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절구 네 수 제목 없음. 연경에 들어가는 사람을 송별한 때이거나 연경에 가면서 지은 잡영(雜咏)인 듯하다.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49

절구 네 수 제목 없음. 연경에 들어가는 사람을 송별한 때이거나 연경에 가면서 지은 잡영(雜咏)인 듯하다.

 

 


먼 길 나선 옷차림 월 나라 비단 치마로 갈아입었으니 / 征裙換盡越羅裳
강서(江西)의 문란(文蘭)으로 여점(旅店) 가득 향기롭네 / 江右文蘭滿店香
오직 조선에만 그 슬픈 사랑 이야기 글로 엮어 전해졌나니 / 唯有東韓編艶史
쓸쓸한 진자점(榛子店) 성벽 석양을 띠었구려 / 城寒榛子帶斜陽

화려한 집의 닭 울음소리 늘어진 버들처럼 길어라 / 金屋鷄聲似柳長
배신이 응대한 말 이제껏 향기롭네 / 陪臣牙頰至今香
노구교 새벽달은 상기도 맑고 고운데 / 蘆溝曉月涓涓在
심양왕의 만권당을 어느 뉘 알리 / 誰識瀋王萬卷堂

육왕(六王)을 겨우 끝장내자 한 철퇴가 날아드니 / 六王纔畢一椎來
산신(山神)은 소리 없고 백옥만 애처롭네 / 尾蔗閒談推第一
/ 山鬼無聲白璧哀
미자한담에서 그를 당세 제일의 재사(才士)라 추앙하니
원매(袁枚) 같은 사람 중국에 몇이더뇨 / 幾人中土似袁枚

난하(灤河)의 맑은 모래 외로운 저 섬 속에 / 灤水沙晴島嶼孤
신세 좋은 해오라기는 티끌 한 점 안 묻었네 / 鵁鶄身世一塵無

백이(伯夷) 숙제(叔齊) 사당 아래 서글피 섰노라니 / 夷齊祠下悄然立
서희(徐熙)처럼 몰골도를 그리고 싶어지네 / 欲寫徐熙沒骨圖


 

