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옛글을 모방하여 글을 짓기를 마치 거울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뿌리와 가지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한낮이 되면 난쟁이〔侏儒僬僥〕가 되고 석양이 들면 키다리〔龍伯防風〕가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걸어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소리가 없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옛글과 끝내 비슷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런데 어찌 구태여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가?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말할 때 ‘꼭 닮았다〔酷肖〕’라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진짜에 아주 가깝다〔逼眞〕’라고 일컫는다.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을 통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한자(漢字)의 자체(字體)가 달라도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외형은 서로 다르지만 내심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내면의 의도라 할 것이요 ‘외형이 비슷한 것〔形似〕’은 피상적인 겉모습이라 하겠다.
이씨의 자제인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는 나이가 16세로 나를 따라 글을 배운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심령(心靈)이 일찍 트이고 혜식(慧識)이 구슬과 같았다. 일찍이 《녹천관집(綠天館集)》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질문하기를,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세 번 절한 다음 꿇어앉아 말하였다.
[주D-002]키다리〔龍伯防風〕 : 용백(龍伯)은 《열자》 탕문에 나오는 대인국(大人國) 사람, 방풍(防風)은 《국어》 노 하에 나오는 키가 큰 종족이다.
[주D-003]나이가 16세로 : 이서구는 1754년에 태어났으므로, 이 글을 지은 때는 1769년임을 알 수 있다.
[주D-004]은고(殷誥)와 주아(周雅) : 은고는 중훼지고(仲虺之誥)와 탕고(湯誥), 즉 《서경(書經)》을 가리키고, 주아는 주공(周公)이 제정했다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 즉 《시경(詩經)》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