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백척오동각기(百尺梧桐閣記)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2:15

백척오동각기(百尺梧桐閣記)

 

 


정당(正堂)에서 서북으로 수십 보를 가면 열두 칸의 폐치된 관사가 나오는데 마루에 난간도 없고 계단에는 섬돌도 없다. 대저 토방을 쌓은 것은 모두 물살에 닳은 돌멩이들인데 계란을 쌓고 바둑알을 포개 놓은 듯하여, 세월이 오래 지남에 따라 절로 무너져서 땅에 가득 울퉁불퉁하니, 비뚤어지고 미끄러워 발을 디디기조차 어렵고, 풀 넝쿨이 엉키고 뱀들마저 서리게 되었다.
이에 날마다 노복을 시켜 벽돌을 걷어치우고 계단을 고르게 함과 동시에, 둥근 돌멩이들은 모두 실어다 내버리게 하고 무너진 벼랑과 갈라진 비탈 사이에서 돌을 골라 오게 했다. 그리고 마치 쪼개진 얼음장이나 깎인 옥돌이나 모난 술잔 같은 돌들이 추녀와 처마 아래 다투어 와서 갖은 재주를 자랑하는 듯하고, 개 이빨이 엇물린 듯, 거북 등이 불에 갈라진 듯, 도자기에 금이 가고 가사(袈裟)를 꿰맨 듯, 볼품 있고 완벽하게 하였더니 먹줄과 칼날을 대지 않아도 완연히 도끼로 쪼갠 것 같았고, 섬돌을 따라 반듯하고 곧아서 모와 각이 분명했다. 이리하여 당에는 제대로 된 층계가, 문 앞에는 제대로 된 뜰이 생기게 되었다.
다시 그 앞 기둥을 걷어 내고 긴 난간을 보완하며 벽도 새로 바르고 지저분한 것은 벗겨 내어, 손님들을 묵게 하고 잔치를 벌일 때 그곳에서 놀고 쉬게 하였다. 100홀(笏) 정도의 뜰에 10궁(弓) 둘레로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가득 심고는 물고기 새끼도 넣어 두었다. 이리하여 들창문을 들어 올리고 달 비치는 기둥에 기대어 맑은 연못을 굽어보노라니, 그윽하고 아득하며 깊고 고요한 가지가지 아름다움이 모두 갖추어졌다.
무릇 늘 먹던 음식도 그릇을 바꾸면 새 맛이 나고 늘 다니던 곳도 주위 환경이 달라지면 마음과 눈에 모두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이곳에 와 구경하는 사람들이 연못은 예전에 없었고 누각만 본래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모두들 “이 누각이 나래 펴듯 연못 위에 솟아난 것 같다.”고 한다.
담 밖에 한 그루 오동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100자쯤 된다. 짙은 오동나무 그늘이 난간에 비치고 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향기를 날려 오면 때로 백로가 나랫짓하며 내려앉으니, 비록 봉황은 아니라도 족히 아름다운 손님이라 하겠다. 드디어 현판을 붙여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이라 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난 것은 싫어하고 둥근 것은 좋아하므로 글자를 써서 글을 만드는 데에도 문득 무너지고 풀어지며 기름지고 미끈하나, 실은 다 아슬아슬하여 계란을 포개 놓은 것 같다. 나는 노복을 시켜 그 글자가 성률에 맞지 않는 것은 다 버리고자 하나 그러면 역시 백지만 남을까 두렵다. 연암은 글자를 쓸 때 삐쭉하건 모나건 비스듬하건 바르건 못 쓰는 것이 없는데, 다만 둥근 것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것을 아래에도 둘 수 없고 동쪽 것을 서쪽으로 옮길 수 없으며, 극히 착잡하면서도 도리어 극히 정제되고, 문리가 찬란하여 저절로 옛 빛이 드러난다.


 

[주D-001]정당(正堂) : 정당(政堂)과 동의어로 정아(政衙)라고도 한다. 수령이 정무를 보는 건물이다.
[주D-002]절로 무너져서 : 원문은 ‘頹圮’인데, 몇몇 이본들에는 ‘頹弛’로 되어 있다.
[주D-003]100홀(笏) : 100자〔尺〕이다. 당(唐) 나라 왕현책(王玄策)이 인도에 사신으로 갔을 때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석실(石室)을 측정했더니 가로세로 10홀(笏)이 되었으므로 그 집을 방장실(方丈室)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장(丈)은 10자이므로, 1홀은 1척이 된다.
[주D-004]10궁(弓) : 1궁(弓)은 영조척(營造尺)으로 5자이므로, 10궁은 50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