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집안은 대대로 가난했다. 벼슬을 못 해서가 아니다. 중종 때의 문신이었던 박소(朴紹) 이후로 집안은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선조들이 대대로 청빈했고 검소했다. 박지원은 이를 자부심으로 여겨 아들들에게 선조들의 검소했던 삶을 전하며 “너희들이 장차 벼슬하여 녹봉을 받는다 할지라도 넉넉하게 살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으니, 청빈이 곧 본분이니라.”고 가르쳤다. 박지원은 한양 서쪽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1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 박필균(朴弼均, 1685 ~ 1760)은 1725년(영조 1)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승지 등을 거쳐, 동의금(同義禁), 경기감사,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집이 낡고 누추하였지만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