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31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

 

 


이 세상 사람들을 내 살펴보니 / 我見世之人
남의 문장을 기리는 자는 / 譽人文章者
문(文)은 꼭 양한을 본떴다 하고 / 文必擬兩漢
시는 꼭 성당을 본떴다 하네 / 詩則盛唐也

비슷하다는 그 말 벌써 참이 아니라는 뜻 / 曰似已非眞
한당(漢唐)이 어찌 또 있을 리 있소 / 漢唐豈有且
우리나라 습속은 옛 투식 즐겨 / 東俗喜例套
당연하게 여기네 촌스러운 그 말을 / 無怪其言野
듣는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해 / 聽者都不覺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없군 / 無人顔發赭
못난 놈은 기쁨이 뺨에 솟아서 / 騃骨喜湧頰
입을 벌려 웃어 대며 침을 흘리고 / 涎垂噱而哆
약은 놈은 갑자기 겸양을 발휘하고 / 黠皮乍撝謙
삼십 리나 피하여 달아나는 척 / 逡巡若避舍
허한 놈은 두 눈이 놀라 휘둥글 / 餒髥驚目瞠
더웁지 않은데도 땀 쏟아지고 / 不熱汗如瀉
약골은 굉장히도 부러워하여 / 懦肉健慕羨
이름만 들어도 향기 나는 듯 / 聞名若蘅若
심술꾼은 공공연히 노기를 띠어 / 忮肚公然怒
주먹 불끈 후려치길 생각한다오 / 輒思奮拳打
내 또한 이와 같은 기림을 듣고 / 我亦聞此譽
갓 들을 땐 낯가죽이 에이는 듯싶더니 / 初聞面欲剮
두 번째 듣고 나니 도리어 포복절도 / 再聞還絶倒
여러 날 허리 무릎 시큰하였다네 / 數日酸腰髁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더욱 흥미 없어 / 盛傳益無味
밀조각을 씹은 듯이 도리어 맛이 없더군 / 還似蠟札飷
그대로 베껴서는 진정 안 될 말 / 因冒誠不可
오래 가면 마치도 실성하여 바보가 된 듯하지 / 久若病風傻
심술쟁이를 돌아보며 얘기하노니 / 回語忮克兒
잔재주 따윌랑 우선 버리게 / 伎倆且姑舍
조용히 내가 한 말 들어나 보면 / 靜聽我所言
네 마음 응당 너그러워질 터 / 爾腹應坦奲
흉내쯤이야 시새울 게 무엇이 있다고 / 摸擬安足妒
스스로 야료를 부리다니 무안스럽지 않나 / 不見羞自惹
걸음을 배우려다가 되려 기어서 오고 / 學步還匍匐
찌푸림을 본받으면 단지 추할 뿐 / 效嚬徒醜䰩
이제 알리라 그려 놓은 계수나무가 / 始知畵桂樹
생생한 오동만 못하다는 걸 / 不如生梧檟
손뼉 치며 초(楚) 나라를 놀라게 해도 / 抵掌驚楚國
마침내는 의관(衣冠)을 빌린 것이며 / 乃是衣冠假

푸르고 푸른 언덕의 보리를 노래한 것은 / 靑靑陵陂麥
입속의 구슬을 몰래 빼내기 위함이라 / 口珠暗批撦

제 속이 속된 줄은 생각 안 하고 / 不思膓肚俗
아름다운 붓 벼루만 애써 찾거든 / 强覓筆硯雅
육경의 글자로만 점철하는 건 / 點竄六經字
비하자면 사당에 의탁한 쥐와 꼭 같지 / 譬如鼠依社

훈고(訓詁)의 어휘를 주워 모으면 / 掇拾訓詁語
못난 선비들은 입이 다 벙어리 되네 / 陋儒口盡啞
태상이 제물을 벌여 놓으니 / 太常列飣餖
절인 생선과 젓갈 뒤섞여 썩은 냄새 진동하고 / 臭餒雜鮑鮓
여름철 농사꾼이 허술한 제 차림 잊고 / 夏畦忘疎略
창졸간에 갓끈과 띠쇠로 겉치장한 셈이지 / 倉卒飾緌銙
눈앞 일에 참된 흥취 들어 있는데 / 卽事有眞趣
하필이면 먼 옛것을 취해야 하나 / 何必遠古抯
한당은 지금 세상 아닐 뿐더러 / 漢唐非今世
우리 민요 중국과 다르고말고 / 風謠異諸夏
반고(班固)나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 班馬若再起
반고나 사마천을 결단코 모방 아니 할걸 / 決不學班馬
새 글자는 창조하기 어렵더라도 / 新字雖難刱
내 생각은 마땅히 다 써야 할 텐데 / 我臆宜盡寫
어쩌길래 옛 법에만 구속이 되어 / 奈何拘古法
허겁지겁하기를 붙잡고 매달린 듯 하나 / 刦刦類係把
지금 때가 천근(淺近)하다 이르지 마소 / 莫謂今時近
천년 뒤에 비한다면 당연히 고귀하리 / 應高千載下

