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영목당(榮木堂) 이공(李公)에 대한 제문(祭文)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23

영목당(榮木堂) 이공(李公)에 대한 제문(祭文)

 

 


유세차(維歲次) 을해(1755) 11월 경오삭(庚午朔) 1일 경오에 반남(潘南) 박지원은 삼가 술과 과일로 제물을 갖추어, 홍문관 교리 이공의 영전에 곡하며 영결을 고합니다.

내 나이 열여섯에 / 余年二八
덕망 높은 집안에 장가드니 / 入贅賢門
형제분이 우애로워 / 弟兄湛樂
화기가 애애했네 / 和氣氤氳
장인께서 이르시되 / 外舅謂我
내 아우 글 좋아하여 / 余季好文
벼슬에는 비록 소홀해도 / 仕宦雖疎
문학에는 몹시 부지런하니 / 文學甚勤
생관에 와 머물거라 / 來舍甥館
내 아우가 너의 스승이니라 / 余季汝師
나에 대한 공의 사랑 / 公之愛我
장인보다 더 깊어서 / 視舅亦深
내게 경서(經書) 가르칠 제 / 授我詩書
엄한 일과 사정없었네 / 嚴課無私
공 모시고 따라다닌 지 / 陪公周旋
이제 어언 사 년일세 / 四年于玆
세상 따라 문학도 쇠퇴해지매 / 文與世降
공이 다시 일으켜 세웠나니 / 公起其衰
산문은 한유의 골수를 취했고 / 文劈韓骨
시는 두보의 속살을 얻었네 / 詩斲杜肌
재주 없는 이 소자는 / 小子不佞
어리석고 노둔한데 / 才魯性癡
공의 유도에 힘입어서 / 荷公誘掖
우공이산(愚公移山) 바랐더니 / 庶幾愚移
내 한창 진취하려는데 / 余方有進
공이 갑자기 별세하시니 / 公奄棄世
갈림길 하많은데 / 茫茫岐路
어느 분을 찾아가야 하리 / 我尙疇詣
옛 전(傳) 한 편 읽자 해도 / 讀古一傳
막히는 곳 너무 많아 / 已多觝滯
두어 줄만 읽어 내려가면 / 數行才下
뭇 의심이 앞을 가려 / 群疑交蔽
책을 덮고 장탄식 / 廢書太息
슬픈 눈물 뒤따르네 / 繼以悲涕
의심나면 뉘게 묻고 / 我疑何質
게으르면 뉘 잡아주리 / 我惰孰勵
생각할수록 슬픈 것은 / 念玆益悲
실은 제 처지가 슬퍼서네 / 實爲我地
지난 여름 장마와 무더위에 / 去夏潦暑
공의 병이 처음 생겼네 / 公疾始祟
아름다운 암벽 맑은 샘에서 / 玉巖淸泉
공은 갓끈을 씻고 / 公于濯纓
기수(沂水)에서 목욕할 제 입을 새옷 / 浴沂新服
그날에 다 지어졌는데 / 此日旣成

이 소자 돌아보며 이르시길 / 顧謂小子
어찌 물에서 보지 않느냐 / 盍觀於水
웅덩이를 채우고야 나아가니 / 盈科而進

뜻 이루는 것도 이 같은 법 / 有爲若是
흘러가는 냇물처럼 바빠야 한다 / 逝水其忙
그 말씀 아직도 귀에 쟁쟁 / 言猶在耳
이제 와서 생각하니 / 而今思之
공의 마지막 가르침이셨네 / 警誨止此
하늘이 우리 공을 낳으시고 / 天生我公
어찌 수명은 짧게 주셨는고 / 年命何屯
거적 자리엔 상주(喪主) 없고 / 苫席無孤
북당(北堂)에는 모친 계시네 / 萱堂有親
모를 것이 이치라서 / 昧昧者理
신에게도 묻지 못해 / 難質鬼神
후사 없고 단명한 건 / 無年無嗣
옛사람도 슬퍼한 일 / 昔人所愍
누가 이를 주장했나 / 孰主張是
그도 또한 잔인하이 / 其亦不仁
장원 급제 일렀으나 / 早擢魁科
집은 몹시 청빈했고 / 家甚淸貧
화직(華職) 요직(要職) 거쳤지만 / 歷敭華要
고을 수령되어 부모 봉양 못 했네 / 養未專城
금마옥당도 / 金馬玉堂
공에겐 영화가 아니었어라 / 於公非榮
전에 상소 한번 올렸다가 / 曩進一疏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가고 마셨지
/ 遂竄南荒
나는 병으로 송별을 못 해 / 余病未別
고당에 와 절 드리니 / 來拜高堂
벽에 지도 걸어놓고 / 壁掛輿圖
가리키며 눈물지으셨네 / 指示泫然
아스랗다 귀양 가시는 분 / 逖矣遷人
산과 물이 얼기설기 / 鬱繆山川
아무 물 아무 산을 / 某水某山
어느 제 다 거칠꼬 / 何時度越
생이별도 못 참거든 / 不忍生離
사별이야 오죽하리 / 況此死別
전에 공이 귀양 가실 젠 / 昔公謫去
위로드릴 말이라도 있었지만 / 奉慰有說
지금 공이 이렇게 가실 제는 / 今公此行
차마 무슨 말을 하오리 / 忍作何言
이내 가슴 답답하여 / 余懷抑塞
저도 몰래 울음 삼키네 / 不覺聲呑
광주(廣州)라 그 남쪽이 / 維廣之陽
바로 공의 안식처일레
/ 卽公眞宅
밤 지나면 계빈이라 / 啓殯隔宵
슬픈 영결 고하오니 / 含哀告訣
문장 비록 졸렬해도 / 文辭雖拙
가슴속에서 우러나왔고 / 腑肺攸出
제물 비록 박하지만 / 奠物雖薄
정례로써 올린 거니 / 情禮所設
밝으신 영령이시여 / 尊靈不昧
이 술 한 잔 받으소서 / 庶歆玆酌
상향 / 尙饗


