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장인 처사(處士) 유안재(遺安齋) 이공(李公)에 대한 제문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23

장인 처사(處士) 유안재(遺安齋) 이공(李公)에 대한 제문

 

 


정유년(1777) 6월 23일 정사(丁巳)일에 사위 반남 박지원은 삼가 술을 올려 장인 유안재 이공의 영전에 곡하며 영결을 고합니다.
아아, 이 소자 나이 열여섯에 선생의 가문에 사위로 들어와서 지금 26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어리석고 우매하여 선생의 도를 잘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부하여 선생을 부끄럽게 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제 선생이 멀리 떠나시는 날에 한마디 말로써 무궁한 슬픔을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아 / 嗚呼
선비로서 일생 마치는 걸 / 以士沒身
세상 사람들은 수치로 알지만 / 世俗所恥
이를 비천하다 여기는 저들이 / 彼以卑賤
어찌 선비를 알 수 있으랴 / 惡能識士
이른바 선비란 건 / 所謂士者
상지하고 득기하나니 / 尙志得己
유하(柳下)의 절개와 유신(有莘)의 자득(自得)도 / 柳介莘囂
이와 같은 데 불과한 것 / 不過如是
이로써 보자하면 / 由是觀之
선비로 일생 마치기도 / 沒身以士
역시 어렵다 하리 / 亦云難矣
아아 / 嗚呼
선생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 先生存沒
선비 본분 안 어겼네 / 不違士也
예순이라 네 해 동안 / 六十四年
글을 진정 잘 읽으시어 / 善讀書者
오랫동안 쌓인 빛이 / 積久光輝
온아(溫雅)하게 드러났지 / 溫乎發雅
배부른 듯이 굶주림을 즐기셨고 / 樂飢若飽
과부처럼 절개 지키셨네 / 守節如寡
고고해도 무리를 떠나지 않고 / 孤不離群
꼿꼿해도 남을 책하지 않으셨네 / 貞不詭物
발언은 정곡을 찌르고 / 發言破鵠
일 처리는 똑부러지게 하셨지 / 制事截鐵
빙호추월처럼 / 氷壺秋月
안팎 모두 툭 틔었지 / 外內洞澈
천박한 세상의 썩은 유자(儒者)들은 / 陋世酸儒
변함없는 선비 절개 부끄러워하는데 / 恥士一節
객기는 진작 다 없애셨고 / 夙刊客浮
만년에는 호걸 기상 감추셨네 / 晩韜英豪
진실만을 바라보고 탄탄대로 걸으시어 / 視眞履坦
심기가 차분히 가라앉으셨지 / 心降氣調
타고난 천성 외엔 / 所性之外
털끝 하나 아니 붙여 / 不著一毫
먹 묻으면 씻어 버리고 / 墨則斯浣
논의 잡초 어찌 아니 뽑으리 / 稂豈不薅
팔을 베고 물 마시건 / 曲肱飮水
좋은 말 사천 필을 매어 놓건
/ 繫馬千駟
덜고 보탬 있지 않네 / 旣無加損
사(士)라는 한 글자엔 / 士之一字
운명이란 정해진 것 / 命有所定
때도 만나야 하는 법 / 時有所値
이를 분별할 줄 아는 이만 / 能辨此者
공의 뜻을 알게 되리 / 始識公志
아아 / 嗚呼
대들보 부러진 슬픔에다 / 梁木之哀
강한 같은 그리움으로
/ 江漢之思
잔을 올리며 통곡하노니 / 奠斝一慟
만사가 끝났도다 / 萬事已而
공의 모습 빼닮은 / 眉宇之寄
아들 한 분 두셨으니 / 獨有庭芝
즐겁거나 슬프거나 잠깐 사이라도 / 歡戚造次
바라건대 함께 손잡고 / 庶共挈携
서로 책선하고 화기애애하여 / 不忘偲怡
알아주신 은혜 보답 잊지 않으리 / 以報受知
아아 / 嗚呼
예전의 어린 사위 / 昔日小婿
이젠 저도 백발이 되었다오 / 今亦白頭
이제부터 죽기 전까지 / 從今未死
허물 적기 바라오니 / 庶寡悔尤
은덕과 사랑으로 / 維德之愛
음조(陰助)하여 주소서 / 願言冥酬
간장에서 쏟는 눈물 / 肝膈之寫
영령께서 아실는지 / 靈或知不
아아 슬프외다 / 嗚呼哀哉
상향 / 尙饗


 

