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연암집 제7권 별집/종북소선(鍾北小選)/낭환집서(蜋丸集序)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8. 10:54
낭환집서(蜋丸集序) |
|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밖에 나가 노니다가 비단옷을 입은 소경을 보았다. 자혜가 서글피 한숨지으며,
“아, 자기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눈으로 보지를 못하는구나.”
하자, 자무가,“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자와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함께 가서 물어보았더니, 선생이 손을 내저으며,“나도 모르겠네, 나도 몰라.”
하였다.옛날에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께서 이〔蝨〕를 아십니까? 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옷에서 생기지요?”
하니,“그렇단다.”
하므로 딸이 웃으며,“내가 확실히 이겼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묻기를,“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까?”
하니,“그렇고 말고.”
하므로 며느리가 웃으며,“아버님이 나를 옳다 하시네요.”
하였다. 이를 보던 부인이 화가 나서 말하기를,“누가 대감더러 슬기롭다고 하겠소. 송사(訟事)하는 마당에 두 쪽을 다 옳다 하시니.”
하니,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딸아이와 며느리 둘 다 이리 오너라. 무릇 이라는 벌레는 살이 아니면 생기지 않고, 옷이 아니면 붙어 있지 못한다. 그래서 두 말이 다 옳은 것이니라. 그러나 장롱 속에 있는 옷에도 이가 있고, 너희들이 옷을 벗고 있다 해도 오히려 가려울 때가 있을 것이다. 땀 기운이 무럭무럭 나고 옷에 먹인 풀 기운이 푹푹 찌는 가운데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은, 옷과 살의 중간에서 이가 생기느니라.”
하였다.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하자 종놈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니, 백호가 꾸짖으며“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논할 것 같으면,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짚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예를 들어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은미하여 살피기 어렵기는 하지만, 옷과 살 사이에 본디 그 공간이 있는 것이다.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라 할 것이니, 누가 그 ‘중간〔中〕’을 알 수가 있겠는가.
말똥구리〔蜣蜋〕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의 말똥〔蜋丸〕’을 비웃지 않는다.
자패(子珮)가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로써 내 시집(詩集)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
하고는, 드디어 그 시집의 이름을 ‘낭환집(蜋丸集)’이라 붙이고 나에게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내가 자패에게 이르기를,“옛날에 정령위(丁令威)가 학(鶴)이 되어 돌아왔으나 아무도 그가 정령위인지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격이 아니겠는가. 《태현경(太玄經)》이 크게 유행하였어도 이 책을 지은 자운(子雲 양웅(揚雄))은 막상 이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격이 아니겠는가. 이 시집을 보고서 한편에서 여룡의 구슬이라 여긴다면 그대의 짚신〔鞋〕을 본 것이요, 한편에서 말똥으로만 여긴다면 그대의 가죽신〔鞾〕을 본 것이리라. 남들이 그대의 시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정령위가 학이 된 격이요, 그대의 시가 크게 유행할 날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운이 《태현경》을 지은 격이리라. 여룡의 구슬이 나은지 말똥구리의 말똥이 나은지는 오직 청허선생만이 알고 계실 터이니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하였다.
