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중일(中一)에게 보냄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0:59
중일(中一)에게 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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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써 남을 구제하는 것은 ‘협(俠)’이라 이르고, 재물로써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고(顧)’라 합니다. 고(顧)를 갖추면 명사(名士)가 되거니와, 협(俠)을 갖추어도 이름이 드러나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협과 고를 겸하면 ‘의(義)’라 하나니,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찌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무릇 예(禮)란 제멋대로 행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요, 의(義)는 제멋대로 결단함이 없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급하게 의에 따라 선(善)을 행하다 보면, 설령 제멋대로 행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착한 아들이라도 부모에게 여쭙지 못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고, 어진 부모라도 이를 금지하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옛날에 한(漢) 나라 급암(汲黯)은 황제의 조서를 사칭하고 창고 곡식을 풀어 하남(河南)의 주린 백성을 구제했고, 송(宋) 나라 범요부(范堯夫)는 보리 싣고 가던 배를 석만경(石曼卿)에게 넘겨준 일이 있었습니다. 무릇 황제의 조서를 사칭한 것은 사형죄에 해당하는 것이요, 아버지 모르게 남에게 주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임금과 아비는 지극히 존엄한 분이지만, 의(義)에 비추어 급히 행해야 할 경우에는 부월(鈇鉞)의 처벌도 피하지 않았고 혼자 결단하여 행하는 죄도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제(武帝)는 총명한 군주라는 명성을 잃지 않았고 범 문정(范文正 범중엄(范仲淹))은 어진 아비가 되었으며, 장유(長孺 급암(汲黯))는 곧은 신하가 되는 데 지장이 없었고 요부(堯夫)는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준(俊)은 친상(親喪)을 당한지라, 친한 친구가 이처럼 측석(側席)하고 밥을 배부르게 먹지 못할 때이니, 단지 하남(河南)의 굶주림과 석만경의 다급한 사정에 비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대가 힘을 다해 구제해 준다면, 이는 창고 곡식을 풀고 배의 보리를 넘겨준 행동만큼 멋대로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以力救人曰俠。以財惠人曰顧。顧爲名士。俠猶著傳。兼俠與顧曰義。若有其人。豈不誠大丈夫哉。夫禮防專行。義無擅斷。然而至於急義而行善。雖擅且專。肖子有所不禀。而賢父有所不禁也。昔漢汲黯矯制發倉。以振河南。范堯夫麥舟付曼卿。夫以矯制。死罪也。私與。非禮也。君父至
尊嚴。至於義有所急。則不避鈇鉞之誅。身犯專行之罪。然而武帝不失爲明主。而文正爲賢父。長孺不害爲直臣。而堯夫爲宜子也。今俊也袒括。親友側席。當食不飽之時也。非特河南之饑而曼卿之急也。足下匍匐而救之。非如發倉與付舟之爲恣也。
[주D-001]한(漢) 나라 …… 구제했고 : 한 나라 무제(武帝) 때에 하내(河內)의 민가 천여 호가 불에 타는 큰 화재가 발생하자 급암(汲黯)을 사자로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러 보냈다. 급암이 하내의 상황을 보니, 백성들이 가뭄과 홍수로 만여 호가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임의로 황제의 명을 사칭하고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한 후 무제에게 이를 보고하자 무제가 훌륭히 여겨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연암집》에는 하내(河內)가 하남(河南)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남은 하외(河外)에 속한다. 《漢書 卷50 張馮汲鄭傳》
[주D-002]송(宋) 나라 …… 일 : 요부(堯夫)는 범순인(范純仁)의 자(字)이고 만경(曼卿)은 석연년(石延年)의 자이다. 범순인이 젊었을 때 그의 부친 범중엄(范仲淹)의 심부름으로 소주(蘇州)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친의 친구인 석만경(石曼卿)을 만났는데, 석만경이 장례 비용이 없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배로 싣고 온 보리를 모두 그에게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범중엄에게 이 일을 말하자 범중엄이 기뻐했다고 한다. 《山堂肆考 卷102》
[주D-003]준(俊) : 두 번째 편지를 보면 ‘준(俊)’은 바로 ‘사준(士俊)’으로, 원문에 ‘士’ 자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주D-004]측석(側席) : 자신의 좌석만 남기고 내객(來客)을 맞을 좌석은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에 “우환이 있는 사람은 측석하고 앉는다.〔有憂者 側席而坐〕” 하였다.
[주D-002]송(宋) 나라 …… 일 : 요부(堯夫)는 범순인(范純仁)의 자(字)이고 만경(曼卿)은 석연년(石延年)의 자이다. 범순인이 젊었을 때 그의 부친 범중엄(范仲淹)의 심부름으로 소주(蘇州)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친의 친구인 석만경(石曼卿)을 만났는데, 석만경이 장례 비용이 없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배로 싣고 온 보리를 모두 그에게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범중엄에게 이 일을 말하자 범중엄이 기뻐했다고 한다. 《山堂肆考 卷102》
[주D-003]준(俊) : 두 번째 편지를 보면 ‘준(俊)’은 바로 ‘사준(士俊)’으로, 원문에 ‘士’ 자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주D-004]측석(側席) : 자신의 좌석만 남기고 내객(來客)을 맞을 좌석은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에 “우환이 있는 사람은 측석하고 앉는다.〔有憂者 側席而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