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치규(穉圭)에게 보냄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1:10
치규(穉圭)에게 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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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伯雨)는 아마도 떨쳐 일어나지 못할 것 같소. 무당이 문에 들어오자 귀신이 그 방에 가득 차 있었으며, 아침나절 나아가 진찰을 해 보니 얼굴빛은 새까맣고 눈동자는 벌겋고 부어 있었소. 무엇이 빌미가 되었느냐고 묻자,
“자주 두려움에 시달리고 지난 일을 자주 뉘우쳤더니 이것이 병의 빌미가 되었소.”
하기에,하였더니, 시자(侍者)가 눈짓을 하며 만류하였소. 시간을 살펴보다 밖으로 나와서 좌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선생님의 병세는 증오하는 것이 많은 점인데 특히 여자를 가장 꺼려합니다.”
합디다.생각해 보니 백우는 얼굴이 훤하고 잘생긴 데다 항상 모양을 냈으니 지금 병의 빌미는 여자를 지나치게 총애한 때문이오. 불〔火〕이 이글거리면 쇠붙이〔金〕가 녹고, 나무〔木〕가 성하면 흙〔土〕이 흘러내리듯이, 두려움이 생기면 뉘우침이 뒤따르는 법이니 이 때문에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증세가 생긴 것이지 귀신이 내린 재앙은 아니오. 그런데 무당을 불러다가 기도를 하니 나는 백우의 병이 정말로 귀신이 내린 재앙이 될까 두렵소.
무릇 귀신에도 군자의 귀신이 있고 소인의 귀신이 있소. 삼신(三辰 해, 달, 별)과 오행(五行), 사직(社稷)과 산천(山川)은 백성에게 주는 이로움으로 인하여 섬기는 귀신이요, 죽음으로써 나랏일에 힘쓴 인물과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 공정한 법을 백성에게 실시한 인물과 재해와 큰 환란을 막은 인물은 백성들에게 미친 공로로 인하여 섬기는 귀신이오. 이와 같이 공덕과 큰 이익을 주는 귀신들은 모두 제사를 지내 주도록 사전(祀典)에 기록되어 있소. 이를 일러 명신(明神)이라 하는데, 이들은 어질고 신령하며 귀하고 오래 살며 높고도 밝게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군자의 귀신이오.
그런데 부엌, 방구석, 문지방, 중류(中霤)에 붙어 있는 귀신들로 말하면 모두 제사에 대한 보답은 있을지언정 위에서 말하는 귀신과는 진실로 그 부류가 다르오. 이를 간신(奸神)이라 하는데, 미련하고 신령하지 못하며 천하고 일찍 죽으며 낮고 음침하니 이것이 바로 소인의 귀신이오. 이들이 숲과 늪에 붙으면 매(魅)가 되고 덤불과 골짜기에 붙으면 양(魎)이 되며, 벌레와 물고기에 붙으면 요(妖)가 되고 풀이나 나무에 붙으면 상(祥)이 되며, 물건에 붙으면 괴(怪)가 되고 사람에게 붙으면 수(竪)가 되며, 꿈에 붙으면 압(魘)이 되고 일에 붙으면 마(魔)가 되고 병에 붙으면 여(厲)가 된다오. 이는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고 천지(天地) 사이에도 용납되지 못하여, 해와 달이 환히 비추고 바람과 천둥이 뒤흔들어 버리면 구멍 속으로 숨고 틈 사이로 파고들어, 궁핍하게 억눌려 지내다가 간간이 민간의 사귀(邪鬼)가 되어 나타난다오. 이때 무당이 음기(淫氣)를 빙자하여 장구를 두들기고 춤을 추면서 저와 의기가 통하는 귀신들을 불러 대어 집안 식구들을 겁주는 것이오.
