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언도필첩서(炯言桃筆帖序)
형언도필첩서(炯言桃筆帖序)
아무리 작은 기예(技藝)라 할지라도 다른 것을 잊어버리고 매달려야만 이루어지는 법인데 하물며 큰 도(道)에 있어서랴.
최흥효(崔興孝)는 온 나라에서 글씨를 제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여 시권(試卷)을 쓰다가 그중에 글자 하나가 왕희지(王羲之)의 서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종일토록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차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 시권을 품에 품고 돌아왔다. 이쯤 되면 ‘이해득실 따위를 마음속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하다.
이징(李澄)이 어릴 때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었는데 집에서 그가 있는 곳을 몰라서 사흘 동안 찾다가 마침내 찾아냈다. 부친이 노하여 종아리를 때렸더니 울면서도 떨어진 눈물을 끌어다 새를 그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림에 온통 빠져서 영욕(榮辱)을 잊어버렸다’고 이를 만하다.
학산수(鶴山守)는 온 나라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산속에 들어가 소리를 익힌 적이 있었는데, 매양 한 가락을 마치면 모래를 주워 나막신에 던져서 그 모래가 나막신에 가득 차야만 돌아왔다. 일찍이 도적을 만나 장차 죽게 되었는데, 바람결에 따라 노래를 부르자 뭇 도적들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쯤 되면 ‘죽고 사는 것을 마음속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하다.
나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도은(桃隱)이 《형암총언(炯菴叢言)》 도합 열세 조목을 글씨로 써서 한 권의 책자로 만들어 나에게 서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도은과 형암 이 두 사람은 내적인 면에 오로지 마음을 쓰는 사람인가, 육예(六藝) 속에서 노니는 사람인가? 그것이 아니고 이 두 사람이 사생(死生)과 영욕(榮辱)의 분별을 잊어버리고 이와 같이 정교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어찌 지나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 두 사람이 무언가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면, 도와 덕 속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기 바란다.
[주D-002]이징(李澄) : 선조 14년(1581) 유명한 화가였던 종실(宗室) 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의 서자로 태어났다.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 되었으며, 산수화에 뛰어났다고 한다.
[주D-003]학산수(鶴山守) : 성명은 미상(未詳)이다. 수(守)는 종친부(宗親府)의 정 4 품 벼슬이다.
[주D-004]어진 이를 …… 못하였다 : 《논어》 자한(子罕)과 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5]아침에 …… 좋다 :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주D-006]《형암총언(炯菴叢言)》 : 이덕무가 지은 책인데,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전하지 않는다. 형암은 이덕무의 호이다.
[주D-007]육예(六藝) …… 사람인가 : 육예는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말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며, 인에 의지하며, 예에서 노닌다.〔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하였는데, 앞의 세 항목이 ‘내적인 면에 마음을 쓰는’ 것이라면, 육예에서 노니는 것은 외적인 면, 즉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수양에 힘쓰는 것을 뜻한다. 주자(朱子)의 주에 따르면, 그렇게 할 때 본말을 갖추게 되고 내외가 서로 함양된다고 하였다. 《論語 述而》
[주D-008]도와 …… 바란다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물고기들이 샘물이 말라붙는 바람에 졸지에 육지에 처하여 서로 습기를 호흡하고 입의 거품으로 서로의 몸을 축여 주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相忘於江湖〕’이 낫다고 하였다. 연암은 이와 같이 유교의 예악(禮樂)과 인의(仁義)를 모두 잊어버릴 것을 역설한 《장자》의 일절(一節)을 변용하여, 도리어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라’는 공자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하는 일 외에 다른 모든 일을 잊어버리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