손자(孫子) 오자(吳子)의 병서 사람마다 읽긴 하지만 / 孫吳人皆讀
배수진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지 / 背水知者寡
남들이 사 두지 않는 물건을 서둘러 산 이는 / 趣人所不居
유독 저 여불위(呂不韋)란 큰 장사치뿐이었네 / 獨有陽翟賈
이 몸은 음(陰)이 허해 병이 깊어져 / 而我病陰虛
사 년째 다리가 쑤시고 아팠다오 / 四年疼跗踝
적막한 물가에서 그대를 만나니 / 逢君寂寞濱
가을철 쓸쓸한 규방의 미인마냥 얌전도 하이 / 靜若秋閨姹
웃음을 자아내는 광형(匡衡)이 방금 온 듯 / 解頤匡鼎來
몇 밤이나 등잔 심지 돋우었던가 / 幾夜剪燈灺
글 평론 약속한 듯 서로 꼭 들어맞으니 / 論文若執契
두 눈을 빛내며 술잔을 잡네 / 雙眸炯把斝
하루아침에 막힌 가슴 쑥 내려가니 / 一朝利膈壅
입에 가득 매운 생강 씹은 맛일레 / 滿口嚼薑葰
평생에 숨겨 둔 두어 줌 눈물 / 平生數掬淚
싸 두었다 뿌리노라 가을 하늘에 / 裹向秋天灑
목수장이 나무 깎길 맡았지마는 / 梓人雖司斲
대장장이를 배척한 일이 없었네 / 未曾斥鐵冶
미장이는 제 스스로 쇠흙손 잡고 / 圬者自操鏝
기와 이는 놈 제 스스로 기와 만드네 / 蓋匠自治瓦
그들이 방법은 비록 같지 않지만 / 彼雖不同道
목적은 큰 집을 짓자는 거야 / 所期成大厦
저만 옳다 하면 남이 붙지를 않고 / 悻悻人不附
지나치게 깔끔을 떨면 복 못 받느니 / 潔潔難受嘏
그대는 아무쪼록 현빈을 지키고 / 願君守玄牝
아무쪼록 기저를 장복(長服)하게나 / 願君服氣姐
부디 한창 젊을 적에 노력한다면 / 願君努壯年
전문이 동쪽으로 활짝 열리리 / 專門正東閜


 

