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8. 11:06

영재집서(泠齋集序)

 

장석(匠石 돌을 다듬는 사람)이 기궐씨(剞劂氏 돌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물건 가운데 돌보다 단단한 것은 없다. 그렇게 단단한 것을 베어 내어 자르고 깎고 하여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만들어 신도(神道)에 세우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나의 공이니라.”

하니, 기궐씨가 이렇게 말했다.

“오래도록 닳아 없어지지 않기로는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없다. 위대한 인물의 훌륭한 행적에 대하여 군자가 비명(碑銘)을 지어 놓았다 하더라도 나의 공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장차 그 빗돌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그렇게 다투다가 마침내 마렵자(馬鬣子 무덤)에게 함께 가서 시비를 가리려 했으나, 마렵자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히 있기만 할 뿐 세 번을 불러도 세 번 다 대답이 없었다. 이때 옆에 있던 석옹중(石翁仲 무덤 앞에 세워놓은 석인(石人))이 껄껄대고 웃으면서,

“그대들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으로 돌보다 더한 것이 없고, 오래도록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없다고 하는구먼. 비록 그러하나 돌이 정말 단단하다면 어떻게 깎아서 빗돌을 만들 수 있겠으며, 닳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글자를 새길 수 있겠는가. 그것을 깎아서 새길 수 있는 이상 부엌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다가 솥을 앉히는 이맛돌로 쓰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하겠는가.”

하였다.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은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자(奇字)를 많이 알았다. 한창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다가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더니, 개연히 크게 탄식하기를,

“아! 오(烏)야, 너는 알고 있어라. 석옹중의 풍자를 들은 사람들은 장차 이 《태현경》을 장독의 덮개로 쓰겠지.”

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봄날에 《영재집》에다 쓴다.

 

 

匠石謂剞劂氏曰。夫天下之物。莫堅於石。爰伐其堅。斷而斲之。螭首龜趺樹之神道。永世不騫。是我之功也。剞劂氏曰。久而不磨者。莫壽於刻。大人有行。君子銘之。匪余攸工。將焉用碑。遂相與訟之於馬鬣子。馬鬣子寂然無聲。三呼而三不應。於是石翁仲。啞然而笑曰。子謂天下之至堅者。莫堅乎石。久而不磨者。莫壽乎刻也。雖然。石果堅也。斲而爲碑乎。若可不磨也。惡能刻乎。旣得以斲而刻之。又安知築竈者不取之以爲安鼎之題乎。揚子雲好古士也。多識奇字。方艸太玄。愀然變色易容。慨然太息曰。嗟乎。烏爾其知之聞石翁仲之風者。其將以玄覆醬瓿乎。聞者皆大笑。春日。書之冷齋集。




 

[주D-001]기자(奇字) : 고문(古文 : 공자벽중서〈孔子壁中書〉), 전서(篆書), 예서(隸書), 무전(繆篆), 충서(蟲書)와 함께 한자(漢字)의 육체(六體)의 하나로, 고문의 변체(變體)인데 양웅이 이를 즐겨 배웠다고 한다.
[주D-002]오(烏) : 양웅의 아들 양오(揚烏)로, 동오(童烏)라고도 한다. 문학의 신동(神童)이었으나 아홉 살로 요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