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재기(觀齋記)
을유년(1765, 영조 41) 가을에 나는 팔담(八潭)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하연(摩訶衍)에 들어가서 준대사(俊大師)를 방문하였다. 그때 대사는 손가락으로 감중련(坎中連)을 하고서 눈으로는 코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자(童子)가 옆에서 화로를 헤치고 향(香)을 피우는데, 그 연기가 둥글게 피어올라 머리털을 묶은 듯 버섯이 돋아난 듯 방 안에 자욱하였다. 연기는 붙들지 않아도 곧게 피어오르고 바람이 없어도 저절로 출렁이며, 너울너울 한들한들하며 장차 다함이 없을 듯싶었다. 동자가 갑자기 깨우침을 얻은 듯 웃음을 지으며,
“공덕(功德)이 충분히 쌓이면 움직임〔動轉〕은 바람으로 돌아가고, 나의 깨달음이 성취되면 한낱 향은 무지개로 화하리라.”
하니, 대사가 눈길을 돌리며 말하기를,
하였다. 동자가 말하기를,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이른 말씀입니까?”
하니, 대사가,
“너는 시험 삼아 그 재를 맡아 보아라. 다시 무슨 냄새가 나느냐? 너는 그 공(空)을 보아라. 다시 무엇이 있느냐?”
하였다. 동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기를,
“예전에 스승님께서 제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저에게 오계(五戒)를 내리셨고 저의 법명(法名)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름은 곧 내가 아니요, 나는 바로 저 공(空)이다.’ 하셨습니다. 공이란 곧 형체가 없는 것이니 이름이 있다 한들 장차 어디에다 쓰오리까. 청컨대 그 이름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하니, 대사가,
“너는 공순히 받아서 고이 보내라. 내가 60년 동안 세상을 보았는데 어떠한 사물이든 머물러 있는 것이 없이 모두가 도도하게 흘러간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바퀴를 멈추지 않으니, 내일의 해는 오늘의 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리 헤아린다〔迎〕’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는〔逆〕’ 것이요, ‘붙잡는다〔挽〕’는 것은 ‘억지로 애쓰는〔勉〕’ 것이요, ‘보낸다〔遣〕’는 것은 ‘순응하는〔順〕’ 것이다. 너는 마음속에 머물러 두지 말고 기운이 막힘이 없도록 하라. 명(命)에 순응하여 명(命)으로써 나를 보고, 이(理)에 따라 보내어서 이(理)로써 사물을 보면, 흐르는 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곳에 있을 것이요 흰 구름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다. 나는 이때 턱을 고이고 옆에 앉아서 듣고 있었으나 진실로 아득한 기분이었다.
백오(伯五 서상수(徐常修))가 그의 대청을 ‘관재(觀齋)’라 이름 짓고 나에게 글을 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저 백오도 준대사의 설법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드디어 그 말을 써서 기(記)를 짓는 바이다.
歲乙酉秋。余溯自八潭入摩訶衍。訪緇俊大師。師指連坎中。目視鼻端。有小童子。撥爐點香。團如綰髮。鬱如蒸芝。不扶而直。無風自波。蹲蹲婀娜。如將不勝。童子忽妙悟發笑曰。功德旣滿。動轉歸風。成我浮圖。一粒起虹。師展眼曰。小子汝聞其香。我觀其灰。汝喜其烟。我觀其空。動靜旣寂。功德何施。童子曰。敢問何謂也。師曰。汝試嗅其灰。誰復聞者。汝觀其空。誰復有者。童子涕泣漣如曰。昔者夫子摩我頂。律我五戒。施我法名。今夫子言之。名則非我。我則是空。空則無形。名將焉施。請還其名。師曰。汝順受而遣之。我觀世六十年。物無留者。滔滔皆往。日月其逝。不停其輪。明日之日。非今日也。故迎者逆也。挽者勉也。遣者順也。汝無心留。汝無氣滯。順之以命。命以觀我。遣之以理。理以觀物。流水在指。白雲起矣。余時支頤。旁坐聽之。固茫然也。伯五名其軒曰觀齋。屬余序之。夫伯五豈有聞乎俊師之說者耶。遂書其言。以爲之記。
[주D-001]손가락으로 …… 있었다 : 손가락으로 감중련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감괘(坎卦) 모양으로 소지(小指)를 대지(大指)와 맞닿게 한 인상(印相)을 말한다.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는 것은 조식법(調息法)의 일종이다.
[주D-002]동정(動靜) : 이본에는 ‘동전(動轉)’으로 되어 있다.
[주D-003]제 …… 내리셨고 : 계사(戒師)가 수행자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나서 계(戒)를 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오계(五戒)란 살생ㆍ도적질ㆍ간음ㆍ망언ㆍ술을 금하는 계율이다.
[주D-004]미리 …… 것이요 : 거스를 ‘逆’ 자에 ‘迎’ 자와 같이 ‘맞이한다’는 뜻이 있음을 이용한 궤변이다. 단 여기서 ‘영(迎)’ 자는 ‘예측한다’는 뜻이다. 한편 ‘역(逆)’ 자에도 ‘미리’, ‘사전에’라는 뜻이 있다.
[주D-005]붙잡는다〔挽〕는 …… 것이요 : 이본에는 ‘挽’이 ‘留’로, ‘勉’이 ‘强’으로 되어 있다.
[주D-006]보낸다〔遣〕는 …… 것이다 : 이본에는 ‘遣’이 ‘送’으로 되어 있다.
[주D-007]관재(觀齋) : 이본에는 ‘관물(觀物)’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글의 제목도 ‘관물헌기(觀物軒記)’로 되어 있다.
[주D-002]동정(動靜) : 이본에는 ‘동전(動轉)’으로 되어 있다.
[주D-003]제 …… 내리셨고 : 계사(戒師)가 수행자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나서 계(戒)를 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오계(五戒)란 살생ㆍ도적질ㆍ간음ㆍ망언ㆍ술을 금하는 계율이다.
[주D-004]미리 …… 것이요 : 거스를 ‘逆’ 자에 ‘迎’ 자와 같이 ‘맞이한다’는 뜻이 있음을 이용한 궤변이다. 단 여기서 ‘영(迎)’ 자는 ‘예측한다’는 뜻이다. 한편 ‘역(逆)’ 자에도 ‘미리’, ‘사전에’라는 뜻이 있다.
[주D-005]붙잡는다〔挽〕는 …… 것이요 : 이본에는 ‘挽’이 ‘留’로, ‘勉’이 ‘强’으로 되어 있다.
[주D-006]보낸다〔遣〕는 …… 것이다 : 이본에는 ‘遣’이 ‘送’으로 되어 있다.
[주D-007]관재(觀齋) : 이본에는 ‘관물(觀物)’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글의 제목도 ‘관물헌기(觀物軒記)’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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