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31. 10:32

죽오기(竹塢記)

 

예로부터 대나무를 칭송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 《시경(詩經)》 기욱편(淇奧篇)에서부터 대나무를 노래하고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군(君)이라 칭하여 높이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대나무가 마침내 이 때문에 병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천하에서 대나무로써 호(號)를 삼는 자가 그칠 줄을 모르고, 더 나아가 글을 지어 기록까지 하고 있으니, 아무리 채륜(蔡倫)이 종이를 만들고 몽염(蒙恬)이 붓을 만들었다 한들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대나무의 지조와 소탈하면서도 고고한 태도를 예찬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지었다는 글들이 모두 다 쓸데없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셈이어서, 대나무는 이 때문에 풀이 죽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글 못하는 나조차도 대나무의 덕성(德性)을 칭송하고 대나무의 소리와 색깔을 형용하여 시문을 지은 것이 많은데 다시 또 무슨 글을 짓는단 말인가.
양군 양직(梁君養直)은 강직하고 지절(志節)이 있는 사람이다. 일찍이 스스로 호를 ‘죽오(竹塢)’라 하여 자기 거실에 편액을 걸고 내게 기(記)를 지어 달라고 청했는데, 아직껏 응해 주지 못한 것은 내가 대나무에 대하여 진실로 난처하게 여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그대가 그 액호를 바꾸면 글은 당장이라도 지어 줄 수 있다.”

하고서, 그를 위하여 고금의 인물들이 지은 기발하고 운치 있는 이름으로 이를테면 연상각(烟湘閣),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 행화춘우림정(杏花春雨林亭), 소엄화계(小罨畵溪), 주영렴수재(晝永簾垂齋),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 등 열이고 백이고 누차 꼽으면서 그더러 스스로 선택하라고 권했으나, 양직은 머리를 흔들며 다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앉으나 누우나 ‘죽오’요 잠시 잠깐도 ‘죽오’를 떠나지 아니하며, 매양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문득 ‘죽오’라 쓰게 하여 벽에 걸곤 하니 벽의 네 모퉁이가 모두 ‘죽오’뿐이었다. 향리에서 죽오를 들어 기롱하는 사람 또한 많았지만, 천연덕스레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 채 편안히 받아넘기곤 하였다. 그래서 나에게 글을 청한 것이 지금 하마 십 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천번 꺾이고 백번 눌려도 그 뜻을 바꾸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하였다. 심지어는 술까지 대접하며 달래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강요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면, 분격하여 낯빛을 붉히고 삿대질하며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个) 자 모양으로 치켜세우고 손가락은 메마른 댓마디가 되며, 꿋꿋하면서도 비쩍 마른 모습이 갑자기 대나무의 형상을 이룬다.
아아! 양직은 어쩌면 진정으로 대나무에 미쳐서 그렇게 극진히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겉모습만 보아도 그의 마음이 기암괴석처럼 울뚝불뚝하고, 그윽한 대나무 숲이 그 마음속에 무성하게 들어차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나의 글을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찌 말려야 말 수 있겠는가? 옛사람 중에 이미 대나무를 높여서 군(君)이라 부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렇다면 양직 같은 이는 백세(百世) 뒤에 차군(此君)의 충신이 될 만하다. 나는 이에 대서특서(大書特書)하여 정표(旌表)하기를, ‘고고하고 정결한 양 처사의 집〔高孤貞靖梁處士之廬〕’이라 했다.

 

 

古來讚竹者甚多。自詩之淇澳。歌咏之嗟嘆之不足。至有君而尊之者。竹遂以病矣。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又從以文而記之。則雖使蔡倫削牘。蒙恬束毫。不離乎風霜不變之操。䟽簡偃仰之態。頭白汗靑。盡屬飣餖。竹於是乎餒矣。顧以余之不文。讚竹之德性。以形容竹之聲色。作爲詩文者多矣。更何能文爲。梁君養直。介直有志節者也。甞自號曰竹塢。而扁其所居之室。請余爲記。而果未有以應之者。吾於竹。誠有所病焉故耳。余笑曰。君改其額。文當立就爾。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百尺梧桐閣,杏花春雨林亭,小罨,畫溪晝永簾垂齋,雨今雲古樓者。屢數十百。勸其自擇焉。養直皆掉頭而否否。坐臥焉竹塢。造次焉竹塢。每一遇能書者。輒書竹塢而揭之壁。壁之四隅。盡是竹塢。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恬不知恥。安而受之。所以請余文者。今已十年之久。而猶不少變。千挫百抑。不移其志。彌久而罙切。至酹酒而說之。聲氣而加之。余輒默而不應。則奮然作色。戟手疾視。眉拂个字。指若枯節。勁峭槎枒。忽成竹形。嗚呼。養直豈眞癖於竹。而愛之至哉。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磐矹犖确。如奇巖巉石。而叢篠幽篁。森鬱其中也。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古之人旣有尊竹而君之者。則如養直者。百世之下。可爲此君之忠臣矣。吾乃大書特書而旌之曰。高孤貞靖。梁處士之廬。




 

[주D-001]군(君)이라 …… 있었으니 : 대나무를 차군(此君)이라 한다. 왕희지(王羲之)가 대나무를 몹시 사랑하여, 단 하루도 ‘차군(此君)’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羲之傳》 소식(蘇軾)의 묵군당기(墨君堂記)에 “유독 왕희지가 대나무를 군(君)이라 하였으니, 천하 사람들이 이를 따라 군(君)으로 삼으면서도 군말이 없었다.”고 하였다.
[주D-002]양군 양직(梁君養直) : 양호맹(梁浩孟)을 말한다. 그의 자가 양직이고, 호가 죽오였다. 양호맹은 개성의 부유한 향반(鄕班)으로, 연암이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이거하면서 개성에 잠시 머물 때 그의 별장에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교분을 맺고 연암의 문하를 출입했다.
[주D-003]개(个) 자 : 대 줄기를 상형(象形)한 글자로서, 대를 헤아리는 단위로도 쓰인다. 또한 동양화에서 죽엽(竹葉)을 개(个) 자 모양으로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