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면천 ‘건곤일초정 이름 틀렸다’ 논란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8. 5. 3. 10:21


면천 ‘건곤일초정 이름 틀렸다’ 논란

박지원이 쓴 편지에 ‘취옹희우우사정’이라 칭한 기록
당진시 “고지도에 ‘건곤일초정’, 검증 더 해보아야”

2012.06.13 10:33l(913호)


 

면천 향교앞 골정지에 지어진 ‘건곤일초정(乾坤一艸亭)’의 이름이 잘 못 돼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시대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면천 군수 시절 저수지 한 가운데에 축대를 쌓고 소박한 정자를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당진시는 지난 2006년 1억6천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이 정자를 복원하고 ‘건곤일초정’이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박지원이 지은 저수지 가운데 위치한 정자의 이름은 ‘취옹희우우사정(醉翁喜雨又斯亭)’이라는 주장이 뒤늦게 제기됐다.


문제를 제기한 한학자 이청 씨는 “건곤일초정이 등장한 것은 박지원의 아들인 박종채가 아버지 박지원의 행적을 기록한 <과정록>을 남겼는데 그 속에 저수지 가운데 정자를 건곤일초정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하지만 박지원이 직접 친구 이태영에게 정자의 현판을 써 줄 것을 청하는 편지에 정자의 이름을 본인이 직접 ‘취옹희우우사정’이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이청 씨가 제시한 박지원이 이태영에게 썼다는 편지는 <공작관문고>에 남아 있다. 이 편지는 박지원이 1798년7월(음력)경 정자를 완성한 후 당시 충청 관찰사로 박지원의 깨복둥이 친구였던 이태영에게 보낸 것이다. <동작관문고> 중 답사순서(관찰사에게 보내는 편지) 원문을 살펴보면 이렇다.


편지글 중 밑줄 친 부분이 ‘취옹희우우사정’이라고 지은 정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문 중 명칭을 언급한 부분을 해석해 보면 “옛날 정자를 지은 사람 중에 늙은 몸에 머리까지 희면 작은량의 술에도 취해 취옹이라 했고 지겨운 비가 사흘동안 내리다 정자를 짓는 공사를 마치자 비가 그쳤다 하여 희우정이라 했으니 오늘 이 정자가 두가지 사연을 다 갖추었기에 취옹희우우사정이라 이름지었습니다”고 적혔다.


이청 씨는 “편지를 보면 당시 향교앞의 저수지는 둘레가 1056척으로 물이 마르고 토사가 쌓여 수십기의 말무덤으로 가득했고 뱀과 온갖 곤충이 서식하는 폐저수지였는데 박지원이 저수지 밑에 수십마지의 농토를 주목하고 흙을 파내어 둑을 쌓는 한편 한가운데에 축대를 쌓고 육각형의 정자를 지은 과정이 생생히 적혔다”고 말했다. 이 씨는 “건곤일초정이 언급된 박종채의 과정록보다 박지원의 답사순서가 선행 자료이고 자료의 공개도 먼저 제시된 상태에서 이런 착오가 생긴 것은 참으로 면구한 일”이라며 “제대로 고쳐 역사의 왜곡을 막고 지역문화 역량이 시험 받는 일도 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진시 문화체육과 담당자는 “당시에는 면사무소 시책사업으로 박종채의 <과정록>을 근거로 현판을 걸었고 고지도에서 건곤일초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편지글을 썼다해도 이후에 실제 현판은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복원당시에는 <동작관문고>라는 문서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다”며 “취옹희우우사정이라는 명칭의 정확한 근거가 있다면 확인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명칭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보며 더불어 현재 시에서 번역사업을 하고 있는 <면향잡록>에 정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 한 번 더 검증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