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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4신] 기승전결의 사단 구조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09. 11. 29. 11:43

[제14신] 기승전결의 사단 구조 / 임보

로메다 님,
세상의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의 중간이 그 일의 진행 과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시작, 중간, 끝의 3단 구조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진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논문의 구조를 얘기할 때 서론 본론 결론 하는 것이 바로 이 3단 구조입니다.
그런데 글이란 것도 세상의 일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 진행 과정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 '중간' 부분이 다시 2단계, 3단계 혹은 4단계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장편 소설이나 희곡의 전개 과정을 놓고
발단(시작)→ 전개→ 갈등→ 위기→ 절정→ 종말(끝) 등으로 논하지 않습니까?
이 경우는 중간 부분을 4단계(전개, 갈등, 위기, 절정)로 다시 나눈 것이 됩니다.

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하나의 이미지만을 제시하는 단단(單段, 1단) 구조로부터
시작과 끝만을 지닌 2단 구조 그리고 3, 4, 5단 등 다양한 구조를 지닙니다.
그런데 우리 시에서 압도적으로 선호되고 있는 구조는 4단 구조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기(起) 승(承) 전(轉) 결(結)의 4단계를 지닌
한시(漢詩) 절구(絶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구의 영향을 받기 이전인 우리의 고대시가
「구지가(龜旨歌)」나 「황조가(黃鳥歌)」같은 노래들이
4단 구조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나는 그 요인을 사계(四季)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의 기후풍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즉 4계의 변화에 오래 적응하다 보니 4단계의 전환 구조에 친숙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로메다 님,
이유야 어떻든,
홀수보다는 짝수가 그리고 3각형보다는 4각형이 안정감을 줍니다.
시에서의 4단 전개가 선호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안정적으로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형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박목월의「閏四月」입니다.
외딴 산봉우리에(배경) 꾀꼬리가 울면(대상),
외딴 집(배경)의 눈먼 처녀가 엿듣는다(대상)는 내용입니다.
제1, 2연에서는 배경과 대상이 각각 분할되어 있는 데 반해
제3연에서는 전후 행에 배경과 대상을 함께 담고 있는 것이 다를 뿐
'어디에 무엇이 어찌하면, 어디에 무엇이 어찌한다'의
배경과 대상이 두 개 병치되어 있는 4단 구조입니다.

지난번에 예로 보였던 박목월의 「산도화·1」도
배경과 대상이 두 번 병치되어 있는 4단 구조였습니다.
이처럼 4단계의 전개가 '짝을 이룬 대우'들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4개의 대등한 정황을 늘어놓는 병치의 구조일 수도 있고
단계의 앞뒤가 서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일 수도 있고
각 단계가 정도를 점점 고조시켜 가는 점층 구조일 수도 있고
순서를 좇아 진행되는 순차(順次)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육사의 「정정」,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등
4단 구조로 이루어진 좋은 작품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비록 외형은 4연으로 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의미 구조상 4단계로 볼 수 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영산홍 꽃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픈 小室宅

        小室宅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서정주「映山紅」전문

 

이 작품의 외형적 배열은 5연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 전개는 4단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제3연까지 각 연의 제1행과 제2행이 배경과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와는 달리 제4연과 제5연에서는 연 단위로 배경과 대상이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의미 구조로 본다면 제4, 5연은 한 부분으로 묶일 수 있어서
전체 작품은 기승전결의 4단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연까지는 앞말의 꼬리를 이어받는 연쇄 구조인 것도 재미있습니다.
행 단위로 ㅅ, ㄴ, ㅈ 등이 빚어낸 압운적인 효과도 조화롭습니다.
한 여성의 애잔한 삶을 아름답게 승화기킨 작품입니다.
미당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유수한 수작의 하나로 평가할 만합니다.

로메다 님,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분석 감상은 첨부자료로 덧붙이겠습니다.
4단 전개가 시인들이 선호하는 보편적인 구조인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임보.


[참고]
  시「영산홍」에 대한 분석 감상은 <명시감상>란을 참조할 것


자연과 시의 이웃들 
출처 : 글님문학
글쓴이 : 풍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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