 원문 빠짐 -
大凡殺獄何限。而未有若此獄之乖常悖理者也。疑於迹者。究之於情。晦於詞者。參之於證。審克大軆。固不出此。而至於此獄。以情則囚供所稱。親雖舅甥。而父呼子養也。以迹則檢場所驗。直是刃刺。而血盡死繼也。以詞則恩愛至切之間。亶出於警其放心。以證則依違呑吐之中。猶不得諱其持刀。參究情迹。實非常理。反覆詞證。彌生疑晦。何則。當初判烈之父曹應鵬。與其妻娚林宗德。同閈居生。數十餘年。貲產俱饒。情好幷篤。判烈自其幼時。養於其舅。則宗德視同己子。勤其訓課。應鵬實忘其子於宗德也。及判烈旣長娶妻。而數年以來。浪蕩酒色。被人慫慂。沈惑宗德家童婢。踈棄正妻。從遊無賴。非但其舅之所深憂慮。其父夙宵
亦思所以懲戢之道。第其慈愛至情。未能威制憍子。而平日畏憚。不如其舅。則果爲躬執判烈。共詣宗德。要其服罪。猛加警覺。伊日事根。不過如此。宗德性是癡蠢。臨事無難。妄以家長自處。嚴峻自任。忽行悖擧。自作凶身。噫。父子責善。猶爲大戒。何况舅甥之間。不思賊恩乎。兒罪當笞。何忍刀脅。愛之欲生。胡爲至死。此獄之所以不煩詞證。而執迹而論情。無 缺。
[주C-001]순찰사에게 답함 : 목록에는 편지의 제목이 ‘함양의 옥사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答巡使論咸陽獄書〕’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는 1792년(정조 16) 연암이 안의 현감으로 부임할 당시 경상 감사 정대용(鄭大容)의 부탁을 받아 도내의 의심스러운 옥사를 심리(審理)하면서 경상 감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편지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그다음의 ‘순찰사에게 올림’도 마찬가지의 경위로 작성된 편지인 듯하다. 《연암집》 권2에 ‘현풍현 살옥의 진범을 잘못 기록한 데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答巡使論玄風縣殺獄元犯誤錄書〕’ 등 이와 유사한 편지 4통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부자간에 …… 바인데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부자간에는 책선(責善)하지 아니하나니, 책선하면 사이가 벌어지고, 사이가 벌어지면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고 하였다.
[주D-002]이하 원문 빠짐 : 원문은 ‘無 缺’인데, ‘無’ 자는 결자(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주D-001]부자간에 …… 바인데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부자간에는 책선(責善)하지 아니하나니, 책선하면 사이가 벌어지고, 사이가 벌어지면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고 하였다.
[주D-002]이하 원문 빠짐 : 원문은 ‘無 缺’인데, ‘無’ 자는 결자(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