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순찰사에게 올림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20
순찰사에게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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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因山)이 문득 지나서 왕께서 영원히 떠나셨으니, 하늘을 바라보며 길이 부르짖은들 어느 곳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섣달 추위에 순사또께서는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하관(下官 연암의 자칭)은 노병이 날로 깊어가는데도 오히려 다시 산으로 바다로 헤매면서 기꺼이 밥이나 탐하는 늙은이가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무슨 심보입니까.
지난번 대질 심문할 때에 마침 첫 추위를 만나서 5일 동안 찬 데서 거처한 탓에 다리 부분이 마비된 데다 다시 험하고 먼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오다 보니 마침내 곱사등이가 되고 말았으니, 스스로 가련해한들 어찌하겠습니까. 고을의 폐단이나 백성들의 고질이 모두 고치기 어려운 형편인데, 두어 달 지내는 동안에 비로소 바람마저 매우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몰아치는 폭풍과 비릿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하면 곧 기왓장을 날리고, 고래나 악어의 울음 같은 거센 파도소리가 베갯머리에서 들리는 듯하니, 돌이켜 고향 집이 생각나도, 수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대저 이곳은 한때의 구경꾼들이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명승지로 찾을 만한 땅은 될 수 있지만, 노경에 노닐면서 몸을 보양할 곳은 전혀 못 됩니다. 더구나 하인 하나도 데리고 있지 않고 중처럼 외롭게 살고 있는 신세이리요!
도임한 지 9일 만에 앉은 자리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금방 취리(就理)하는 일로 길을 떠났다가 10월 보름 뒤에 병을 안고 다시 왔는데, 갑자기 황장(黃腸)의 역사(役事)를 당하여 차관(差官)을 겨우 보내고 나니 세금 거두는 일이 시급했고, 환곡 받아들이는 일이 겨우 끝나자 또다시 진영(鎭營)에 죄를 지어 날마다 머리를 썩이고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관(官)에 있은 지 50일이 채 못 되는데, 온갖 사무가 바빠서 두서를 정하지 못한 상황이며, 진영 장교의 목근적간(木根摘奸)은 간교하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어, 촌민들이 겁을 먹고 올린 소장(訴狀)이 날마다 다시 관청의 뜰에 가득합니다. 진영에서는 아무렇게나 쓴 힐책하는 관문(關文)을 보내 단속을 너무 준엄하게 합니다. 어부 한 사람이 배를 고친 일로 인해 좋지 못한 말이 전관(前官)에게까지 파급되도록 하였으니, 제 마음에 미안함이 응당 또 어떠하겠습니까.
이는 당초에 진영 장교들이 지나는 길에 함부로 침탈한 것으로서 바로 그들의 수법인데, 뇌물을 토색질한 흔적을 은폐하고자 하여 사감(私憾)을 품고서 고자질한 것인즉, 교졸(校卒)들의 말만을 들어 부당하게 처리한 형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 곧장 먼저 감영에 보고한 것을 노여워해서, 반드시 한쪽 편을 들면서 자기 주장만 우기고자 하여 이렇게까지 일이 확대되어 버린 것입니다. 비단 저의 곤경이 비할 바 없을 뿐 아니라, 이 일이 전임 수령에게 관계되기 때문에 조사를 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 새로 온 수령이 너무도 어리석어서 사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소홀히 다루었던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끄럽고 한스러운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앞서 순영(巡營)에서 간사한 상인들이 모여드는 폐단을 염려하여 각 고을에 특별히 관문을 보내어 엄하게 경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어찌 유독 양양(襄陽) 일대에만 특별히 진영으로 하여금 따로 목근적간을 하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진영의 장교들이 재삼 와서는, 봉산(封山)의 금표(禁標)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나무 뿌리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많이만 적발하기 위하여 보이는 족족 기록하기 때문에, 산 아래 사는 백성과 다 쓰러져가는 절의 중들이 모두 놀라 도망할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특별히 측근의 비장(裨將)을 보내시어 - 이하 원문 빠짐 -
