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士章박상한(朴相漢 ) 애사(哀辭)|
사장(士章) 애사(哀辭)
사장(士章)이 죽어 염을 마친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의 방에서 곡을 하였다. 그림을 벽에서 떼어 내고 병풍과 장자(障子)를 치우고 서책(書冊)을 옮겼으며, 집기와 감상품 따위를 바깥 마루에다 흩어 놓았고, 방 한가운데에 머리를 동으로 둔 채 얇은 이불로 덮어 놓아, 마치 거문고를 집에 넣어 금상(琴牀) 위에 둔 것 같았다. 쓰다듬으며 통곡했더니 손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울컥 싫은 마음이 나서 방문을 닫고 나왔다. 뜰에는 왁자지껄하면서 뚝딱뚝딱 널을 짜고 이음매에 옻을 칠하니, 장차 우리 사장을 가두어 두려는 것이었다. 그의 벗 함원(咸原) 어경국(魚景國)과 풍산(豐山) 홍숙도(洪叔道)의 이름이 조문객 명부에 있었다. 문설주를 잡고 엎디어 울고 있는 그들에게 “두 분은 그리도 애통하시오?” 하고 물었더니, “너무도 애통하오이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호곡하기도 전에 눈물 콧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아! 사장은 명문가의 자제로 용모가 아름다웠다. 일찍이 필운대(弼雲臺)에서 꽃구경할 적에 그때는 바야흐로 석양이라 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 부채를 들어 해를 가리고 있었더니 사람마다 얼굴을 돌려 돌아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시(詩)는 전우산(錢虞山 전겸익(錢謙益))을 본받고 글씨는 미남궁(米南宮 미불(米芾))을 배웠으며, 그가 좋아하는 것은 보검(寶劍)인데 그 값이 왕왕 백금(百金)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무릇 공작새가 먼지를 피하는 것과 화포(火布)가 때를 씻어 내는 것과 백지(白芷)와 백출(白朮)이 땀을 그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천성이라 하겠고, 원앙새나 금계(錦鷄)가 물에 섰는 것은 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사랑한 때문이라 하겠다. 당시의 노래 잘 부르는 자들을 좋아하여, 한밤중에 가야금을 타면서 매양 그들의 신성(新聲)을 변주(變奏)하는데 가락이 느릿느릿하게 변하여 처량하고 슬픈 회포를 드러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각혈병을 앓은 지 두어 달 만에 죽으면서 뱃속에 아들을 남겼다. 그 선세(先世)는 나와 조상이 같다.
애사(哀辭)는 다음과 같다.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고 감정이 극에 달해야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것이 어떤 모양이관대 생각만 하면 내 코 끝을 시리게 하는지. 또한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관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우는 것을 남이 가르쳐서 하기로 한다면 나는 의당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내지 못할 것이다. 내 이제사 알았노라, 이른바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란 배워서 될 수 없다는 것을.
吾每不知聲之同出于口。而樂奚爲兮笑。哀奚爲兮哭。豈二者之不可强而發乎情之極。吾不知所謂情之何狀。而思則酸我鼻。又不知淚之何水。而啼則生于目。嗟乎啼之若可敎而爲。吾當忸怩而不能聲。吾乃今知所謂淚之汪汪然。不可以學而得。
[주D-002]어경국(魚景國) : 경국(景國)은 어용빈(魚用賓 : 1737~1781)의 자이다. 함원(咸原)은 곧 함종(咸從)으로, 함종 어씨 집안과 반남 박씨 집안은 가까운 인척간이었다. 어경국은 어유봉(魚有鳳)의 손자로, 연암의 고모부인 어용림(魚用霖)의 동생이다. 김윤조의 《幷世集》 所載 연암 작품의 검토」(安東漢文學論集6, 1997) 참고.
[주D-003]홍숙도(洪叔道) : 숙도(叔道)는 홍낙임(洪樂任 : 1741~1801)의 자이다. 그는 홍봉한(洪鳳漢)의 아들로, 어용빈과 절친한 사이였다. 김윤조의 《幷世集》 所載 연암 작품의 검토」(安東漢文學論集6, 1997) 참고.
[주D-004]두 분은 …… 하였다 : 《논어》 선진(先進)에 “안연(顔淵)이 죽자 공자가 곡하며 너무도 애통해하니, 따라간 제자가 ‘선생님께서 너무도 애통해하십니다.’ 하였다.〔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는 대목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주D-005]사장(士章)이 죽어 …… 아름다웠다 : 이 부분이 원문에는 ‘缺百六字’로 되어 있는데, 윤광심(尹光心)의 《병세집(幷世集)》에 의거하여 보충ㆍ번역하였다. 단 보충된 원문은 모두 126자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士章歿 旣殮 余始哭于其室 畵刊于壁 撤屛捲障 遷其書冊 器什玩好 散于外廳 中霤東首 覆以涼衾 若室琴而床者 憮以慟 黏手津津 心慨然惡之 扃戶而出 中庭薨薨 約之丁丁 陳柒其坎 將以閉吾士章也 其友咸原魚景國 豊山洪叔道 名在弔簿 問其持戶伏而啼者曰 二子慟歟 曰 慟矣 泗先其咷 嗟乎 士章名家子 美姿儀”
[주D-006]화포(火布) : 화완포(火浣布)라고도 하며 지금의 석면(石綿)에 해당한다. 화포는 불 속에다 집어넣어 때를 없앤다고 한다. 《列子 湯問》
[주D-007]백지(白芷)와 백출(白朮) : 백지는 우리말로 구릿대, 백출은 흰삽주라고 하며, 이것으로써 온분(溫粉)을 만들어 몸에 뿌리면 땀 나는 것이 멈춘다고 한다. 《東醫寶鑑 止汗法 溫粉》
[주D-008]신성(新聲) : 당시 한양의 가객(歌客)들은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빠른 가락의 시조창(時調唱)을 즐겨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