子務,子惠出遊。見瞽者衣錦。子惠喟然歎曰。嗟乎。有諸己而莫之見也。子務曰。夫何與衣繡而夜行者。遂相與辨之於聽虗先生。先生搖手曰。吾不知吾不知。昔黃政丞自公而歸。其女迎謂曰。大人知蝨乎。蝨奚生。生於衣歟。曰然。女笑曰。我固勝矣。婦請曰。蝨生於肌歟。曰。是也。婦笑曰。舅氏是我。夫人怒曰。孰謂大監智。訟而兩是。政丞莞爾而笑曰。女與婦來。夫蝨非肌不化。非衣不傅。故兩言皆是也。雖然。衣在籠中。亦有蝨焉。使汝裸裎。猶將癢焉。汗氣蒸蒸。糊氣蟲蟲。不離不襯衣膚之間。林白湖將乘馬。僕夫進曰。夫子醉矣。隻履鞾鞋。白湖叱曰。由道而右者。謂我履鞾。由道而左者。謂我履鞋。我何病哉。由是論之。天下之易見者莫如足。而所見者不同。則鞾鞋難辨矣。故眞正之見。固在於是非之中。如汗之化蝨。至微而難審。衣膚之間。自有其空。不離不襯。不右不左。孰得其中。
蜣蜋自愛滾丸。不羡驪龍之珠。驪龍亦不以其珠。笑彼蜋丸。子珮聞而喜之曰。是可以名吾詩。遂名其集曰蜋丸。屬余序之。余謂子珮曰。昔丁令威化鶴而歸。人無知者。斯豈非衣繡而夜行乎。太玄大行。而子雲不見。斯豈非瞽者之衣錦乎。覽斯集。一以爲龍珠。則見子之鞋矣。一以爲蜋丸。則見子之鞾矣。人不知猶爲令威之羽毛。不自見猶爲子雲之太玄珠丸之辨。唯聽虛先生在。吾何云乎。
[주C-001]낭환집서(蜋丸集序) : 유득공(柳得恭)의 숙부인 유연(柳璉 : 1741~1788)의 《기하실시고략(幾何室詩藁略)》에는 길강전서(蛣蜣轉序)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구상 약간 차이가 있으나, 동일한 작품이다. 《길강전(蛣蜣轉)》은 유연의 시고(詩藁)로서, 다름 아닌 《낭환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낭환집서에서 《낭환집》의 작자로 소개되어 있는 자패(子珮)는 곧 유연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계명대학교 김윤조(金允朝) 교수의 조언에 의거한 것이다.
[주D-001]자무(子務)와 자혜(子惠) : 자무는 이덕무(李德懋)의 자(字)인 무관(懋官), 자혜는 유득공(柳得恭)의 자인 혜풍(惠風)에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
[주D-002]비단옷 …… 자 : 항우(項羽)가 진 시황의 아방궁을 함락하고 나서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줄 것인가.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3]여룡(驪龍)의 구슬 : 여룡은 검은 빛깔의 흑룡을 말한다. 용의 턱밑에는 여의주(如意珠)라는 영묘한 구슬이 있다고 한다.
[주D-004]말똥구리〔蜣蜋〕는 …… 않는다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螗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이라 하여 거의 똑같은 구절이 있다.
[주D-005]정령위(丁令威)가 …… 못하였으니 : 정령위는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으로 신선이 된 지 천 년 만에 학(鶴)으로 변해 고향을 찾아갔으나, 그가 학이 되어 화표주(華表柱)에 앉은 줄을 모르는 한 젊은이가 활로 쏘려고 했으므로 탄식하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搜神後記 卷1》
[주D-006]짚신〔鞋〕 : 연암 후손가 소장 필사본 및 《기하실시고략》 길강전서에는 ‘가죽신〔靴〕’으로 되어 있다.
[주D-007]가죽신〔鞾〕 : 연암 후손가 소장 필사본 및 《기하실시고략》 길강전서에는 ‘짚신〔鞋〕’으로 되어 있다.
[주D-001]자무(子務)와 자혜(子惠) : 자무는 이덕무(李德懋)의 자(字)인 무관(懋官), 자혜는 유득공(柳得恭)의 자인 혜풍(惠風)에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
[주D-002]비단옷 …… 자 : 항우(項羽)가 진 시황의 아방궁을 함락하고 나서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줄 것인가.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3]여룡(驪龍)의 구슬 : 여룡은 검은 빛깔의 흑룡을 말한다. 용의 턱밑에는 여의주(如意珠)라는 영묘한 구슬이 있다고 한다.
[주D-004]말똥구리〔蜣蜋〕는 …… 않는다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螗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이라 하여 거의 똑같은 구절이 있다.
[주D-005]정령위(丁令威)가 …… 못하였으니 : 정령위는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으로 신선이 된 지 천 년 만에 학(鶴)으로 변해 고향을 찾아갔으나, 그가 학이 되어 화표주(華表柱)에 앉은 줄을 모르는 한 젊은이가 활로 쏘려고 했으므로 탄식하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搜神後記 卷1》
[주D-006]짚신〔鞋〕 : 연암 후손가 소장 필사본 및 《기하실시고략》 길강전서에는 ‘가죽신〔靴〕’으로 되어 있다.
[주D-007]가죽신〔鞾〕 : 연암 후손가 소장 필사본 및 《기하실시고략》 길강전서에는 ‘짚신〔鞋〕’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