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중세기전기문학 제 2기
문벌귀족
성종 이후 유교적 통치 질서가 강화되면서 호족 출신으로 중앙관료가 된 세력과 신라 6두품 계열의 문인 학자들이 핵심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중서문하성과 중추원 등의 고위 관직에 등용되면서, 음서와 공음전 등을 통해 자기네 집안의 특권을 유지시켜 나갔다. 이렇게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바탕으로 한 이들을 문벌귀족이라 칭한다. 이들은 문벌귀족들과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맺거나 나아가 왕실과 혼인하여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문벌 귀족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왕들도 문벌귀족들의 세력을 강해지는 것을 막고자 측근세력을 기용하면서 정치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문벌귀족은 정치적으로 공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이전 시기부터 한문학의 수혜를 입어 한문학적 소양을 깊이 있게 갖추었기 때문에 한문학의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이 고려후기 무신세력이나 친원파를 비롯한 권문세족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수이전
고려 문종 때 문인 박인량(朴寅亮)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문설화집. 지은이를 최치원(崔致遠)이나 김척명(金陟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명칭도 <고본수이전(古本殊異傳)>,<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전해지는 10여 편은 고승의 전기나 국조신화(國祖神話) 및 귀신지괴(鬼神志怪)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해지는 것을 보면 <원광법사전(圓光法師傳)> <아도전(阿道傳)> <탈해(脫解)> <화왕(花王)>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 <보개(寶開)> <최치원(崔致遠)> <수삽석남(首揷石枏)> <죽통미녀(竹筒美女)> <노옹화구(老翁化狗)> <선녀홍대(仙女紅袋)> <호원(虎願)> <심화요탑(心化繞塔)> 등이 있고,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등에 수록되어 있다.
과거제
과거제도는 유교를 국가의 지도이념 내지는 실천윤리로 삼았던 나라에서 주로 유교경전의 시험을 통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이와 같은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천자가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실시한 것으로서 수·당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비롯된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광종 때였다. 광종은 고려 초기 왕권을 위협하던 호족 출신의 공신세력(武俠的功臣勢力)을 배제하고, 새로이 유교적 소양을 갖춘 문신관료 중심의 문치적 관료체제(文治的官僚體制)를 갖추려고 하였다. 이에 따라 958년 중국 후주(後周)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의해서 과거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의 관료선발제도로서 정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크게 제술과(製述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로 구분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술과와 명경과는 조선의 문과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합격하면 문관이 될 수 있었기에 가장 중요시되어 흔히 양대업(兩大業)이라 하였다. 제술과는 처음에는 시(詩)·부(賦)·송(頌)·시무책(時務策)이 주요 시험과목으로서 때에 따라 취사되었으나, 1004년(목종 7) 삼장연권법(三場連卷法:初場에 합격해야 中場에, 중장에 합격해야 終場에 응시할 수 있는 시험제도)의 시행과 함께 초장에 경의(經義), 중장에 시·부, 종장에 시무책을 시험보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초·중·종장의 시험 과목은 시대에 따라 자주 바뀌었다. 명경과는 제술과와 달리 ≪상서 尙書≫·≪주역 周易≫·≪모시 毛詩≫·≪춘추 春秋≫·≪예기 禮記≫가 시험 과목으로서, 그 내용을 읽고 뜻이 통하는지를 시험하였다. 그런데 고려시대는 한·당유학(漢唐儒學)의 영향으로 경학(經學)보다 사장(詞章)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양대업 가운데서도 제술업이 더욱 중요시되었다.
1. 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
* 건국신화의 재현
1, 시대상황과 건국신화의 출현 배경
(지방 호족의 독자적 통치력의 구축. 후삼국시대(견원, 궁예). 신라 육두품 출신들과
신흥 세력의 결합)--->(설화--신라에 맞서는 세력들의 민중 영웅화에 이용)--> (건국신 화--건국의 유래와 전당성을 입증하는데 필요. # 민중영웅의 전설과 건국신화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이야기에 그침, 신화의 시대가 이미 끝남)
2. 이 시기의 신화
1) 견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미천하면서도 비범하다는 이중성이 견훤을 영웅으로 부각시킴
2) 궁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
고귀한 혈통 강조, 비정상적인 출생, 시련을 투쟁으로 극복하고 승리자가 된다는 서사구조를 지님. 자신이 미륵불임을 자칭,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민심을 이용,
신화를 조작함
* 고려의 건국신화
; 조상의 내력과 자취를 이야기에 올려 신화적 유래를 자랑
; 선조들만 신화의 주인공으로 삼음(건국신화의 위광과 합리적 통치의 설득력을 갖게 함)
; 왕건의 투쟁과 승리는 역사의 영역에 남게 함
* 왕실 혈통의 설화
1. 시대 상황
; 태조 왕건 사후에도 통일은 불완전하였고 왕권은 안정되지 못하였음.