《시경》에 이르기를 “점잖은 군자들은 복을 구해도 간사하게 하지 않는다.〔愷悌君子 求福不回〕” 했거늘, 군자의 병에 어찌하여 소인의 귀신을 섬길 까닭이 있겠소. 부인네를 천시하는 것은 바로 말이 많기 때문이오. 부인네가 말이 많은 것은 무당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고 여자 무당이 장구 치며 춤추는 행위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매개가 되오. 이러한 미끼와 매개가 이미 다 갖추어졌으니, 이는 실로 화를 불러들이는 것이오. 갈대 빗자루로 쓸어 내고 부적을 가지고 주문을 외면서, 겉으로는 귀신을 쫓는 척하나 남몰래 귀신을 불러들여 머리를 조아리고 귀신을 부르고 그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오. 그래서 귀신처럼 말하고 귀신처럼 웃고 귀신처럼 성내고 귀신처럼 기뻐하면서, 이리 부르고 저리 불러 온 방에 가득 차게 하고, 들어오면 목구멍에 머물다가 나갈 때는 꽁무니로 빠져나가며, 남의 병을 가지고 농락하면서 재물을 삼키려 드니,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겠소.
성인(聖人)은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기 때문에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 하였으니, 지금 방 안에서 항상 빌고 있다면 귀신을 이보다 더 가까이하는 것이 뭐가 있겠소. 이것이 과연 명신(明神)일진대 어찌 희생(犧牲)과 옥백(玉帛)을 놓아 두고 민가에 내려와서 밥을 얻어먹겠으며, 만약 그것이 나쁜 짓을 일삼는 간신(奸神)과 음신(淫神)이라면 무슨 복을 주겠소. 거북점도 두 번 하면 오히려 알려 주지 않거늘 하물며 예(禮)가 아닌 일에 푸짐하게 차려 놓고 많은 재물을 주어 청하려고 한들 될 리가 있겠소.
백우가 말하기를, 그대의 누이가 몹시 어질고 오빠의 감화를 받아 매사를 그대에게 의논한다 하였소. 그렇다면 그대는 번연히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것이니, 그들과 똑같은 잘못이 있다 할 것이오. 그대는 아무쪼록 생각해 보시오.
伯雨殆其不振乎。女巫入門。鬼盈其室。朝日就診色煤。睛騂而浮。問之祟。曰。多懼且多悔。是爲祟也。曰。君子樂而忘憂。順命循理。中道而行。夫
何懼何悔。侍者目而止。視晷出而問諸左右。對曰。夫子病多惡。婦人最忌。念伯雨晳而都常自容。今祟寵嬖過也。火爍金虧。木剋土流。懼來悔乘。是生疑惡。非鬼祟也而禱之用巫。吾恐伯雨之疾。實爲鬼祟也。夫鬼有君子有小人。三辰五行。社稷山川。以其利也。勤死勞定。法施禦捍。以其功也。功德美利。皆登典祀。是爲明神。賢而靈。貴而壽。尊而顯。君子之鬼也。至于竈奧戶霤。皆得其報。苟非其類。是爲奸神。愚而不靈。賤而夭。卑而幽。小人之鬼也。林澤爲魅。藪谷爲魎。蟲魚爲妖。卉木爲祥。在物爲恠。在人爲豎。在夢爲魘。在事爲魔。在疾爲厲。典祀不載。天地不容。日月燭之。風霆蕩之。穴竄隙投。窮餒壹鬱。間爲民慝。女巫仗淫。拊缶而舞。氣類以呼。以恐家人。詩云。愷悌君子。求福不回。君子有疾。如之何小人之鬼是事。婦人是簡。用是多舌。婦人多舌。巫之囮也。女巫缶舞。鬼之媒也。囮媒旣成。實爲禍階。茢祓符詋。陽麾陰招。稽首呼服。實爲徠咎。鬼言鬼
笑。鬼怒鬼喜。招徠盈室。入則館喉。出則乘尻。翫疾而貨之以饕賂。焉其能振乎。聖人敬鬼神而遠之。故曰某之禱久矣。今恒禱于室。鬼孰近焉。是果明神也。其肯舍其牷玉。左食于家人乎。如其奸淫不逞。何福之賴也。龜習其繇。尙且不告。而况豐于非禮。章賂而將之。伯雨言令妹賢。甚有兄風。每事諏於足下。足下知而不諫。與有過焉。足下其圖之。
[주D-001]군자는 …… 잊으며 :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도를 즐기어 근심을 잊는다.〔樂以忘憂〕”고 하였다. 또한 양운(楊惲)의 보손회종서(報孫會宗書)에 “군자는 도를 행하느라 즐거워서 근심을 잊는다.〔君子游道 樂以忘憂〕”고 하였다. 《文選 卷41》
[주D-002]삼신(三辰)과 …… 있소 :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무릇 성왕(聖王)이 제사를 제정함에 있어 공정한 법을 백성에게 실시한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죽음으로써 나랏일에 힘쓴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재해를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환란을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낸다. …… 그리고 일월성신은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요, 산림, 천곡, 구릉은 백성들이 재물을 가져다 쓰는 곳이므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제외한 대상은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는다.〔夫聖王之制祭祀也 法施於民則祀之 以死勤事則祀之 以勞定國則祀之 能禦大菑則祀之 能捍大患則祀之 ……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하였다.
