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서 동짓날 이생(李生)에게 써 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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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라 그 아래 집을 지으니 / 築室燕岩下
바로 화장산(華藏山) 동쪽이로세 / 乃在華藏東
수석에 다다를 땐 지팡이 짚고 / 倚杖臨水石
물거리를 베느라 낫을 찬다오 / 携鎌剪灌叢
기이한 바위는 푸른빛 이슬진 병풍 같고 / 奇巖翠滴屛
그윽한 여울물 소리 궁음(宮音) 곡조로 울리네 / 幽湍響操宮
뜰 안에 심어 논 건 무어냐 하면 / 庭中何所植
복숭아와 대나무 소나무 단풍일세 / 桃竹與松楓
시냇가 푸른 사슴 물을 마시고 / 磵畔飮蒼鹿
섬돌에 꿩이 내려 곡식 쪼누나 / 階除啄華蟲
짚 처마 정교하게 달을 새기고 / 簷茅工鏤月
추녀 끝의 풍경은 바람에 절로 우네 / 楹磬自戞風
해 다 가도 사람은 아니 보이니 / 盡日不見人
적막에 사로잡힌 방지기 신세 / 寂寞守窓櫳
어찌 보면 선정(禪定)에 든 중과도 같고 / 還如僧入定
공곡(空谷)으로 도망간 부처도 같네 / 復似佛逃空
어느 뉘 겨울 해가 짧다고 했나 / 誰謂冬日短
이따금 낮잠 들어 정신이 몽롱하네 / 午睡時矇矓
나를 따르는 이생이 있어 / 相隨有李生
농에 가득 고서를 가지고 왔네 / 古書携滿籠
산전(山田)이라 가을 되어도 곡식이 여물지 않아 / 山田秋不熟
푸성귀나 풋콩으론 배 못 채워 괴롭네 / 蔬菽苦未充
그렇지만 부지런히 외우고 읽어 / 猶然勤誦讀
목이 메도록 웅얼거리네 / 伊吾嗌喉嚨
늙어서 게을러진 나를 깨우쳐 주어 고마운데 / 感君警衰惰
연마하는 너를 깔보다니 부끄럽구나 / 媿我蔑磨礱
양(陽)이 처음 자라나는 이날을 맞아 / 是日値陽至
《대학(大學)》 책 한 권을 끝마쳤다니 / 君讀曾傳終
묻노라 무엇을 네 얻었는고 / 問君何所得
이(理)는 본래 하나라서 서로 통하지 / 一理本相通
성하거나 쇠하는 건 각자 점차적으로 되나니 / 消長各有漸
쌓고 또 쌓아야만 다함 없느니 / 累積乃無窮
겨울 되면 비록 견고해지지만 / 及冬雖貞固
봄이 오면 누그러져 퍼지기 마련 / 至春得發融
빠르지 않은 반면 느리지도 않아 / 不疾亦不舒
총총히 오가는 게 아니고말고 / 來往非怱怱
한 가지 일 제아무리 독차지할 수 있어도 / 一事雖得專
사시(四時)는 제 혼자서 공(功) 못 이루네 / 四時不自功
비하자면 알을 품은 암탉과 같아 / 譬如鷄伏卵
아득한 그 가운데 말없이 되는 법 / 默化窅冥中
미약한 양(陽)은 겨우 실낱 같고 / 微陽僅如線
초승달은 영락없이 활 모양이네 / 初月又似弓
아무리 눈 밝은 이루가 있고 / 雖有離婁明
귀 밝은 사광이 온달지라도 / 復使師曠聰
그 기미를 듣고 보기 어려운 것은 / 其幾難聞覩
혼돈에서 비롯된 갈라짐이기 때문 / 判別肇鴻濛
사사로운 지력(智力) 따위 어찌 용납이 되리 / 寧容智力私
천지조화의 공평함을 예서 보는걸 / 乃見運化公
창의 해그림자 책력(冊曆)을 대신하는데 / 窓晷代曆日
물시계를 시험해서 무엇 하리오 / 何用驗漏筒
네 부디 밝은 덕을 숭상하여라 / 願君崇明德
일신의 효험을 차츰 보게 되리라 / 漸看日新工
[주C-001]이생(李生) : 이본들에는 ‘이현겸(李賢謙)’이라 밝혀져 있다. 정조 2년(1778) 황해도 금천(金川) 연암협(燕巖峽)으로 갓 이거(移居)한 연암은 그전에 잠시 개성(開城) 금학동(琴鶴洞)에 있던 양호맹(梁浩孟)의 별장에 머물면서 개성의 청년 문사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이현겸은 그 지역에서 문학으로 가장 명성이 높던 청년이었다. 연암이 금학동 별장으로부터 연암협으로 돌아오자, 이현겸 등도 따라와 글을 배웠는데, 이 시는 그때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過庭錄 卷1》
[주D-001]부처 : 원문은 ‘佛’인데,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에는 ‘仙’으로 되어 있다.
[주D-002]양(陽)이 처음 자라나는 : 동짓날은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하여,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주D-003]《대학(大學)》 : 원문의 ‘증전(曾傳)’은 증자(曾子)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 것, 곧 《대학》을 가리킨다.
[주D-004]이루(離婁) : 고대 중국에서 눈이 몹시 밝았다는 사람이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아래의 사광(師曠)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유명한 맹인 악사(樂師)로, 역시 《맹자》의 같은 편에 나온다.
[주D-005]일신(日新) : 《대학》에 ‘명덕을 밝히라〔明明德〕’는 말씀에 이어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을 인용하여 “진실로 날로 새롭게 되려면, 나날이 새로 하고, 또 날로 새로이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고 하였다.
[주D-001]부처 : 원문은 ‘佛’인데,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에는 ‘仙’으로 되어 있다.
[주D-002]양(陽)이 처음 자라나는 : 동짓날은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하여,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주D-003]《대학(大學)》 : 원문의 ‘증전(曾傳)’은 증자(曾子)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 것, 곧 《대학》을 가리킨다.
[주D-004]이루(離婁) : 고대 중국에서 눈이 몹시 밝았다는 사람이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아래의 사광(師曠)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유명한 맹인 악사(樂師)로, 역시 《맹자》의 같은 편에 나온다.
[주D-005]일신(日新) : 《대학》에 ‘명덕을 밝히라〔明明德〕’는 말씀에 이어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을 인용하여 “진실로 날로 새롭게 되려면, 나날이 새로 하고, 또 날로 새로이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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