[주C-001]좌소산인(左蘇山人) : 서유본(徐有本 : 1762~1822)의 호이다. 서유본은 그 아우 서유구(徐有榘)와 함께 연암을 종유(從遊)하고 문학적으로 큰 감화를 받았다.
[주D-001]문(文)은 …… 하네 : 명(明) 나라 왕세정(王世貞)이 “문은 반드시 서한을 본뜨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떠야 한다.〔文必西漢 詩必盛唐〕”고 제창하여 의고주의(擬古主義) 문풍이 성행하게 되었다.
[주D-002]향기 나는 듯 : 원문의 형약(蘅若)은 향초(香草)인 두형(杜蘅)과 두약(杜若)을 말한다. 형약(蘅若)의 ‘약(若)’은 이때 상성(上聲) 마운(馬韻)으로 압운하였으므로 ‘人’과 ‘者’의 반절(反切)인 ‘야’로 읽어야 한다.
[주D-003]걸음을 …… 오고 : 수릉(壽陵) 지방의 젊은이가 당시 조(趙) 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세련된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이를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예전의 걸음걸이마저 잃어버린 채 기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秋水》
[주D-004]찌푸림을 …… 뿐 :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는 서시(西施)가 가슴앓이로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이자 이웃의 추녀가 그 모습을 흉내 내었으나 도리어 더 추해 보였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天運》
[주D-005]손뼉 …… 것이며 : 초(楚) 나라 악공(樂工) 우맹(優孟)이 죽은 초 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의관을 입고 장왕(莊王) 앞에 나타나 손뼉을 치면서 이야기하자 장왕이 깜짝 놀라면서 손숙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으로 믿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주D-006]푸르고 …… 위함이라 : 장자(莊子)가 유자(儒者)를 도굴꾼에 비유해 풍자한 글에서, 유자가 시체의 입에 물고 있는 구슬을 보고 “푸르고 푸른 보리, 언덕 위에 자랐네. 살아 생전 베풀지 않더니만, 죽어서 구슬 문들 무엇하리오.〔靑靑之麥 生于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爲〕”라는 시를 읊조리며 입을 벌려 구슬을 끄집어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시문(詩文)을 지을 때 남의 훌륭한 구절을 훔쳐 내어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말한 것이다. 《莊子 外物》
[주D-007]육경(六經)의 …… 같지 : 사람들이 범할 수 없는 사당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쥐처럼, 사람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성스러운 경전(經典)에 의탁하여 시문을 짓는 것을 말한다. 《晏子春秋 問上九》
[주D-008]태상(太常) : 제사와 예악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주D-009]지금 …… 고귀하리 : 근대 이전 동양에서는 복고적인 역사관에 따라 문학에서도 옛것일수록 고귀하게 여기고 요즘 것일수록 천시하는 귀고천금(貴古賤今)의 경향이 심했다. 연암은, 지금 것도 천년이 지나면 옛것이 되어 고귀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여 복고적인 사상을 비판한 것이다.
[주D-010]배수진(背水陣)을 …… 드물지 : 한(漢) 나라 장수 한신(韓信)은 “사지(死地)에 빠진 뒤에야 살 수 있고, 죽을 자리에 놓인 뒤라야 산다.”는 병법을 활용하여, 오합지졸들을 모아 배수진을 침으로써 조(趙) 나라 군대를 대파할 수 있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11]여불위(呂不韋) : 전국 시대 말기 양적현(陽翟縣)의 대상인이다. 조(趙) 나라에 볼모로 와 천대받고 있던 진(秦) 나라 공자 자초(子楚)를 만나자 이를 ‘사 둘 만한 기화〔奇貨可居〕’라 여기고는, 계책을 써서 진 나라의 왕이 되게 함으로써 그의 아들인 진 시황에 이르기까지 진 나라의 승상을 지낼 수 있었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주D-012]이 몸은 …… 깊어져 : 한의학에서 음(陰)에 속하는 정액이나 진액(津液)이 부족해지는 병을 음허(陰虛)라고 한다. 음허가 되면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과 천식이 생긴다고 한다.
[주D-013]웃음을 …… 듯 : 한(漢) 나라 광형(匡衡)은 《시경》에 대한 풀이를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시경에 대해 풀이할 사람이 없다 싶으면 광형이 바로 오고, 광형이 시경을 풀이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웃음을 터뜨린다.〔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 하였다. 《漢書 卷81 匡張孔馬傳》
[주D-014]현빈(玄牝) : 《노자(老子)》 6장에 “곡신은 죽지 않으니 현빈이라 이른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天地之根〕”라고 하였다. 현빈은 현묘한 모체(母體)란 뜻으로, 양생(養生)의 도(道)를 가리킨다.
[주D-015]기저(氣姐) : 기저의 저(姐)는 모(母)와 같은 뜻으로 《說文 女部》, ‘玆’와 ‘野’의 반절인 ‘자’로 읽어야 한다. 기저는 기모(氣母), 즉 우주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복희씨가 도를 얻어 기모를 배합했다고 한다. 복기(服氣)는 도가(道家)의 양생술인 호흡법을 말한다.
[주D-016]전문(專門)이 …… 열리리 : 이백(李白)의 고시(古詩) 59수 중 제 3 수에서 진 시황(秦始皇)이 천하를 제압한 사실을 노래하면서, “함곡관(函谷關)이 동쪽으로 활짝 열렸네.〔函谷正東開〕”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육국(六國)을 병합하자 침략을 두려워할 일이 없어, 그동안 굳게 닫아걸었던 동쪽 관문(關門) 함곡관을 활짝 열어 두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좌소산인 서유본이 문장 공부에 전념한다면 장차 천하를 제압하는 명가(名家)가 되리라는 격려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