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자서(自序)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56
자서(自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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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60자 빠짐 - ‘우자(右者)는 삼가 아룁니다’라는 의미의 ‘우근진(右謹陳)’을 들어 타매(唾罵)하고 있다. 이른바 ‘우근진’이란 말이 저열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세상에 붓대를 쥐고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그들의 글을 책으로 간행한 것들을 보면 모두가 가득 늘어만 놓은 음식의 찌꺼기처럼 시금떨떨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왜 구태여 문서의 서두어나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상투어만을 나무라는지 모를 일이다. 제전(帝典 《서경(書經)》 요전(堯典)ㆍ순전(舜典))의 ‘월약계고(曰若稽古)’나 불경(佛經)의 ‘여시아문(如是我聞)’도 바로 지금의 ‘우근진’과 같은 성격의 투식어일 뿐이다.
특히 봄 숲에서 새 울음을 들으면 소리마다 각기 다르고 해시(海市)에서 보물을 둘러보면 하나하나 다 새로우며, 연잎 위의 이슬은 본디 둥글고 초(楚) 나라의 박옥(璞玉)은 깎지 않은 채로 있다. 이것이 바로 척독가(尺牘家)들이 《논어(論語)》를 조술(祖述)하고 풍아(風雅 《시경(詩經)》)로 거슬러 올라간 점이다. 사령(辭令)으로 말하면 자산(子産)과 숙향(叔向)을 본받고 장고(掌故)로 말하면 《신서(新序)》와 《세설(世說)》을 본받았다. 확실하고 적절한 점으로 말하면 양책(良策)을 올린 가 태부(賈太傅 가의(賈誼))나 정사(政事)를 주관하던 육 선공(陸宣公 육지(陸贄))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들은 일단 고문사(古文辭)라 하면 단지 서(序)와 기(記)가 으뜸이 되는 줄만 알아서, 거짓으로 글을 짓고 부화한 표현들을 끌어다 쓰고는, 정작 이러한 글들에 대해서는 소가(小家)의 묘품(妙品)이라고 배척하여, 밝은 창가의 조촐한 궤석(几席)에서 잠이 깬 뒤 베개 고이고 읽을 따름이다.
무릇 공경은 예(禮)를 갖추어야 확립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엄숙하고 근엄하게만 대하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다. 더 나아가 큰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도포를 떨쳐입고는 대충 안부나 묻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버이를 공경한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예를 안다고는 할 수 없다. 기쁜 안색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곁에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빙그레 웃으며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다.” 한 것은 공자다운 멋진 해학이요, “아내가 ‘닭이 울었다’ 하자, 남편은 ‘아직 어두운 새벽이다’ 말하네.” 한 것은 시인(詩人)의 편지인 셈이다.
우연히 상자 속을 뒤지다가, 추운 겨울을 맞아 창구멍을 바르려던 참에 옛날에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의 부본(副本)으로 쓸데없는 것들을 찾아내었는데, 모두 50여 건이었다. 어떤 것은 글자가 파리 대가리만 하게 작고 어떤 것은 종이가 나비 날개마냥 얇다. 어떤 것은 장독 덮개로 쓰기에 넉넉하고 어떤 것은 농을 바르기에 부족하다. 이에 한 권으로 베껴 내어 방경각(放瓊閣)의 동루(東樓)에 보관한다.
임진년(1772) 맹동(孟冬) 상한(上澣)에 연암거사(燕巖居士)는 쓴다.
缺六十字 唾以右謹陳。所謂右謹陳。誠俚且穢。獨不知世間操觚者何限。印板摠是餖飣餕餘。則何傷於公格之頭辭。發語之例套乎。帝典之曰若稽古。佛經之如是我聞。廼今時之右謹陳爾。獨其聽禽春林。聲聲各異。閱寶海市。件件皆新。荷珠自圓。楚璞不劚。則此尺牘家之祖述論語。泝源風雅。其辭令則子產叔向。掌故則新序世說。其核實剴切。不獨長策之賈傅。執事之宣公爾。彼一號古文辭。則但知序記之爲宗。架鑿虛譌。挐挹浮濫。指斥此等。爲小家玅品。明牕淨几。睡餘支枕。夫敬以禮立。而嚴威儼愨。非所以事親也。若復廣張衣袖。如見大賓。略叙寒暄。更無一語。敬則敬矣。知禮則未也。安在其婾色怡聲。左右無方也。故曰莞爾而笑。前言戱耳。夫子之善謔。女曰鷄鳴。士曰昧朝。詩人之尺牘爾。偶閱巾笥。時當寒天。方塗窓眼。舊與知舊書䟽。得其副墨賸毫。共五十餘則。或字如蠅頭。或紙如蝶翅。或覆瓿則有餘。或糊籠則不足。於是抄寫一卷。藏弆于放瓊閣之東樓。歲壬辰孟冬上澣。燕岩居士。書。
[주D-001]문서의 …… 상투어 : 앞의 ‘우근진(右謹陳)’은 관청에 청원하는 문서, 즉 소지(所志)의 서두어이다. 다음에 나오는 ‘옛일을 상고하건대’라는 뜻인 월약계고(曰若稽古)나 ‘이와 같이 내가 들었노라’라는 뜻인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서경》이나 불경에서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상투어이다.