[주D-003]중류(中霤) : 방의 중앙을 가리킨다. 유(霤)는 낙숫물이란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방 중앙에 낙숫물 받는 곳이 있었으며 토(土)는 중앙을 주관하므로, 방 중앙에서 토신(土神)의 제사를 지냈다.
[주D-004]점잖은 …… 않는다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D-005]성인(聖人)은 …… 하였으니 : 《논어》 옹야(雍也)에, 번지(樊遲)가 지(知)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의(道義)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병이 위중해지자 자로가 신에게 기도를 드릴 것을 청하면서 “상하 천지신명에게 기도한다.〔禱爾于上下神祇〕”라고 한 뇌문(誄文)의 말을 인용하니, 공자가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고 하여, 자로의 청을 완곡하게 물리쳤다. 평소의 행동이 신명(神明)의 뜻과 부합했으므로 기도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D-006]거북점도 …… 않거늘 :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나의 거북이 이미 싫증을 낸지라 나에게 길흉을 알려 주지 않네.〔我龜旣厭 不我告猶〕”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귀염불고(龜厭不告)란 성어가 생겼다.
[주D-002]삼신(三辰)과 …… 있소 :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무릇 성왕(聖王)이 제사를 제정함에 있어 공정한 법을 백성에게 실시한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죽음으로써 나랏일에 힘쓴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재해를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환란을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낸다. …… 그리고 일월성신은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요, 산림, 천곡, 구릉은 백성들이 재물을 가져다 쓰는 곳이므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제외한 대상은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는다.〔夫聖王之制祭祀也 法施於民則祀之 以死勤事則祀之 以勞定國則祀之 能禦大菑則祀之 能捍大患則祀之 ……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하였다.
[주D-003]중류(中霤) : 방의 중앙을 가리킨다. 유(霤)는 낙숫물이란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방 중앙에 낙숫물 받는 곳이 있었으며 토(土)는 중앙을 주관하므로, 방 중앙에서 토신(土神)의 제사를 지냈다.
[주D-004]점잖은 …… 않는다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D-005]성인(聖人)은 …… 하였으니 : 《논어》 옹야(雍也)에, 번지(樊遲)가 지(知)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의(道義)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병이 위중해지자 자로가 신에게 기도를 드릴 것을 청하면서 “상하 천지신명에게 기도한다.〔禱爾于上下神祇〕”라고 한 뇌문(誄文)의 말을 인용하니, 공자가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고 하여, 자로의 청을 완곡하게 물리쳤다. 평소의 행동이 신명(神明)의 뜻과 부합했으므로 기도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D-006]거북점도 …… 않거늘 :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나의 거북이 이미 싫증을 낸지라 나에게 길흉을 알려 주지 않네.〔我龜旣厭 不我告猶〕”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귀염불고(龜厭不告)란 성어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