[주C-001]연경에 …… 듯하다 : 네 수 모두 연행 도중에 지은 시임이 분명하다.
[주D-001]먼 길 …… 갈아입었으니 : 청 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강서성(江西省) 출신으로 수재(秀才) 우상경(虞尙卿)의 젊은 아내였던 계문란(季文蘭)은 남편이 만주족에게 피살당하고 자신은 납치되어 심양(瀋陽)으로 팔려 가면서, 산해관(山海關) 밖 진자점(榛子店)의 벽에다 구원을 호소하는 칠언절구 1수를 남겼다. 《열하일기》 피서록에 그 시의 전문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시구는 그 시의 둘째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2]오직 …… 전해졌나니 : 1683년 사신으로 갔던 김석주(金錫冑)가 처음 계문란의 시를 기록하여 돌아왔고, 《息菴集》 그 이듬해 남구만(南九萬)도 그 시를 보았다고 했으며, 1712년 김창업(金昌業)도 그 시를 보고 차운한 시를 남겼다. 《老稼齋燕行錄》 그 이후 연행(燕行)에 나선 조선 문사들은 진자점을 지날 적마다 계문란의 고사를 회상하면서 시를 짓곤 하였다.
[주D-003]화려한 …… 길어라 : 고려 때 충선왕(忠宣王)은 원(元) 나라 수도에서 만권당(萬卷堂)이란 서실을 짓고 기거하면서 조맹부(趙孟頫) 등 저명한 문사들과 교제했는데, 하루는 충선왕이 “닭 울음소리가 문 앞의 버드나무 같네.〔鷄聲恰似門前柳〕”라는 시구를 지었으나, 중국 문사들이 그 출처를 묻는데 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왕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고려 사람의 시에 “해 돋는 지붕 위로 금계가 우는데, 늘어진 버들처럼 간들간들 길어라.〔屋頭初日金鷄唱 恰似垂柳裊裊長〕”라는 구절이 있다고 응대하여 온 좌중의 감탄을 샀다고 한다. 《淸脾錄 卷1 鷄聲似柳》 충선왕은 원 나라에 있을 때 심양왕(瀋陽王)에 봉해졌다.
[주D-004]배신(陪臣) : 이제현을 가리킨다. 제후(諸侯)의 신하는 천자에 대하여 신하의 신하가 된다는 뜻으로 배신이라 부른다.
[주D-005]노구교(蘆溝橋) : 연경(燕京)의 광안문(廣安門) 서쪽에 있는 다리 이름이다.
[주D-006]육왕(六王)을 …… 애처롭네 : 청 나라 건륭(乾隆) 때 시인 원매(袁枚 : 자 자재〈子才〉, 호 수원〈隨園〉)가 진 시황(秦始皇) 때의 역사를 노래한 회고시(懷古詩) 박랑성(博浪城)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육왕(六王)은 전국 시대의 6국인 제(齊)ㆍ초(楚)ㆍ연(燕)ㆍ한(韓)ㆍ위(魏)ㆍ조(趙)의 왕을 가리킨다. ‘한 철퇴가 날아드니’는 장량(張良)이 박랑사(博浪沙)에서 진 시황을 철퇴로 저격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산신은 소리 없고 백옥만 애처롭네’라고 한 것은 진 시황 36년에 어떤 신령스러운 사람이 진 시황의 사자(使者) 앞에 나타나 벽(璧)을 주면서 진 시황의 죽음을 암시하는 예언을 하고 사라진 사건을 말한다. 이를 보고받은 진 시황은 ‘산신은 본래 한 해의 일을 아는 데 불과하다’고 짐짓 무시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卷55 留侯世家》 원매의 박랑성 시는 《열하일기》 피서록에 전문이 소개되어 있다.
[주D-007]미자한담(尾蔗閒談)에서 …… 추앙하니 : 미자(尾蔗)는 사탕수수〔甘蔗〕를 맛이 쓴 뿌리부터 먹는다는 뜻으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을 말한다. 청 나라 건륭 때 시인 이조원(李調元 : 호 우촌〈雨村〉)은 원매를 당세 제일의 재사(才士)라고 칭송하면서 자신의 《미자헌한담(尾蔗軒閒談)》에서 그에 관한 일을 기록했노라고 하였다. 《淸脾錄 卷4 袁子才》 이조원이 편집한 《함해(函海)》에 《미자총담(尾蔗叢談)》 4권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8]육왕(六王)을 …… 몇이더뇨 :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에는 이 제 3 수만을 회증원수원(懷贈袁隨園)이란 제목을 붙여 수록해 놓았다. 그러나 연암과 원매 간에는 아무런 교분이 없으므로 적절한 제목이라 하기 어렵다.
[주D-009]난하(灤河)의 …… 묻었네 : 이덕무의 《청비록(淸脾錄)》 권3 연암조(燕巖條)에도 이 두 시구가 소개되어 있다. 단 첫 구 중의 ‘灤水沙淸’이 ‘水碧沙明’으로 되어 있다.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 권4에도 이 시구를 소개한 대동소이한 기사가 있다.
[주D-010]몰골도(沒骨圖) : 묵필(墨筆)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바로 채색한 그림을 말한다. 서희는 오대(五代) 말기에서 송(宋) 나라 초기의 저명한 화가로 몰골도의 기법을 개발하였다.
[주D-011]난하(灤河)의 …… 싶어지네 : 《열하일기》 일신수필 7월 26일 조에 영평부(永平府)에서 출발하여 난하를 건너 이제묘(夷齊廟)를 들렀다고 기록되어 있고, 따로 이제묘기(夷齊廟記)와 난하범주기(灤河泛舟記)가 수록되어 있다. 연암은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