[주D-002]해시(海市) : 일반적으로는 맑은 날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다는 화려한 성시(城市), 즉 신기루(蜃氣樓)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해안의 성시로 보아야 할 듯하다. 우상전(虞裳傳)에 소개된 이언진(李彦瑱)의 시 해람편(海覽篇)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각종 보물들이 거래되고 있음을 노래하면서 “페르시아 상인들도 눈이 부셔하고 절강의 성시들도 빛이 바랬네.〔波斯胡目眩 浙江市色奪〕”라고 하였듯이, 중국 동남 해안의 성시들에서는 각종 보석 거래를 비롯하여 대외무역이 매우 활발했다.
[주D-003]초(楚) 나라의 박옥(璞玉) : 초 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얻었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옥덩어리로, 화씨벽(和氏璧)이라고도 한다.
[주D-004]이것이 …… 점이다 : 척독(尺牘)이 문학적으로 볼 때, 《논어》나 《시경》의 참신하면서도 진솔한 문답체 표현 방식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그 좋은 예가 자서의 후반에 인용되어 있다.
[주D-005]사령(辭令)으로 …… 본받고 : 사령은 말로써 응대(應對)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에서는 특히 사령을 잘해야 한다. 정(鄭) 나라가 형법(刑法)의 조문을 새긴 정(鼎)을 주조하자, 진(晉) 나라 숙향(叔向)이 정 나라 공자(公子) 자산(子産)에게 서신을 보내어 형벌로써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것을 힐난했으며, 자산은 이러한 숙향의 서신을 받고 그의 충고에 감사하는 답신을 보냈다. 《春秋左氏傳 昭公 6年 3月》 이는 서신을 통해 사령을 잘한 예이다.
[주D-006]《신서(新序)》와 《세설(世說)》 : 둘 다 한(漢) 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책이다. 《신서》는 춘추전국 시대의 고사를 모아 놓은 책이다. 《세설》은 실전(失傳)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데, 후세의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이 책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주D-007]양책(良策)을 …… 아니다 : 가의(賈誼)의 상소(上疏)나 육지(陸贄)의 주의(奏議)에 못지않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가의는 문제(文帝)에게 치안책(治安策)을 올렸으며, 당 나라 때 육지는 덕종(德宗)에게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는 주의를 올려 국정을 잘 보좌하였다.
[주D-008]소가(小家) : 대가(大家)의 반대로, 시시한 군소 작가들이란 뜻이다.
[주D-009]격식에 …… 봉양하는 : 원문은 ‘左右無方’인데,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부모를 섬길 때에는 “곁에서 봉양하는 데 격식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左右就養無方〕”고 하였다.
[주D-010]빙그레 …… 것 : 공자가 무성(武城) 지방에 가서 백성들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하며 넌지시 조롱하였다. 무성의 수령인 제자 자유(子游)가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예전에 공자가 한 말을 들어 따지자, 공자가 제자들을 보고서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다.” 하였다. 《論語 陽貨》
[주D-011]아내가 …… 말하네 : 《시경(詩經)》 계명(鷄鳴)의 첫 구절로서, 아내가 닭이 울었으니 일하러 나가라고 하자 남편이 나가기 싫어 아직 어두운 새벽이라고 둘러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주자(朱子)는 이 시를 부부가 서로 권계(勸戒)한 것이라고 주해(註解)하였으나, 연암은 부부가 일상적인 집안일로 문답을 나눈 시로 보았다.
[주D-012]시인(詩人) : 계명(鷄鳴)을 지은 옛 시인을 가리킨다.
[주D-013]종이가 …… 얇다 : 원문은 ‘紙如蝶翅’인데, 왕안석(王安石)이 나비를 노래한 시에 “날개가 가루보다 가볍고 비단보다 얇다.〔翅輕於粉薄於繒〕” 하였다.
