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군(護軍) 양제영(梁濟泳)묘갈명
양 호군(梁護軍) 묘갈명
내가 연암협(燕巖峽)에 집을 짓고 장차 가서 살 요량으로 자주 개성(開城)을 내왕하게 됨에 따라 남원 양씨(南原梁氏)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양씨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대갓집이라 어질고 호방한 장자(長者)들이 많이 출입하였다. 그 자제를 따라 숭산(崧山 송악산) 남쪽 계곡 사이에서 노닐었는데, 연못과 누대가 맑고 그윽하였으며 숲 속의 나무들이 모두 아름드리였다. 서로 함께 술을 마시면서, 좌우를 돌아보며 즐기고 있을 때 그중에 호맹(浩孟)이란 사람이 탄식하며,
하였다. 얼마 후 그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청하기를,
하였다.
행장을 살펴보니, 군의 휘는 제영(濟泳)이요, 자는 군섭(君涉)이다. 증조는 부신(敷信)이니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고, 조부는 의섬(義暹)이니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고(考)의 휘는 지성(枝盛)이니 통덕랑(通德郞)을 지냈고 비(妣)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군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양무 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이 되어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나이도 젊은 데다 재산도 풍부하여 호탕하게 행동하였으며, 마음속으로 ‘이제 훈신(勳臣)이 되었으니 족히 당세에 벼슬을 할 만하다.’ 여기고서, 의기양양하여 좋은 옷에 좋은 말을 타고 여러 조신(朝臣)들과 교유하였다. 여러 조신들도 어여삐 보고서 천거하고 위로하면서, 장차 쓸 만한 사람이라 지목하고 모두 자기 문하에서 출세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래 지날수록, 금품에 손발이 달린 듯 남몰래 오가며 벼슬자리에 샛길과 구멍이 많음을 알게 되자, 깊이 탄식하고 말하기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원과 집을 더욱 깨끗이 가꾸고 집안 살림은 모두 아우 일가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았다. 날마다 향중의 부로(父老)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64세요, 계미년(1763) 12월 12일이었다.
효도와 우애에 독실하여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으며, 부모상을 당해서는 이미 늙어 머리가 하얀데도 예법을 지키기를 몹시 엄격히 하였다. 배위(配位)는 평산 이씨(平山李氏) 기숭(基崇)의 딸인데, 선영(先塋) 곤좌(坤坐)의 묘역에 합장하였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모두 요절하고, 아우 제택(濟澤)의 아들 시맹(時孟)으로 대를 이었으나 그 역시 요절하였으므로 언맹(彦孟)의 아들 경헌(景憲)으로 뒤를 잇게 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농기구가 있다 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네 / 鎡基不如待時
상관에게 잘 빌붙는 건 때를 잘 타는 것만 못하다거나 / 或曰巧宦不如乘時
짧은 인생 즐겁게 살 따름이니 / 或曰人生行樂耳
부귀하기를 언제 기다리랴 하기도 하네 / 須富貴何時
梁護軍墓碣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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鎡基不如待時。或曰巧宦不如乘時。或曰人生行樂耳。須富貴何時。
[주D-001]서로 …… 마시면서 : 원문은 ‘相與飮酒’인데, ‘相與飮食’으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주D-002]양무 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 : 양무는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려 준 공신호(功臣號)이다.
[주D-003]훈신(勳臣)이 되었으니 : 원문은 ‘勳胥’로 ‘勳胥’란 본래 연기가 점차 퍼져 나가듯이 다른 사람의 죄에 연좌되는 것을 뜻하나 여기서는 양무 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이 된 사실을 고려하여 이와 달리 풀이하였다.
[주D-004]농기구가 …… 못하다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비록 지혜가 있다 해도 때를 잘 타는 것만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다 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雖有知慧 不如乘勢 雖有鎡基 不如待時〕”는 제(齊) 나라의 속담을 인용하였다.
[주D-005]짧은 …… 기다리랴 : 한(漢) 나라 양운(楊惲)이 보손회종서(報孫會宗書)에서 한 말이다. 《文選 卷41》 《漢書 卷66 楊敞傳》 양운은 사마천(司馬遷)의 외손으로, 선제(宣帝) 때 그의 벗 손회종이 자중할 것을 충고하는 편지를 보내오자 이를 반박하는 답서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