[주C-001]유안재(遺安齋) : 이보천(李輔天 : 1714~1777)의 호이다. 이보천은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인 계양군(桂陽君)의 후손으로,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제자인 종숙부 이명화(李命華)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같은 농암 제자인 어유봉(魚有鳳)의 사위가 되어 그에게서도 사사받음으로써, 우암(尤庵)에서 농암으로 이어지는 노론의 학통을 계승한 산림 처사로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사위인 연암에게 《맹자》를 가르쳤으며, 정신적으로 큰 감화를 주었다고 한다.
[주D-001]그래도 …… 않았다 : 이 제문에서 장인을 예찬한 내용이 연암의 사호(私好)에서 나온 아부의 발언이 아님을 미리 밝혀두기 위해 한 말이다. 《맹자》 공손추 상에서 맹자는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은 지혜가 성인(聖人)을 넉넉히 알아볼 만하였다. 낮추어 보더라도 그들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汚不至阿其所好〕”라고 하면서, 재아와 자공과 유약이 그의 스승 공자를 극구 예찬한 말을 공자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서 인용하였다. 또한 이루 하에 “명성이 실정보다 지나침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聲聞過情 君子恥之〕”고 하였다.
[주D-002]이를 …… 저들이 : 원문 중 ‘卑賤’이 ‘貧賤’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3]상지(尙志)하고 득기(得己)하나니 : 《맹자》 진심 상에서 제(齊) 나라 왕자 점(墊)이 “선비란 무슨 일을 하는가?”라고 묻자, 맹자는 “뜻을 고상하게 가진다〔尙志〕”라고 답했다. 또한 송구천(宋句踐)이 “어떻게 해야 이처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가?〔何如斯可以囂囂矣〕”라고 묻자, 맹자는 “곤궁해도 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는 스스로 만족한다.〔窮不失義 故士得己焉〕”고 하였다.
[주D-004]유하(柳下)의 …… 자득(自得)도 : 유하는 노(魯) 나라 대부(大夫) 전금(展禽)으로, 유하라는 곳에 살았고 시호(諡號)가 혜(惠)였기 때문에 유하혜(柳下惠)라고 불렀다. 《맹자》 진심 상에, “유하혜는 삼공(三公)의 지위로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하였다. 유신(有莘)의 자득(自得)이란 이윤(伊尹)이 유신의 들판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을 때 탕(湯) 임금이 사람을 시켜 초빙하자, 이윤이 “스스로 만족해하며 말하기를〔囂囂然曰〕 ‘내가 어찌 탕왕의 폐백을 받아들이리오. 내 어찌 들판에서 농사지으며 이대로 요순(堯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주D-005]무리를 떠나지 않고 : 동문지간(同門之間)인 벗들을 떠나서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을 이군삭거(離群索居)라 한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子夏)가 아들을 여의고 상심하여 실명(失明)을 하자 증자(曾子)가 조문을 왔는데, 죄 없는 자신에게 불행을 주었다고 자하가 하늘을 원망하므로 증자가 이를 나무라며 그의 잘못을 성토하니, 자하는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 산 지 역시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뉘우쳤다고 한다.
[주D-006]빙호추월(氷壺秋月) : 얼음을 담은 옥항아리와 가을철의 밝은 달처럼 마음이 맑고 깨끗함을 말한다.
[주D-007]팔을 …… 놓건 :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그런 가운데에서도 역시 즐거움은 있다.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한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고 하였고,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이윤(伊尹)은 유신의 들판에서 농사짓고 살 적에 요순(堯舜)의 도(道)를 좋아하여 의(義)가 아니고 도(道)가 아니거든, 천하를 녹으로 주어도 돌아보지 않고, 좋은 말 4000필을 마구간에 매어 놓아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주D-008]대들보 …… 그리움으로 : 《예기》 단궁 상에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꿈을 꾸고는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哲人)이 죽을 것이다.”라고 노래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들보가 부러진다는 것은 스승이나 철인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또한 《맹자》 등문공 상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양하여 “강한(江漢)으로 씻은 것 같고 가을 볕으로 쪼인 것 같아서 밝고 깨끗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다.” 하였다. 강한(江漢)은 양자강과 한수(漢水)를 말한다. 따라서 강한 같은 그리움이란 작고한 스승을 애타게 추모함을 뜻한다.
[주D-009]아들 한 분 두셨으니 : 빼어난 자제(子弟)를 뜰에서 자라는 지란(芝蘭)과 옥수(玉樹)에 비유하여 ‘정지(庭芝)’니 ‘정옥(庭玉)’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을 가리킨다.
[주D-010]서로 책선하고 화기애애하여 : 《논어》 자로(子路)에서 자로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을 선비라 부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간절하게 서로 책선(責善)하고 화기애애하면 선비라고 부를 수 있다. 붕우간에 간절하게 책선하고 형제간에 화기애애하니라.〔切切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切切偲偲 兄弟怡怡〕”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