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을 다녀와서
열하 여정1
2018년 6월5일부터 6월10일 5박6일까지 실학 훼미리 회원들과 열하일기의 연행단에 참여 경험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연행록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발길을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이를 통해 두 나라 교류의 의미를 살펴본다.
이 글은 연암의 발길을 따라간 연행단의 기록과, 그에 해당하는 열하일기의 중요한 곳을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신들이 오가던 길을 되짚어보는 연행단의 기록을 통해, 1차 압록강에서 심양까지의 여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7대손 종손인 찬구는 연암 박지원의 여행길에 동행하는 경험을 해 본다.
나는 비록 대한민국 국민으로 2018년 06월05일을 살고 있지만 시계를 235년 뒤로 돌려 연암할아버지와 동행키로 한다.
열하일기와의 만남 연암이 떠난 지 213년 지난 할아버지와 가는 여행을 떠나며 압록강에서부터 열하의 여정 첫 페이지를 쓰다.
◆구룡 성으로 가기 전 마시 관제묘 에 들러본다..
이 자리는 바로 중강의 강가로서 조선의 의주 땅이 마주보이는 지점이고
지금의 마시관제묘는 바로 압록강 서안의 차도 가까이에 바짝 붙어있다
◆오늘날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세관의 역할을 하던 청나라의 관문 책문(柵門)
조선 사신들이 북경에 오간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을 보면 조선과 명·청 사이의 국경선, 즉 세관인 책문(柵門)은 압록강 북쪽 봉황성에 있었다. 지금 봉성(鳳城)시 경내에 있는 봉황성은 신의주 대안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이다.
탄산성촌 옛길도보를 걷다.
지금은 철길로 변한 총수의 옛길을 걸어 본다.. 냇가의 가파른 암벽과 사행이 노숙을 하던 곳은 물가 오른 쪽 조금 높은 곳일 텐데 모두 옥수수 밭이었다. 앞쪽에 보이는 뾰족한 산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고, 그 절벽 밑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철길 오른쪽으로는 옥수수 밭이 있다는데 그 곳이 옛날의 노숙현장이다.
◆문가보 후손 방문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새로 사귄 중국 친구들과 술에 뻗어 하루를 보낸 그곳이다. 문가보 후손인 문 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말로는 문 씨 가문은 대대로 조선사신단들의 통역관을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할아버지와 그 아들은 한국어를 못하신다.
우리 일행과 인사하자마자 어디론가 갔다 오시더니 손에 낡은 책 한권을 가지고 나오셨다.
과도한 흡연으로 후두암치료를 받으신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오신다. 희미한 목소리로 우리 집 가보라면서 낡은 책을 보여주었다 통역관의 일기 같은 것이었다. 보존 상태나 내용을 봐서는 가보 수준이 아닌 박물관에 기증해야할 문화유산 수준급이다.
요동벌의 중요성 요동을 정벌하는 자는 중원을 일듯이 연암은 중요성을 말하곤 하였다.
헤질 무렵 차를 타고 요동벌을 지날 때 저녁노을이지는 낙조가 아릅다웠다.
연암은 요동은 왼편에 창해를 끼고 앞으로는 벌판이 열려 아무 거칠 것이 없이 천리가 아득히 트였는데 이제 백탑이 요동 벌판의 삼분의일을 찾지 하였다. 탑 꼭대기에는 구리로 된 북 세 개를 설치하고 추녀 네 귀퉁이 모서리에 물통만한 풍경을 담아서 바람이 불면 풍경소리가 요동을 진동한다. 고 했다.
당시에는 넓은 요동 벌을 건너와 처음 만나는 높은 층으로 사행 단들에게는 놀라움 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요즘의 요양에서는 백탑도 아닌 거무스름한 좀 높고 오래된 탑일 뿐이다.
◆회령령 관제묘 부근에서 청석령을 바라보며 지나오신 고갯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연암 할아버지가 연행을 하셨던 청석령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나마 실학자 후손과 고유제를 지내며 앞으로 연행 하는 길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 해 봅니다.
영전(초상화)의 모습은 뵐 수는 있었지만 생전에 하신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고유제를 드리면서 어렴풋이 할아버지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심양고궁의 특징은 자유로운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한족의 영향보다 만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북릉 공원은 푸르게 우거진 수목과 하늘을 덮고 있는 고송림 사이로 북릉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위엄 있게 서있으며 황금빛 지붕이 눈을 부시게 하고 전통미와 현대적 공원의 수려함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경황이 없는 상황임에도 무보직 무임소 찬하태평인 연암할아버지의 글을 읽다 느끼는 천생 낙천주의자다. 오히려 그가 바라는 꿈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기발한 상상이 떠오른 것은 인생의 맛이 무엇인지 아는 어쩔 수없는 놀이꾼 철부지 연암 할아버지다. 철부지 아이들이 초상 난 것도 모르고 먹을 것이 잔뜩 생기자 시시덕거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싶은 천진난만함이었다.
연행노정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실학 박물관 장덕호관장님을
비롯해서 학예사님과 실학훼미리 회장님 이하 회원 여러분 김시업 관장님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심춘호PD님의 해설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5박6일동안 아무 무탈없이 지내온 것이 서로의 염려덕분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연암 할아버지 고유제를 힘써주신 회장님 관장님 양쪽에서 수고해주신
집사님과 축문을 독축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연행노정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박 찬 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