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문화제 다녀와서
밀레니엄 문학회원들과 대전에서 출발 강원도 영월로 들어서니 축제가 한창 이었다.
영월 그 중 가장 높은 곳에서 보이는 맑은 계곡 그리고 멋진 산들이 보이는 곳
돌담위에 하늘과 가까운 유난히도 가깝게 느껴지고 밤이면 별들이 각자의 마음을 실어
가을이면 드높은 하늘 아래에선 신비로운 풀벌레 소리에 넓게 탁 트인 숙소인 RIVERTEL 펜션 베란다에 서서 어린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바라봅니다.
청룡포는 유배지답게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서쪽은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
수백 년의 거송들에 둘러싸인 울창한 소나무 숲의 수림지를 따라 들어서니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당시 모습으로 마음을 울렸던 관음송 앞에서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수령이 600여년을 추정케 하는 이 소나무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말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또한, 단종 유배 당시의 모습을 보았으며 단종이 승하하는 날 이 소나무가 오열하였다 하여 관음송이라고 했다.
넓은 주차장과 청령포변에서는 바베큐랑 캠프파이어도 즐길 수 있어 다녀간 모든 사람에겐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을 마음속에 심어가지 않을까....
하늘보다 가까이 볼 수 있는 구름정원에서는 가을밤에 다른 것에는 방해 받지 않고
별을 헤일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이다.
다음날 김삿갓 문학관에 들어서니 왠걸 큼직한 김삿갓 상이 앞에 버티고 서있지 않는가.
전시 실안에 들어서니 시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일행은 처음으로 들어가자마자 웃음보가 터졌다.
전시관에 있는 목상이나 그림들은 웬지
내 상상 속에서는 약간 모 가수같은 인상을 풍기던 김삿갓님은 저 멀리 사라지고 .....
그래도 역시 친필을 보니 .. 좋긴 좋다.
김삿갓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생애에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삿갓 묘역과 이곳 유적지를 발견한 사람에 대한 자세한 일화
김삿갓 시인의 작품들을 꽤 많이 알아 볼 수 있도록 굉장히 잘 되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는 곳
김삿갓의 시들을 보면,
대부분 여자이야기, 쫓겨난 이야기, 남을 웃기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내 눈 길을 끈 시는 서당욕설시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을 하며 내쫓는다.
화가 치민 김삿갓이 더러운 욕설시를 한 수 써 붙이고 나온다.
書堂來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찾아와 보지도 않네.
그런데 욕할 때 쓰는 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최 측에서 주는 삿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괴나리봇짐 등에 이고 지팡이를 잡으니 영락없는
떠돌이 삿갓이 아니겠는가...
김삿갓 생가에 올라가는 계곡을 따라 여긴 영월 땅 개울 건너편에는 단양 땅 생가까지 가는데 아홉 번의 도경계를 넘나들어야 올 수 있었다.
생가에 도착하니 그곳에 계시는 분이 후손인가 했더니 직원으로 김삿갓 생애에 설명도 하고 여기가 국내 십승지의 하나로 강원영월 충북단양 경북영주가 만나는 곳 이란다.
난고 김삿갓의 생애에 대해들은 것 간단히 적어본다.
안동김씨의 시조인 고려개국공신 선령의 후예로 순조7년(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부 만근과 모 함평 이씨 사이에 둘째로 출생. 본명은 병언이고 호는 난고
순조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부인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으면서 홍경래에게 항복하고 역적으로 몰려 멸족의 위기에 처하여 가족들이 오지인 영월 땅으로 옮겨와 피난생활을 하였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모친 함평이씨는 자식에게 조부의 사연을 감추고 글을 가르쳤으며 20세 되던 해에 영월 동헌에서 백일장에 응시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급제 하시고
그런 후에 이곳으로 피난 온 것이 어머니에게서 역적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고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어 삿갓을 쓰고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시를 읊으며 평생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단다.
1863년 전남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 곳에 묘를 썼으며 삼년 후 둘째아들 익균이 지금의 묘로 옮겨 모셔왔다고 합니다.
산과 산이 뒤엉켜 대화라도 나누는 듯 가는 곳 어느 곳을 가도 산과 더불어 있는 나무들이 작은 수다를 떤다. 살아있는 그 느낌 그대로...
인생을 비유하면서 고개를 빼놓을 수 없다. 삶이 고개를 넘는 것과 비슷하다는 연유에서 이리라. 그래서 일까? 고개에는 사람들의 눈물과 한, 그리고 삶의 흔적들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소나무들과 우르르 둘러선 낙엽송에는 따사로운 가을빛이 내려앉아 선선한 바람만이 길을 따라 나선다.
영월의 동강 물줄기는 나를... 옹졸하게 만들었다.
또한, 영월 땅은...
붉은 빛깔이었다.
아...
좋다...
언제 봐도 자연의 경관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영월의 하늘
구름이 비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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