[주D-014]장독 …… 넉넉하고 : ‘장독 덮개〔覆瓿〕’란 가치가 없는 저작을 가리키며, 주로 자신의 저작에 대한 겸양의 말로 쓰인다. 한(漢) 나라 때 유흠(劉歆)이 양웅(揚雄)의 태현(太玄)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장독 덮개로나 쓸 것이라고 풍자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D-002]해시(海市) : 일반적으로는 맑은 날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다는 화려한 성시(城市), 즉 신기루(蜃氣樓)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해안의 성시로 보아야 할 듯하다. 우상전(虞裳傳)에 소개된 이언진(李彦瑱)의 시 해람편(海覽篇)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각종 보물들이 거래되고 있음을 노래하면서 “페르시아 상인들도 눈이 부셔하고 절강의 성시들도 빛이 바랬네.〔波斯胡目眩 浙江市色奪〕”라고 하였듯이, 중국 동남 해안의 성시들에서는 각종 보석 거래를 비롯하여 대외무역이 매우 활발했다.
[주D-003]초(楚) 나라의 박옥(璞玉) : 초 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얻었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옥덩어리로, 화씨벽(和氏璧)이라고도 한다.
[주D-004]이것이 …… 점이다 : 척독(尺牘)이 문학적으로 볼 때, 《논어》나 《시경》의 참신하면서도 진솔한 문답체 표현 방식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그 좋은 예가 자서의 후반에 인용되어 있다.
[주D-005]사령(辭令)으로 …… 본받고 : 사령은 말로써 응대(應對)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에서는 특히 사령을 잘해야 한다. 정(鄭) 나라가 형법(刑法)의 조문을 새긴 정(鼎)을 주조하자, 진(晉) 나라 숙향(叔向)이 정 나라 공자(公子) 자산(子産)에게 서신을 보내어 형벌로써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것을 힐난했으며, 자산은 이러한 숙향의 서신을 받고 그의 충고에 감사하는 답신을 보냈다. 《春秋左氏傳 昭公 6年 3月》 이는 서신을 통해 사령을 잘한 예이다.
[주D-006]《신서(新序)》와 《세설(世說)》 : 둘 다 한(漢) 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책이다. 《신서》는 춘추전국 시대의 고사를 모아 놓은 책이다. 《세설》은 실전(失傳)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데, 후세의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이 책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주D-007]양책(良策)을 …… 아니다 : 가의(賈誼)의 상소(上疏)나 육지(陸贄)의 주의(奏議)에 못지않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가의는 문제(文帝)에게 치안책(治安策)을 올렸으며, 당 나라 때 육지는 덕종(德宗)에게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는 주의를 올려 국정을 잘 보좌하였다.
[주D-008]소가(小家) : 대가(大家)의 반대로, 시시한 군소 작가들이란 뜻이다.
[주D-009]격식에 …… 봉양하는 : 원문은 ‘左右無方’인데,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부모를 섬길 때에는 “곁에서 봉양하는 데 격식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左右就養無方〕”고 하였다.
[주D-010]빙그레 …… 것 : 공자가 무성(武城) 지방에 가서 백성들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하며 넌지시 조롱하였다. 무성의 수령인 제자 자유(子游)가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예전에 공자가 한 말을 들어 따지자, 공자가 제자들을 보고서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다.” 하였다. 《論語 陽貨》
[주D-011]아내가 …… 말하네 : 《시경(詩經)》 계명(鷄鳴)의 첫 구절로서, 아내가 닭이 울었으니 일하러 나가라고 하자 남편이 나가기 싫어 아직 어두운 새벽이라고 둘러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주자(朱子)는 이 시를 부부가 서로 권계(勸戒)한 것이라고 주해(註解)하였으나, 연암은 부부가 일상적인 집안일로 문답을 나눈 시로 보았다.
[주D-012]시인(詩人) : 계명(鷄鳴)을 지은 옛 시인을 가리킨다.
[주D-013]종이가 …… 얇다 : 원문은 ‘紙如蝶翅’인데, 왕안석(王安石)이 나비를 노래한 시에 “날개가 가루보다 가볍고 비단보다 얇다.〔翅輕於粉薄於繒〕” 하였다.
[주D-014]장독 …… 넉넉하고 : ‘장독 덮개〔覆瓿〕’란 가치가 없는 저작을 가리키며, 주로 자신의 저작에 대한 겸양의 말로 쓰인다. 한(漢) 나라 때 유흠(劉歆)이 양웅(揚雄)의 태현(太玄)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장독 덮개로나 쓸 것이라고 풍자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