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유수(留守)가 대궐에서 하사받은 귤 두 개를 보내 준 데 감사한 편지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4:35

유수(留守)가 대궐에서 하사받은 귤 두 개를 보내 준 데 감사한 편지

 

 


금란(金蘭)과 같이 절친한 사이라 바야흐로 백열(柏悅)이 몹시 깊었는데, 오두막집에 향기가 진동하니 감사하게도 목노(木奴)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임금님의 은사(恩賜)임을 아는데, 또한 저까지 넘치는 은혜를 입었군요.
저는 어디에서나 즐겁게 지내려 하지만, 객지를 떠돌며 쓰라림만 많이 맛보았지요. 산속에 은거하여 욕심 없이 지내니 어찌 회수(淮水)를 건넌 티가 나는 것을 꺼려하겠습니까만, 경거(璚琚)로써 갚고자 해도 송(頌) 짓는 재주가 모자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연암(燕巖) 한 지역은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려는 뒤늦은 계획에서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유하혜(柳下惠)와 같은 자가 이곳에 이끌려 머물러 있으니 어찌 공손하지 못한 혐의가 없으리오만, 방덕공(龐德公)처럼 밭을 갈면서 남몰래 유안(遺安)의 술책을 본받고 있지요. 주읍(晝邑)에서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늦게나마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삶을 택했다고 하지만, 수레와 육식을 잊기 어려워했던 점을 비루하게 여기고, 고산(孤山)에서 학을 자식 삼고 매화를 아내 삼아 살았다고 하지만, 처자식이 여전히 딸려 있는 셈인 것을 가소롭게 여깁니다.
유상(留相) 합하(閤下)는 문장은 수호(綉虎)와 같다고 일컬어지고 도(道)는 용과 같기를 바라는 분으로서, 직제학이란 화려한 직함으로 새로 세운 규장각의 직무를 오래도록 겸임하고, 웅부(雄府 개성부를 가리킴)를 관할하여 고려의 옛 수도의 장(長)이 잠시 되셨습니다. 도성(都城)을 나고 들 때마다 사람들이 다투어 구경하니 의연히 낙양(洛陽)을 지키던 군실(君實)과 같고, 청정(淸靜)함은 누구에 비할 건가 하면 완연히 제 나라를 다스렸던 개공(蓋公)과 같지요. 촛불 아래에서 시를 쓸 제 몇 번이나 산공(山公)처럼 거마(車馬)로 왕림하셨으며, 반쯤 이지러진 화로에 술을 데울 제 해당(亥唐)의 나물국도 배불리 드셨습니다. - 이하 원문 빠짐 -

 

 謝留守送惠內宣二橘帖

 

契托金蘭。方深柏悅。香動蓬蓽。佳惠木奴。知出恩宣。亦被溢渥。僕隨處爲樂。旅味多酸。林泉忘機。寧嫌渡淮之迹。璚琚思報。媿乏作頌之才。窃惟燕岩一區。鹿門晩計。柳惠援止。詎無不恭之嫌。龐公耕耘。窃效遺安之術。晝邑之安步晩食。陋車肉之難忘。孤山之子鶴妻梅。笑家累之尙在。留相閤下。文稱綉虎。道希猶龍。直提華啣。長帶奎章之新閣。管理雄府。蹔尹高麗之舊都。出入人皆爭觀。依然君實之守洛。淸靜誰與爲比。宛是蓋公之治齊。蠟花題詩。幾枉山公之車騎。羊罏煖酒。亦飽奚唐之菜羹


 



 

