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박규수朴珪壽(1807~1877) 연보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2. 3. 31. 08:11

박규수의 『환재집』
박규수朴珪壽(1807~1877)
본관 반남潘南. 자 환경瓛卿․정경鼎卿, 호 환재瓛齋․환재거사瓛齋居士
1807년(순조 7) 서울 가회방嘉會坊 재동齋洞에서 출생
1823년(순조 23) 동몽童蒙으로 선발되어 희정당熙政堂에 입시入侍
1827년(순조 27) 『상고도문회의례尙古圖會文儀例』저술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孝明世子의 명으로 조부인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찬진
1830년(순조 30) 익종翼宗이 서거하자 과거 포기, 학문에만 전념
1841년(헌종 7) 의관衣冠제도 개혁을 논한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저술
1848년(헌종 14) 문과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병조좌랑 이후 중앙 및 지방 관직 역임
1849년(헌종 15) 북극 고도(위도) 측정.『동여도東輿圖』 제작
1850년(철종 1)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관측. 평혼의平渾儀․간평의簡平儀․지세의地勢儀 제작
1861년(철종 11) 연행사절 의 부사로 청나라 다녀옴. 고염무顧炎武사당에서 중국 문사들과 토론. 이후 조선과 중국의 천문․수학 등 학술 교류
1862년(철종 12) 안핵사按覈使로 진주민란 진상 조사
1866년(고종 3) 평안도 관찰사 재직시 미국 상선 제너럴 샤먼호 물리침
1872년(고종 9) 진하사로 청나라에 가서 양무운동洋務運動을 목격하고 개국 필요성을 주장
1874년(고종 11) 우의정으로 사퇴 후 젊은 양반 자제들에게 개화사상 전파
1875년(고종 12) 운양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의 수교 주장
1877년(고종 14) 재동 집에서 별세. 『환재집瓛齋集』(1913)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