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후(李子厚)의 득남(得男)을 축하한 시축(詩軸)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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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이씨(韓山李氏) 자후(子厚)가 나이 마흔여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득남하니, 아이의 눈썹은 길고 눈은 오목하며 코가 오똑하고 이마가 널찍하여 의젓한 세가(世家)의 자손이었다.
자후를 축하하는 친척과 친구들이 다투어 시를 지어 기쁨을 표시하니, 자후가 그것을 모아 장축(長軸)을 만들고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아! 자후가 아들이 없었을 때 자후와 친한 친구들이 자후를 위하여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나는 “자후는 반드시 아들을 둘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비록 자후와 교유한 적은 없지만 자후가 덕 있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후를 염려한 것은 아직 쇠할 나이가 아닌데도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이의 모습이어서 자칫하면 아들을 두기가 어려울 듯싶어서였다. 그러나 자후는 사람됨이 무게 있고 순박하며 솔직하고 꾸밈이 없으니 그 마음도 틀림없이 성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무릇 덕에 흉(凶)하기로는 성실하지 못한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성실하지 못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결실이 없는 가을을 흉년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덕이 있어야 그 대(代)가 멀리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힘써 덕을 편다〔邁種德〕’ 함은 이를 이름이다. 초목에 비유컨대 이미 열매를 맺었다면 당연히 종자를 뿌릴 수가 있다. 종자란 ‘생명을 끊임없이 낳게 하는 길〔生生之道〕’이다. 그러므로 인(仁)이라고 일컫는 것이며, 인이란 ‘쉬지 않는 길〔不息之道〕’이다. 때문에 그 인을 씨앗〔子〕이라 일컫는다. 이렇게 과일의 씨 하나로 미루어 뭇 이치의 실상을 징험할 수 있는 것이다.
급기야 자후가 아들을 두게 되었는데, 내가 잠시 거처하던 집이 자후의 집과 골목을 마주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동네 사람을 좇아 자후에게 놀러갔더니, 자후의 아들이 태어나서 해가 지나매 걸음마와 절을 익히고 어른을 가리키며 누구누구라고 구별할 수 있게 되고, 보조개 웃음과 어여쁜 눈짓으로 나날이 더욱 귀여워졌다. 그러자 전에 자후를 염려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내 말을 믿게 되어 그 이치를 물어보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무릇 군자가 화려한 꽃을 싫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꽃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니 모란과 작약이 바로 그렇다. 모과의 꽃이 목련만 못하고, 연밥은 대추나 밤만 못하다. 심지어 박꽃은 더욱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뭇꽃에 끼어서 봄철을 매혹적으로 만들지도 못하지만, 그 넝쿨은 멀고도 길게 뻗어 가며 박 한 덩이의 크기가 여덟 식구를 먹일 만하고 한 바가지의 박씨는 백 이랑의 밭을 박잎으로 뒤덮이게 할 만하고 박을 타서 그릇을 만들면 두어 말의 곡식을 담을 만하니, 꽃과 열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아, 자후여 힘쓸지어다. 자후는 섬세하고 화려한 면에서는 당세의 눈에 들어 뭇사람들의 칭송이 사방에 퍼지게 하기에 부족하지만, 그 내면에 쌓인 것은 두텁고 순박하니 그 열매가 종자를 둘 것을 징험할 수 있다. 종자 심기를 두텁게 하였으니 그 싹이 남이 더디기는 하겠으나 그 뿌리 내림은 튼튼할 터이다. 내 어찌 자후의 아들에 대하여만 이를 징험하겠는가. 《시경(詩經)》에 “효자가 끊어지지 아니하여, 길이 너에게 선(善)을 내리리라.〔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으니, 이로써 유추해 보면 영원히 그 자손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징험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써 주면서 자후가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李子厚賀子詩軸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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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山李子厚行年四十六。始得男子子。眉脩而目深。鼻高而額豐。嶷然世家兒也。親戚故舊之賀子厚者。競作詩以識喜。子厚聯爲長軸。屬余文以弁之。噫。子厚之方未有子也。朋儕之與子厚厚者。莫不爲子厚憂焉。余獨言子厚必有子。吾雖未甞從子厚遊。然吾知子厚有德者也。人之所以憂子厚者。見其年未及衰而髮禿齒頹。僂然一老翁。此似亦岌岌乎嗣胤也。然子厚爲人。重厚木訥。悃愊無華。其中必誠實而無僞者。夫德之凶。莫如不誠。不誠則無物。故秋之不實曰凶。惟德能遠其世。故曰邁種德是也。譬諸草木。旣實矣。宜可以種。種者。生生之道也。故稱仁焉。仁者。不息之道也。故稱子焉。推一果核。而衆理之實。可驗矣。及子厚有子。而余之僑居與子厚對巷。日從隣里遊於子厚。而子厚兒生且閱歲。習趨拜。能指長者辨誰某。倩笑嬌瞬。日益娟好。向之爲子厚憂者。莫不信余言而徵其理。余曰。是不難知也。夫君子之惡夫華。何也。華大者。未必有其實。牡丹芍藥是也。木瓜之花。不及木蓮。菡萏之實。不如棗栗。至若瓠蓏之有花也。尤微且陋。不能列羣芳而媚三春。然其引蔓也遠而長。其一顆之碩。足以供八口。其一窩之犀。足以蔭百畝。刳以爲器。則可以盛數斗之粟。其於華若實。顧何如也。噫。子厚勉之哉。子厚之穠纖綺麗。不足以媚當世而播衆譽。然其蘊於中者。完厚敦樸。則可驗其實之有種。其種之也旣厚。則其生也宜遲。而其托根也宜固。吾奚獨於子厚之子而徵之哉。詩云。孝子不匱。永錫爾類。推是類也。可徵其不匱於永世矣。吾乃書此而爲子厚俟之。
