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배우기

고향 / 정지용 핵심 정리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6. 7. 7. 14:47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회고적. 애상적


어조 : 애절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탄식적 어조


심상 : 감각적(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심상


구성 :


1연 그리던 고향이 아님 - 고향에 대한 상실감(기)


2연 변함 없는 고향의 정경


3연 낯설게 느껴지는 고향 - 변함 없는 자연과 방랑 의식(승)


4연 변하지 않은 흰 점 꽃


5연 고통스런, 고향의 상실 - 변함 없는 자연과 변해 버린 인간사(전)


6연 하늘만 높푸름 - 좌절의 허망함(결)


제재 : 고향


주제 : 고향 상실과 인생 무상


출전 : <정지용 시집>(1935)



이해와 감상


고향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삶의 근원을 이루는 원초적 공간이다. 특히 현실에서의 삶이 힘겹고 고통스러울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고향이 현실 속에서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가족의 따뜻함과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막상 되돌아온 고향에서, 꿈속에서 그리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상실감에 젖는다.


그의 다른 시인 “향수”가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을 노래했다면, 정지용 초기 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고향”은 그와 같은 그리움을 안고 막상 찾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모습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상실감으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삶의 양상이 현실 속에서 피폐화된 채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이 시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이 시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구성된 고향의 이미지와 현실의 불일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으로 인해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고향이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설정되었거나, 유년시절처럼 고향을 낭만적으로만 의식할 수 없을 만큼 현실 속에서의 시적 자아의 의식이 황폐화된 데서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시는 변함없는 자연과 인간사의 대비를 통해 고향의 상실감을 간결하고 담담한 어조에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외적 요인에 의한 고향의 변모 양상보다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이미지와 현실적 모습의 차이를 문제 삼은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형태상으로 보면, 1연과 6연의 수미쌍관 구조는, ‘돌아와도 / 울건만 / 웃고 / 돌아와도’의 방임형 어미 계열과 ‘아니려뇨 / 지니지 않고 / 아니나고 / 높푸르구나’의 부정형 어미 계열의 호응구조와 더불어 이 시의 기본적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구조상의 특성으로 인해 고향의 상실감이 자연과의 대비 속에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다.


또한, 이 시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동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해방 직후 유행가로 만들어져 널리 애창되었을 만큼 정지용 특유의 속박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 정지용 시에서의 ‘고향’의 의미


지용의 시에서 고향의 의미는 그 고향의 실재성 유무로 판단할 수 있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는 두 종류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실재의 고향이 아니라 유토피아나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노스탤지어(nostalgia)]이며 다른 하나는 실재의 고향을 그리는 [홈시크니스(homesickness)]이다. 이 중에서 정지용의 ‘향수’는 후자의 예이다. 이 경우에는 현실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환상, 곧 꿈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 향수도 현실이라는 한계를 지킨다.


그런데 문제는 정지용이 강력한 향수 의식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가 현실적으로 어디에 있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면 갈 수 있다. 귀향을 방해하는 조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보다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곧 고향은 실재하나 이미 자기의 고향이 아니라는, 고향 상실 의식에 있는 것이다. 이 시 ‘고향’의 모티프는 바로 이런 고향 상실 의식에서 나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국가 상실이라는 민족 상황이 이런 고향 상실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