; 호족의 우두머리의 변란 : 왕규의 난
; 왕위쟁탈 사건
2. 고려의 설화
1) 현종과 관련된 설화
; 고귀한 혈통이나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불운의 주인공이 될 조짐이 보임
; 현종의 어머니 황보씨가 꾼 오줌이 온 나라에 넘치는 꿈 : 황보씨가 낳은 아들이 임금이 될 것이라 함
; 현종이 쫓겨가 있던 절의 스님 꾼, 별이 용이 되고 사람이 되는 꿈
2) 공민왕과 관련된 설화 :<고려사>에 실감나게 서술
3, 혈통신화의 고려
; 건국신화로 시작해서 망국신화로 끝남. 그러나 반대가 되는 양쪽 신화에서 왕족의
혈통은 신성하다고 하는 것이 공통된 요소를 이루었음.
; 왕건은 신성한 혈통을 유지하려고 자녀들이 부부가 되도록 하는 특단의 조처를
하기까지 했지만 왕비가 외간남자와 관계하는 데까지 이르러서 혈통이 아주
더럽혀져서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
; 조선왕조에서는 왕족의 혈통이 신성하다고 하지 않았고, 동성불혼의 원칙을
왕족에게도 철저하게 적용했음.
2. 향가의 전통과 그 행방
* 고려 전기의 향가
1, 균여(923-973)
;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황해도 황주 사람
; 화엄종의 종단을 통일하고 광종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념수립을 담당
; 고려 전기 향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보현시원가> 열 한 수를 지음
2, 고려의 지배층과 불교
(서라벌의 전통을 이은 문신귀족, 신라 육두품 출시, 문화창조를 주도. 왕권강화의 이념을 제공하는 화엄종 같을 교종의 역할이 커짐--> 균여)<--------> (신라의 지방호족 세력,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 지방호족 세력과 밀착된 선종, 신라의 질서를 해체 새 시대를 염)
3, 한시와 향가의 공존
한시 |
향가 |
중세의 보편주의 구현 |
민족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줌 |
귀족 상호간의 정감 전달방식 |
귀족과 민중 사이의 정감 전달방식 |
향가는 지속되다가 중세 후기(고려후기)에 시조의 시대가 열리며 다시 한시와 우리말 노래 사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됨 |
4, 고려 전기 대표적인 향가 작품
1) 균여의 <보현시원가>
; 서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불교적인 교화를 표방하는 쪽으로 기움
; 귀족 불교를 이룩함과 동시에 교리를 펴서 하층에 접근하고자 함
; <보현시원가>는 최행귀의 한역시와 함께 전함
2) 예조의 <도이장가>
; 넉 줄 향가의 모습, 전, 후반부가 나누어져 있는 민요에 접근한 형태
; 팔관회때 신승겸, 김낙을 기리는 행사를 보다가 슬픔에 잠기며 감격해 두 공신의
후예를 묻고, 한시와 함께 향가를 지었음.
; <평산신씨고려태사장절공유사>,약칭 <장절공유사>에 그 내력과 지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음
3) 정서의 <정과정곡>
; 사뇌가와 거의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후대의 국문표기 전할 뿐임
; <고려사>악지에서는 노래를 지은 연유를 소개, 이제현이 소악부에서 한역한 것을 실음
; <정과정곡>은 사뇌가의 잔존형태였음.
; 충신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이해되어 조선시대의 연군지사의 맥을 이음
; 예종의 벌곡조
3. 불교문학의 방향 모색
* 고려 전기 불교의 판도
; 분열된 불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지속됨--> 광종, 의천
; 불교 통합 운동의 한계 : 귀족불교와 민중불교를 아우르자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함
* 제관, 의천, 계응, 혜소
4. 과거제 실시와 한문학
* 고려 한문학의 출발점
1) 최언위(868-944)
; 신라 육두품 출신의 문인,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 왕건을 도와 고려문학을 일으킴
; 광종과 함께 과거제를 실시하는 등 광범위한 개혁을 진행
2, 최응(898-9320
; 궁예 밑에서 벼슬하던 태봉 계통의 문인, 최언위와 함께 건국의 이념을 수립
; 왕건이 개경에 칠층탑을 세우자 최응이 <통삼한위일가발원소>을 지음
3) 왕건
; 오늘날의 논산 지방에 개태사를 창건하고 발원문을 지음, <보한집> 서두에 전함
; 통치이념을 확고하게 하고 나라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자 <정계>, <계백료서>같은 지침을 펴내고, 유언을 받아쓰게 해서 <훈요십조>라는 것을 남기기도 했음.