[주D-001]금란(金蘭) : 금란지교(金蘭之交)의 줄임말로, 매우 두터운 친교를 뜻한다.
[주D-002]백열(柏悅) : 가까운 친구의 좋은 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유언호(兪彦鎬)가 개성 유수로 부임하게 된 일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주D-003]목노(木奴) : 감귤의 별칭이다. 삼국 시대 오(吳) 나라의 단양 태수(丹陽太守) 이형(李衡)이 감귤 1000그루를 심어 두고는 죽을 때에 아들에게, ‘1000명의 목노(木奴)를 남겼으니 해마다 비단 1000필을 바칠 것’이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三國志 卷48 吳書 孫休傳 裴松之註》
[주D-004]회수(淮水)를 …… 꺼려하겠습니까만 : 회수는 중국 사대강(四大江)의 하나인데, 회수 이남 지역의 귤나무가 회수를 건너 그 이북 지역에 심겨지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설이 있다. 좋지 못한 환경을 만나면 타고난 좋은 자질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D-005]경거(璚琚)로써 갚고자 해도 : 경거는 아름다운 옥과 패옥(佩玉)으로, 상대방의 선물을 받고 답례를 후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시경》 위풍(衛風) 목과(木瓜)에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니, 경거로써 보답하였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고 하였다.
[주D-006]송(頌) 짓는 재주 : 송은 대상을 찬송하기 위해 짓는 운문의 한 종류이다. 굴원(屈原)이 자신의 재주와 덕을 귤나무에 비유하여 노래한 귤송(橘頌 : 《초사》 구장〈九章〉의 한 편)이 있다.
[주D-007]녹문산(鹿門山) : 은사(隱士)가 거처하는 곳을 뜻한다. 후한 때 방덕공(龐德公)이 처자를 거느리고 녹문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08]유하혜(柳下惠)와 …… 없으리오만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는 노(魯) 나라의 대부 유하혜의 처신을 공손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연암은 유하혜의 처신 중에서 특히 “재야에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을 겪어도 근심 걱정하지 않으며 …… 자신을 끌어당겨 머물러 있게 하면 머물러 있었으니〔援而止之而止〕, 끌어당겨 머물러 있게 하면 머물러 있었던 것은 또한 떠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때문이었다.”라고 한 점에 공감하여 그와 같은 표현을 한 듯하다.
[주D-009]유안(遺安)의 술책 : 유안은 자손에게 편안함을 남겨 준다는 뜻이다. 방덕공이 현산(峴山) 남쪽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성시(城市)를 가까이 하지 않자,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찾아와서 “선생은 시골에서 고생하며 지내면서도 벼슬해서 녹봉을 받으려 하지 않으니, 무엇을 자손에게 남겨 주려오?” 하였다. 그러자 방덕공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태로움을 남겨 주는데 나는 유독 편안함을 남겨 주니, 비록 남겨 주는 것이 똑같지는 않으나, 남겨 주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주D-010]주읍(晝邑)에서 …… 여기고 : 주(晝 : ‘획’으로도 읽음)는 전국 시대 제(齊) 나라 도읍 서남쪽에 있는 가까운 고을이다. 《孟子集註 公孫丑下》 제 나라 선왕(宣王)이 은사(隱士) 안촉(顔斶)을 접견했을 때, 안촉은 선비가 왕보다 존귀하다고 주장하며 선비를 잘 대우하도록 선왕을 설득하였다. 이에 공감한 선왕이 안촉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최고의 의식(衣食)과 수레 제공을 약속하니, 안촉은 이를 사절하면서 재야로 돌아가 “늦게나마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을 육식과 맞먹는 것으로 여기고, 느긋하게 걷는 것을 수레와 맞먹는 것으로 여기면서〔晩食以當肉 安步以當車〕” 살겠노라고 하였다. 《戰國策 齊策》 안촉은 다른 문헌에는 ‘왕촉(王蠋)’으로 되어 있는데, 《사기》 권82 전단열전(田單列傳)에 왕촉은 주읍(晝邑)에 사는 어진 선비로 소개되어 있다.
[주D-011]고산(孤山)에서 …… 하지만 : 송(宋) 나라 때 임포(林逋)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장가도 들지 않고 자식도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평생을 살았으므로, 그를 가리켜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았다〔梅妻鶴子〕’고 하였다.
[주D-012]유상(留相) 합하(閤下) : 개성 유수 유언호를 존대하여 부른 말이다. 유상은 유수(留守)를 달리 부른 말이고, 합하는 편지에서 존귀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주D-013]수호(綉虎) : 화려한 시문(詩文)을 민첩하게 짓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지어냈으므로 사람들이 ‘수호’라 불렀던 데서 나온 말로, ‘수’는 수를 놓은 것처럼 화려한 글을, ‘호’는 호랑이처럼 민첩한 솜씨를 뜻한다.
[주D-014]용과 같기를 : 원문은 ‘유룡(猶龍)’인데,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용과 같이 도(道)의 경지가 심오하다는 뜻이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 보고 나서 ‘용과 같다〔猶龍〕’고 감탄했다고 한다. 《史記 卷63 老子列傳》
[주D-015]낙양(洛陽)을 지키던 군실(君實) : 군실은 송 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사마광이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다가 뜻이 맞지 않자 판서경어사대(判西京御史臺)를 자청하여 낙양으로 돌아가서 15년간 그곳에서 머물렀는데, 천하 사람들이 모두 ‘진재상(眞宰相)’이라 하였고, 촌로들도 모두 ‘사마 상공(司馬相公)’이라 불렀으며, 부녀자들도 그가 군실인 줄을 알았다 한다. 《宋史 卷336 司馬光傳》
[주D-016]청정(淸靜)함은 …… 같지요 : 청정은 청정무위(淸靜無爲)라 하여 도가(道家)에서 주장하는 통치술을 말한다. 백성들을 들볶지 않고 정치를 간편하게 행하는 것이다. 한(漢) 나라 혜제(惠帝) 때 제 나라 승상 조참(曹參)이 백성들을 안집(安集)시키고자 도가의 학설에 밝다는 개공(蓋公)을 초빙하니, 개공이 “치도(治道)란 청정함을 귀하게 여기는 법이며,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안정된다.”고 하므로, 그의 말을 따라 제 나라를 다스린 결과 나라가 안집되어 어진 승상이라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54 曹相國世家》
[주D-017]촛불 …… 왕림하셨으며 : 산공(山公)은 진(晉) 나라 때 산도(山濤)의 아들로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정남장군(征南將軍)을 지낸 산간(山簡)을 가리킨다. 산간은 술을 몹시 좋아하여, 정남장군으로 양양(襄陽)을 지킬 때 항상 고양지(高陽池)로 놀러가 배에 실은 술을 다 마신 다음에야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卷43 山濤傳 附》
[주D-018]반쯤 …… 드셨습니다 : 백거이(白居易)의 시 화자권(和自勸)에 “해 저무니 반쯤 이지러진 화로에 뜬숯이 타네.〔日暮半罏麩炭火〕” 하였다. 해당(亥唐)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현인(賢人)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진 나라 평공(平公)이 해당을 몹시 존경하여 그가 집에 들어오라 하면 들어가고, 앉으라고 하면 앉고, 먹으라고 하면 먹어,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배불리 먹지 않은 적이 없으니, 아마도 감히 배불리 먹지 않을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