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풍죽로당기(荷風竹露堂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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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正堂)의 서쪽 곁채는 다 무너져 가는 곳간으로 마구간, 목욕간과 서로 이어져 있고, 두어 걸음 밖에는 오물과 재를 버려 쌓인 쓰레기 더미가 처마보다도 높이 솟아 있으니, 대개 이곳은 관아의 구석진 땅으로 온갖 더러운 것이 모인 곳이다. 바야흐로 봄이 되어 눈이 녹고 바람이 따스해지자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복들에게 일과를 주어 삼태기와 바지게로 긁어 담아 내게 하여, 열흘 뒤에는 빈 터가 이루어졌는데, 가로는 스물다섯 발에 이르고, 너비는 그 십분의 삼이었다. 떨기나무들을 베어 버리고 잡초를 쳐내고 울퉁불퉁한 곳을 깎아 내어 패인 곳을 메우고, 마구간을 다 옮겨 버리니 터가 더욱 시원해졌고, 좋은 나무들만 골라 줄지어 심어 두니 벌레와 쥐가 멀리 숨어 버렸다. 이에 그 터를 반으로 나누어, 남쪽에는 남지(南池)를 만들고 폐치(廢置)된 창고의 재목을 이용하여 북쪽에 북당(北堂)을 지었다.
당(堂)은 동향으로 지어 가로는 기둥이 넷, 세로는 기둥이 셋이요, 서까래 꼭대기를 모아 상투같이 만들고 호로(胡盧)를 모자처럼 얹었다. 가운데는 연실(燕室 휴식하는 방)을 만들고 잇달아 동방(洞房 침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앞쪽 왼편과 옆쪽 오른편에는 빈 곳은 트인 마루요, 높은 곳은 층루요, 두른 것은 복도요, 밖으로 트인 것은 창문이요, 둥근 것은 통풍창이었다.
그리고 굽은 도랑을 끌어 푸른 울타리를 통과하게 하고, 이끼 낀 뜰에 구획을 나누어 흰 돌을 깔아 놓으니, 그 위를 덮어 흐르는 물이 어리비쳐서 졸졸 소리 낼 때는 그윽한 시내가 되고 부딪치며 흐를 때는 거친 폭포가 되어 남지로 들어간다. 그리고 벽돌을 쌓아 난간을 만들어 못 언덕을 보호하고, 앞에는 긴 담장을 만들어 바깥 뜰과 한계를 짓고, 가운데는 일각문(一角門)을 만들어 정당과 통하게 하고, 남으로 더 나아가 방향을 꺾어 못의 한 모서리에 붙여서 홍예문(虹蜺門)을 가운데 내고 연상각(烟湘閣)이란 작은 누각과 통하게 하였다.
대체로 이 당의 승경은 담장에 있다. 어깨 높이 위로는 다시 두 기왓장을 모아 거꾸로 세우거나 옆으로 눕혀서, 여섯 모로 능화(菱花)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쌍고리처럼 하여 사슬 모양을 만들기도 하였다. 틈이 벌어지게 하면 노전(魯錢 돈)같이 되고 서로 잇대면 설전(薛牋)이 되니, 그 모습이 영롱하고 그윽하다. 그 담 아래는 한 그루 홍도(紅桃), 못가에는 두 그루 늙은 살구나무, 누대 앞에는 한 그루의 꽃 핀 배나무, 당 뒤에는 수만 줄기의 푸른 대, 연못 가운데는 수천 줄기의 연꽃, 뜰 가운데는 열한 뿌리의 파초, 약초밭에는 아홉 뿌리 인삼, 화분에는 한 그루 매화를 두니, 이 당을 나가지 않고도 사계절의 경물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동산을 거닐면 수만 줄기의 대에 구슬이 엉긴 것은 맑은 이슬 내린 새벽이요, 난간에 기대면 수천 줄기의 연꽃이 향기를 날려 보내는 것은 비 갠 뒤 햇빛 나고 바람 부드러운 아침이요,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산란하여 탕건이 절로 숙여지고 눈꺼풀이 무겁다가 파초의 잎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갑자기 개운해지는 것은 시원한 소낙비 내린 낮이요, 아름다운 손님과 함께 누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나무들이 조촐함을 다투는 것은 갠 날의 달이 뜬 저녁이요, 주인이 휘장을 내리고 매화와 함께 여위어 가는 것은 싸락눈 내리는 밤이다. 이것은 또 철에 따라 각 사물에다 흥을 붙이고 하루 동안에 각각의 절경을 발휘하게 한 것이기는 하지만, 저 백성들이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태수가 이 당을 지은 본뜻이겠는가.
아아! 나중에 이 당에 거처하는 이가 아침에 연꽃〔荷〕이 벌어져 향내가 멀리 퍼지는 것을 보면 다사로운 바람〔風〕같이 은혜를 베풀고, 새벽에 대나무〔竹〕가 이슬을 머금어 고르게 젖은 것을 보면 촉촉한 이슬〔露〕같이 두루 선정을 베풀어야 할지니,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당을 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이라 이름 지은 까닭이다. 이로써 뒤에 오는 이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글이 9층의 높은 누대를 짓듯 하여 걷어내고 쌓아 올리기를 이처럼 부지런히 하였으니, 어느 날 아침에 올라가 관람하면 기쁘고 즐거워서, 그 재력(材力 재력(財力))과 공사비로 이미 중인(中人 중산층) 열 집의 재산이 들어갔음을 알지 못한다.
[주D-001]일각문(一角門) : 대문간이 따로 없이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문짝을 단 대문을 이른다.
[주D-002]설전(薛牋) : 소폭의 채색 종이인 설도전(薛濤牋)을 가리킨다.
[주D-003]그 …… 그윽하다 : 원문은 ‘空瓏 窈窕邃夐’인데, ‘’은 아마도 ‘嵌’의 오기인 듯하다. ‘嵌空’은 영롱하다는 뜻이다. ‘窈窕’는 ‘邃夐’과 마찬가지로 그윽하다는 뜻이다.
[주D-004]매화와 함께 여위어 가는 : 원문은 ‘與梅同癯’인데, 매화를 청빈하여 몸이 여윈 신선에 비유해서 ‘구선(癯仙)’이라고도 부른다.
[주D-005]선집(選集) : 《연암집》의 제 1 권과 제 2 권으로 편찬된 《연상각선본》을 가리킨다.
[주D-002]설전(薛牋) : 소폭의 채색 종이인 설도전(薛濤牋)을 가리킨다.
[주D-003]그 …… 그윽하다 : 원문은 ‘空瓏 窈窕邃夐’인데, ‘’은 아마도 ‘嵌’의 오기인 듯하다. ‘嵌空’은 영롱하다는 뜻이다. ‘窈窕’는 ‘邃夐’과 마찬가지로 그윽하다는 뜻이다.
[주D-004]매화와 함께 여위어 가는 : 원문은 ‘與梅同癯’인데, 매화를 청빈하여 몸이 여윈 신선에 비유해서 ‘구선(癯仙)’이라고도 부른다.
[주D-005]선집(選集) : 《연암집》의 제 1 권과 제 2 권으로 편찬된 《연상각선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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