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8. 11:09

염재기(念齋記)

 

송욱(宋旭)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자다가 해가 떠올라서야 겨우 잠에서 깨었다. 누워서 들으니, 솔개가 울고 까치가 지저귀며, 수레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시끄러우며, 울 밑에서는 절구 소리가 나고 부엌에서는 그릇 씻는 소리가 나며, 늙은이의 부르는 소리와 어린애의 웃음소리, 남녀 종들의 꾸짖는 소리와 기침하는 소리 등 문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 없건만 유독 자신의 소리만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몽롱한 가운데 중얼거리기를,

“집안 식구는 모두 다 있는데 나만 어찌하여 없는가?”

하며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고리와 바지는 다 횃대에 놓여 있고 갓은 벽에 걸려 있고 띠는 횃대 끝에 걸려 있으며, 책들은 책상 위에 놓여 있고, 거문고는 뉘어져 있고 가야금은 세워져 있으며, 거미줄은 들보에 얽혀 있고, 쇠파리는 창문에 붙어 있다. 무릇 방 안의 물건치고 하나도 없는 것이 없는데 유독 자기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히 일어서서 제가 자던 곳을 살펴보니 베개를 남쪽으로 하여 요가 깔려 있으며 이불은 그 속이 드러나 있었다. 이에 ‘송욱이 미쳐서 발가벗은 몸으로 집을 나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슬퍼하고 불쌍히 여겼다. 한편으로 나무라기도 하고 한편으론 비웃기도 하다가, 마침내 의관(衣冠)을 안고서 그에게 찾아가 옷을 입혀 주려고 온 길을 다 찾아다녔으나 송욱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성(城) 동쪽에 살고 있는 소경에게 가서 점을 쳐 보니, 소경이 점을 치며 말하기를,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갓끈이 끊겨 염주가 흩어졌구나. 저 부엉이를 불러다가 헤아려 보게 하자꾸나.”

하고는 엽전을 던지자 동그란 것이 잘도 굴러가 문지방에 부딪쳐서야 멈추었다. 소경이 엽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축하하기를,

“주인은 여행을 나가고 나그네는 여의(旅衣)가 없구나. 아홉을 잃고 하나만 남았으니 이레가 지나면 돌아오리라. 이 점사(占辭)가 크게 길(吉)하니 마땅히 과거에 장원급제하리라.”

하였다. 송욱이 크게 기뻐하여 매양 과거가 열려 선비를 시험할 때면 반드시 유건(儒巾)을 쓰고 응시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제 시권(試券)에다 비점(批點)을 치고 나서 큰 글씨로 높은 등수를 매겨 놓았다. 그래서 한양(漢陽)의 속담에 반드시 이뤄질 수 없는 일을 두고 ‘송욱의 과거 보기〔宋旭應試〕’라고 말한다.
식자들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기를,

“미치긴 미쳤으나 역시 선비답구나. 이러한 행동은 과거에 응시하면서도 과거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계우(季雨)는 성격이 소탈하여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목청을 높여 노래하면서 스스로 ‘주성(酒聖)’이라고 호를 지었다. 세상에 겉으로는 씩씩한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이 더렵혀지기나 한 듯 구역질을 하였다.
내가 그에게 장난삼아 말하기를,

하니, 계우가 수심에 잠겨 한동안 있다가,

“그대의 말이 옳소.”

하고는, 드디어 그 당(堂)의 이름을 ‘염재(念齋)’라 짓고 나에게 기(記)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송욱의 일을 써서 그를 권면하는 바이다. 저 송욱은 미치광이이기는 하지만 그 또한 스스로 노력한 자이다.

 

 

宋旭醉宿。朝日乃醒。臥而聽之。鳶嘶鵲吠。車馬喧囂。杵嗚籬下。滌器廚中。老幼叫笑。婢僕叱咳。凡戶外之事。莫不辨之。獨無其聲。乃語矇矓曰。家人俱在。我何獨無。周目而視。上衣在楎。下衣在椸。笠掛其壁。帶懸椸頭。書帙在案。琴橫瑟立。蛛絲縈樑。蒼蠅附牖。凡室中之物。莫不俱在。獨不自見。急起而立。視其寢處。南枕而席衾。見其裡。於是謂旭發狂。裸體而去。甚悲憐之。且罵且笑。遂抱其衣冠。欲往衣之。遍求諸道。不見宋旭。遂占之東郭之瞽者。瞽者占之曰。西山大師斷纓散珠。招彼訓狐。爰計算之。圓者善走。遇閾則止。囊錢而賀曰。主人出遊。客無旅依。遺九存一。七日乃歸。此辭大吉。當占上科。旭大喜。每設科試士。旭必儒巾而赴之。輒自批其券。大書高等。故漢陽諺事之必無成者。稱宋旭應試。君子聞之曰。狂則狂矣。士乎哉。是赴擧而不志乎擧者也。季雨性疎宕。嗜飮豪歌。自號酒聖。視世之色莊而內荏者。若凂而哇之。余戱之曰。醉而稱聖。諱狂也。若乃不醉而罔念。則不幾近於大狂乎。季雨愀然爲間曰。子之言是也。遂名其堂曰念齋。屬余記之。遂書宋旭之事以勉之。夫旭狂者也。亦以自勉焉。




 

[주D-001]여의(旅衣) : 여행 도중 입을 옷, 즉 행장(行裝)을 말한다.
[주D-002]계우(季雨) : 성명은 미상(未詳)이다. 《연암집》 권5 여중관(與仲觀)에 백우(伯雨)의 동생으로 언급되어 있다. 연암 후손가 소장 필사본 《종북소선집(鍾北小選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염재당기(念哉堂記)로 되어 있으며, 그와 함께 ‘계우’가 ‘숙응(叔凝)’으로 되어 있다. 숙응은 연암의 친구인 신광온(申光蘊)의 아우 신광직(申光直 : 1738~1794)의 자(字)로, 그의 호가 또한 염재(念齋)였다. 신광직은 젊은 시절 연암뿐만 아니라 홍대용(洪大容)과도 절친하여 담헌서(湛軒書)에도 ‘여신염재부증박연암지원(與申念齋賦贈朴燕巖趾源)’ 등 신광직과 관련된 시문이 몇 편 있다. 김영진의 「조선 후기의 明淸小品 수용과 小品文의 전개 양상」(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2003) 참고.
[주D-003]세상에 …… 하였다 : 공자는 ‘겉으로는 씩씩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을 남이 알까 두려워하며 몰래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에 비겨 비판하였고, 《論語 陽貨》 백이(伯夷)는 시골 사람과 서 있을 적에 그가 관을 올바로 쓰고 있지 않으면 뒤도 안 보고 가 버리면서 ‘마치 자기 몸이 더럽혀지기나 할 듯이 여겼다.〔若將浼焉〕’고 하며, 《孟子 公孫丑上》 오릉중자(於陵仲子)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거위 요리를 먹고 난 뒤 그 거위가 바로 형에게 선물로 들어온 것이었음을 알게 되자 ‘나가서 구역질을 하였다.〔出而哇之〕’고 한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4]술에 …… 않겠는가 : 《서경(書經)》 다방(多方)에 “성인이라도 반성하지 않으면 광인이 되고, 광인이라도 반성할 줄 알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고 하였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을 강조한 말이다. 본래 《서경》 다방에서의 ‘광인’은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송욱(宋旭)의 경우와 연계되어 쓰였으므로 ‘미치광이’로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