因山奄過。弓釖永閟。瞻望長號。何所逮及。臘沍。旬宣體履如何。下官衰病日深。而猶復間關嶺海。甘作老饕。是誠何心。曩者置對時。適値初寒。五日處冷。脚部不仁。因復跋涉險遠。遂成癃痤。自憐奈何。邑瘼民肓。俱屬難醫。而居止數朔。始覺風氣絶殊。盲颶腥飈。發輒飄瓦。鯨吼鼉噴。如在枕頭。回想家鄕。千嶂揷昊。大抵一時遊客筇屐賞勝之地則可也。殊
非暮境盤桓嗇養之所。况其不帶一丁。孤棲如僧者乎。到任九日。坐席未溫。旋作就理之行。十月望後。扶病更來。遽當黃膓之役。而差官纔送催科時急。捧糴纔畢。又復速辜鎭營。日事惱撓。默計在官未滿五旬。則百務倥偬。頭緖未定。而鎭校之木根摘奸。譎詭莫測。村氓之生㥘投牒。日復盈庭。鎭營之慢題誶關。操束甚峻。因一海夫之改船。致令不韙之語。波及前倅。其爲不安當復如何哉。此不過當初鎭校之歷路橫侵。乃其伎倆而欲掩索賂之跡。含憾訐訴。則未免偏聽。校卒曲爲之地。且爲發怒於徑先報營。必欲右袒立幟。轉展至此。非但困境無比。因此事關交承。至於行査之境。此莫非新到昬聵。不諒事勢。踈率所致。慚恨何極。前此巡營爲軫奸商流入之弊。別關嚴飭於列邑。非止一再。則何獨於襄陽一境。而特使鎭營。別爲摘奸其木根乎。今其鎭校再來三來。不分封山之標內標外。無論木根之若大若小。貪多務得。有見輒錄。山下居
民。殘寺僧徒。咸思駭散。幸望特遣親裨 缺。
[주C-001]순찰사에게 올림 : 연암은 순조(純祖) 즉위년(1800) 9월에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부임하였다. 이 편지는 그해 연말에 강원 감사 이노춘(李魯春)에게 보낸 것이다. 같은 시기에 족제(族弟) 박준원(朴準源)에게 보낸 편지가 《연암집》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주D-001]인산(因山)이 …… 떠나셨으니 : 순조 즉위년 11월에 정조(正祖)의 장례가 거행된 사실을 가리킨다. 원문은 ‘因山奄過 弓劍永閟’인데, ‘궁검영비(弓劍永閟)’는 활과 칼이 영영 감춰지고 말았다는 뜻으로,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승천할 적에 활을 지상에 떨어뜨렸으며 그의 관에는 칼만 남아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주D-002]곱사등이 : 원문은 ‘癃痤’인데 ‘癃疾’의 오류인 듯하다. 융질(癃疾)은 늙고 병약하여 허리가 굽는 병을 말한다.
[주D-003]취리(就理) : 죄를 지은 벼슬아치가 의금부에 나아가 심문을 받는 일을 말한다.
[주D-004]황장(黃腸)의 역사(役事) : 황장은 왕실에서 관을 만드는 데 쓰는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을 말하는데, 양양에는 황장목 숲이 많았다. 정조가 승하한 뒤 양양에 황장목을 벌채하라는 부역이 내렸으며, 임시로 파견된 차관(差官)이 그 일을 감독하였다. 《過庭錄 卷3》
[주D-005]목근적간(木根摘奸) : 산림의 도벌(盜伐) 여부를 조사하는 일을 말한다.
[주D-006]봉산(封山)의 금표(禁標) : 봉산은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한 산이고, 금표는 봉산의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푯말이다.
[주D-001]인산(因山)이 …… 떠나셨으니 : 순조 즉위년 11월에 정조(正祖)의 장례가 거행된 사실을 가리킨다. 원문은 ‘因山奄過 弓劍永閟’인데, ‘궁검영비(弓劍永閟)’는 활과 칼이 영영 감춰지고 말았다는 뜻으로,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승천할 적에 활을 지상에 떨어뜨렸으며 그의 관에는 칼만 남아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주D-002]곱사등이 : 원문은 ‘癃痤’인데 ‘癃疾’의 오류인 듯하다. 융질(癃疾)은 늙고 병약하여 허리가 굽는 병을 말한다.
[주D-003]취리(就理) : 죄를 지은 벼슬아치가 의금부에 나아가 심문을 받는 일을 말한다.
[주D-004]황장(黃腸)의 역사(役事) : 황장은 왕실에서 관을 만드는 데 쓰는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을 말하는데, 양양에는 황장목 숲이 많았다. 정조가 승하한 뒤 양양에 황장목을 벌채하라는 부역이 내렸으며, 임시로 파견된 차관(差官)이 그 일을 감독하였다. 《過庭錄 卷3》
[주D-005]목근적간(木根摘奸) : 산림의 도벌(盜伐) 여부를 조사하는 일을 말한다.
[주D-006]봉산(封山)의 금표(禁標) : 봉산은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한 산이고, 금표는 봉산의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푯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