[주D-001]자후(子厚) : 이박재(李博載 : 1739~1806)의 자(字)이다. 이박재는 대사헌을 지낸 이규채(李奎采)의 아들로서 정읍 현감을 지냈으며, 1784년(정조 8) 재취인 김해 김씨(金海金氏)와의 사이에서 첫아들 심구(審榘)를 보았다. 《韓山李氏麟齋公派世譜》 이박재는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을 지은 일몽(一夢) 이규상(李奎象)의 족질(族姪)이어서, 이규상도 그에게 득남을 축하하는 시 2수를 지어 주었다. 《韓山世稿 卷20 一夢稿 次族姪子厚博載生男詩韻》
[주D-002]세가(世家) : 《하풍죽로당집(荷風竹露堂集)》, 《백척오동각집(百尺梧桐閣集)》, 《운산만첩당집(雲山萬疊堂集)》 등의 이본에는 ‘大家’로 되어 있다.
[주D-003]힘써 덕을 편다〔邁種德〕 : 순(舜) 임금이 우(禹)에게 왕위를 선위하려고 하자 우가 말하기를, “저는 덕이 없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요(皐陶)는 힘써 덕을 펴서 그 덕이 아래에 미쳤으니 백성들이 그를 우러러볼 것입니다.〔朕德罔克 民不依 皐陶邁種德 德乃降 黎民懷之〕”라고 사양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종덕(種德)은 씨앗을 뿌리듯이 덕을 널리 행한다는 뜻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4]초목에 …… 것이다 :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易)’이라 이른다.〔生生之謂易〕”고 하였으며,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하늘의 운행은 꾸준하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며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고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이러한 《주역》에 근거하여 인(仁)이란 생명을 끊임없이 낳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천도라고 확대 해석했으며, 사람의 마음에 인이 보존되어 있음을 곡식의 씨앗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연암 역시 주공탑명(麈公塔銘)에서 인을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실리(實理)’로 보고 이를 씨앗에 비유하였다.
[주D-005]박꽃 : 원문에는 ‘瓠蓏’로 되어 있으며, 《하풍죽로당집》, 《백척오동각집》, 《운산만첩당집》 등의 이본에는 ‘瓠苽’로 되어 있다.
[주D-006]효자가 …… 내리리라 :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나온다.
[주D-002]세가(世家) : 《하풍죽로당집(荷風竹露堂集)》, 《백척오동각집(百尺梧桐閣集)》, 《운산만첩당집(雲山萬疊堂集)》 등의 이본에는 ‘大家’로 되어 있다.
[주D-003]힘써 덕을 편다〔邁種德〕 : 순(舜) 임금이 우(禹)에게 왕위를 선위하려고 하자 우가 말하기를, “저는 덕이 없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요(皐陶)는 힘써 덕을 펴서 그 덕이 아래에 미쳤으니 백성들이 그를 우러러볼 것입니다.〔朕德罔克 民不依 皐陶邁種德 德乃降 黎民懷之〕”라고 사양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종덕(種德)은 씨앗을 뿌리듯이 덕을 널리 행한다는 뜻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4]초목에 …… 것이다 :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易)’이라 이른다.〔生生之謂易〕”고 하였으며,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하늘의 운행은 꾸준하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며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고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이러한 《주역》에 근거하여 인(仁)이란 생명을 끊임없이 낳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천도라고 확대 해석했으며, 사람의 마음에 인이 보존되어 있음을 곡식의 씨앗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연암 역시 주공탑명(麈公塔銘)에서 인을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실리(實理)’로 보고 이를 씨앗에 비유하였다.
[주D-005]박꽃 : 원문에는 ‘瓠蓏’로 되어 있으며, 《하풍죽로당집》, 《백척오동각집》, 《운산만첩당집》 등의 이본에는 ‘瓠苽’로 되어 있다.
[주D-006]효자가 …… 내리리라 :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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