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문종실록]
1. 30년의 세자 생활과 8년의 섭정
세종의 치세 기간은 자그마치 31년 6개월이었다. 세자 향은 세종 즉위 3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29년 동안 왕세자로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기간 중 8년 동안은 세종 대신 섭정을
했기 때문에 세종 치세 후반기는 왕자 향의 치세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왕자 향이 세자에 책봉된 것은 1421년으로 그의 나이 8세 때였다. 그리고 즉위 초부터 각종
질환으로 고생을 한 세종이 병상에 누운 것은 1436년(세종 18년)으로 향의 나이 23세 때였다.
이듬해 세종은 드디어 왕세자에게 서무결재권을 넘겨줄 것을 결심했다. 말하자면 왕세자의
섭정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종은 실질적으로 상왕으로 물러앉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세종은 왕세자의 섭정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더 이상 건강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위 초부터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한 탓에 병은 날로 악화되었고, 병상에 누워야 하는 일이
잦아져 편전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어서 세종이 더 이상 집무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자의 섭정은 신하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로 세자의 섭정이 좌절되자 세종은 별수 없이 업무량을 줄일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실시한 것이 의정부서사제였다.
의정부서사제란 부분적인 내각제를 의미한다. 즉, 육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들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심의한 다음 결론을 내려 왕에게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이는 곧 정도전이 왕도 정치의 표본으로 내세웠던 재상 정치의 일부였다. 조선은
개국 초기에 재상 정치를 정치 이념으로 내걸었으나,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하고 태종으로
등극한 후에는 의정부가 중심이 되는 재상 정치를 폐지하고 왕이 직접 육조를 관장하는
육조직계제를 도입해 왕권을 강화시켰다. 이런 제도는 세종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육조직계제는 왕이 모든 실무를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왕의 업무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잔병이 많았던 세종은 이런 과다한 업무량에 시달려 건강이 악화되었고, 더 이상 육조직계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의정부서사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세종은 업무를 결재할 만큼 건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세종은 5년 후인 1442년에 다시 세자에게 서무결재권을 넘겨줄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발이 다시 거세게 일어났다. 신하들은 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세자로 하여금
정사를 결정하게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세종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자의 섭정 체제를 구축했다.
세종은 우선 세자가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관인 첨사원을 설치하고, 그곳에 첨사, 동첨사
등의 관원을 두었다. 첨사원은 고려 때 동궁의 서무를 관장하는 기관이었던 첨사부 제도를
본뜬 것으로 이는 충렬왕 이후(1276년)에 폐지된 제도였다. 그런데 세종이 이 제도를 임시로
도입한 것은 세자가 섭정을 할 경우 승정원과 편전을 대신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첨사원의 설치와 함께 세자 향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세자의 나이 29세 때였다. 세종은 이
섭정 기간 동안 세자로 하여금 왕처럼 남쪽을 향해 앉아 조회를 받도록 하는 한편, 모든
관원은 뜰 아래에서 신하로 칭하도록 하였고, 또한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모든 서무는
세자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세자 향은 1442년부터 1450년까지 8년간의 섭정을 통해 정치 실무를 익혔고, 여러 가지
치적들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세종 후반기의 정치 치적은 세자 향의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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