 

[주C-001]영목당(榮木堂) : 연암의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 : 1716~1755)의 호이다. 연암의 장인인 이보천(李輔天)의 동생으로,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이양천은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수학 시절의 연암에게 문학을 지도하였다. 《연암집》 권3 ‘영목당 이공에 대한 제문〔祭榮木堂李公文〕’ 참조.
[주D-001]경오삭(庚午朔) 1일 경오 : 고대에는 날짜를 적을 적에 ‘元嘉三年三月丙子朔二十七日壬寅’이라는 식으로 연월(年月) 다음에 반드시 초하루를 뜻하는 삭(朔) 자를 붙여서 삭(朔) 제(第) 몇 일(日)이라 쓰고 또 간지(干支)를 붙였다. 따라서 초하루를 적을 때에도 이 제문처럼 ‘乙亥十一月庚午朔一日庚午’라 하여, 번거롭지만 날짜를 중복해서 적었다. 《日知錄 卷20 年月朔日子》
[주D-002]생관(甥館) : 사위가 거처하는 방을 말한다.
[주D-003]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愚公)이란 노인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들을 깎아 없애버리고자 결심하고 쉬지 않고 노력했더니 상제(上帝)가 감동하여 그 산들을 딴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하는 《열자(列子)》 탕문(湯問) 중의 우화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침내 큰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주D-004]옛 …… 해도 : ‘옛 전(傳)’은 《사기》나 《한서》에 실린 전(傳)들을 가리킨다. 연암은 이양천으로부터 사기를 배웠는데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본떠 이충무전(李忠武傳)을 지었더니, 이양천은 사마천(司馬遷)이나 반고(班固)와 같은 경지를 얻었다고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過庭錄 卷1》
[주D-005]기수(沂水)에서 …… 지어졌는데 :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曾點)은 “늦은 봄이 되어 봄옷이 다 지어지면, 관(冠) 쓴 어른 5, 6명, 동자 6, 7명과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답하였다. 《論語 先進》 여기서는 이양천이 연암을 데리고 물가로 놀러 나갔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6]어찌 …… 나아가니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물을 보는 데에 방법이 있다. …… 흐르는 물이란 것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觀水有術 ……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고 하였고, 이루 하(離婁下)에 “근원이 있는 물은 용솟음치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우고야 나아가 사해로 쏟아진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고 하였다. 쉬지 않고 실천함으로써 차근차근 학업을 성취할 것을 당부한 말이다.
[주D-007]흘러가는 …… 한다 :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아가는 것은 이 냇물과 같도다.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고 하였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따르면, 이 구절은 쉬지 말고 면학할 것을 당부한 말이다.
[주D-008]장원 급제 일렀으나 : 이양천은 1749년(영조 25) 춘당시(春塘試)에 문과 급제하였다.
[주D-009]화직(華職) 요직(要職) 거쳤지만 : 이양천은 1749년 이후 1755년 작고할 때까지 사간원 정언ㆍ헌납, 홍문관 부수찬ㆍ부교리ㆍ교리, 세자시강원 사서ㆍ필선 등을 지냈다.
[주D-010]금마옥당(金馬玉堂) : 원래 한(漢) 나라 때 글 잘짓는 신하들이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던 궁중의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를 가리키는데, 후대에는 한림원(翰林院)의 학사(學士)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양천이 홍문관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한림원의 학사에 견주어 표현한 것이다.
[주D-011]전에 …… 마셨지 : 이양천은 홍문관 교리로서 영조 28년(1752) 10월 소론의 영수인 이종성(李宗城)을 영의정으로 임명한 조치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연암집》 권3 불이당기(不移堂記) 참조.
[주D-012]광주(廣州)라 …… 안식처일레 : 이양천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 돌마면(突馬面) 율촌(栗村)에 있었다.
[주D-013]계빈(啓殯) : 발인을 할 때에 관을 내오기 위하여 빈소(殯所)를 여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