; 중세적 보편주의와 민족문화의 관계에 대해 깊이 유의
(고향에 따라 사람 성품도 한결같지 않다고 말하고 민족문화의 독자성을 개발 할 수 있는 방향 제시함)
* 과거제 실시
1, 광종의 과감한 개혁
; 노비를 다수 양민으로 되돌려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킴
; 과거제를 실시해서 중앙정부를 위해 일할 새로운 인재 등요의 길을 염
2, 과거제의 의의
; 중앙 정부 강화에 필요한 인재의 등용과 지배층의 재구성
; 양인이라면 누구나 --> 중세주의가 제도 수립을 통해 재확인됨
; 문학을 통해 능력을 평가 --> 문학의 사회적 지위를 제고시킴. 시와 부, 즉 율문
우위의 중세적 문학관을 드러냄
* 한문학 발전을 위한 제도
; 성종의 국자감 설치, 월과법 실시
; 문종 때의 사학의 융성 --> 관학의 부실 초래, 문벌귀족의 득세가 왕권을 약하게 함
; 예종의 관학 강화 --> 칠재를 둠, 무예 전문 교육기관의 설치 귀족지배사회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관학 강화에 실패, 결국 한문학은 창의력 고갈, 내용 상실에 이름
* 주요 문인들
1, 조익
; 광종 때 여덟 번의 과거 중 네 번째 과거의 지공거를 맡음, 조송을 지어 광종을
찬양한 글이 <보한집>에 전함
2, 최승로
; <동문선>에 실린 <상시무서>라는 글을 지음.
( 내용을 드러내 <시무이십팔조>라고 함.
임금의 바른 도리를 조목조목 갖우어서 제시한 최초의 글이며 합리적인 통치방안을
강구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유학의 정치이념을 제시)
; 문화의 이중구조의 조화를 강조 --> 중국의 전례를 따르는 것의 한계를 지적
3, 현종
; 어려서 중노릇을 할 때 지었다는 시 두 편이 <고려사> 본문에 전함. 시냇물과 뱀을 발견하고 지었음
4, 최충(984-1068)
; 20세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차례 지공거를 역임했으며, 최고관직에 이름
; 문학의 도리뿐만 아니라 문학에 힘써서 영달해야 함을 가훈으로 삼음
5, 박인량(?-1096)
; 요나라 당나라 사이의 외교상의 문제를 국서를 힘써 지어 해결
; 송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대단한 평가를 받음--> <소화집>을 펴냄
5. 설화와 역사 사이
* 이념정립의 대립 양상과 설화
1, 설화의 배제
; 화엄종, 천태종과 같은 이론불교가 초경험적인 영역에 대한 상상을 허용하지 않음
; 유학에 입각한 합리주의가 설화를 허용치 않음
; 고려의 통치체제의 확립과 이념의 정립
; 명분과 도리를 갖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함
2, 설화의 흔적
; 기존체제에 불만이 있는 상층은 하층의 민간전승과 관련있는 설화를 이용, 민족의식을 높이고자 하였음
; 동신사의 동신성모
; 설화에 가까운 역사를 취급한 설화, 역사집의 편찬
(-<삼국사>가 <삼국사기>로 개작)
(-박인량은 <수이전>을 편찬하거나 다듬었음)
(-<고금록>을 지어 비밀스러운 곳에 간직)
(-김인존은 음양, 풍수지리 등에 관한 자료를 모아 <해동비록>을 지음)
* 위대한 인물의 탄생
@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가 신화적 요소를 지닌 영웅전설의 모습을 갖춤
-----> 민간영웅을 희구하는 전통이 특정인물과 결부된 것으로 여겨짐
1) 최응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오이줄기에 참회가 맺혔다고 하는 이야기
2) 균여의 탄생설화 ( 고려에 들어와서는 고승을 주인공으로 삼은 설화를 찾아보기
어려움)
3) <보한집>과 <고려사>에 전하는 강감찬 이야기
* <가락국기>
; <삼국유사>를 일연이 편찬하면서 문종 시절 김해지방 수령을 있던 문인이 지은 것의 개요를 수록했다고 서두에 밝힘.
; 역사서이나 문화의 총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
* <수이전>
; 신라시대에 편찬한 설화집.
편찬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함 (최치원설, 박인량설 등)
; <해동고승전>에서 <대동운부군옥>에 이르기까지 여러 책에서 <수이전>을 인용함.
남은 자료를 다 모아보면 모두 13편임.
;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한계를 깨고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전하는
이야기들을 모았음
* <삼국사기>
; 설화와 역사를 구별, 설화를 역사를 위한 자료로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이용
; 높은 수준의 역사의식과 대단한 문장력을 보여줌, 격식을 갖춘 고문이 정착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듬
; 사실기술보다는 민간전승까지 끌어들인 설화적 기술인 열전 ( 김유신전, 을지문덕,
박제상, 온달전, 설씨녀, 도미 등)
6. 고려 전기 귀족문학의 결산
* 예종 시절의 풍류
; 시를 화창하고 풍류를 즐김
--> 문제는 파악했으나 해결은 하지 못하는 고민의 발산이라고 할 수 있음
; 관인의 문학이 아닌 처사의 문학을 동경
; 노장 사상을 숭상, 선종에 호감을 가졌으며 불교를 도교로 대치하고자 함
; 이규보는 예종이 신화들과 주고받던 작품을 받아 예조창화집을 편찬함
; 은거와 도피의 문학
---> 이자현(1061-125)의 <낙도음>
* 동조자와 비판자
1) 박호
; 1100년 (숙종 5)에 과거에 급제하고 예종 때 학사 노릇을 함
; <동문선>에 시 2편과 문 19편이 실려 있음. 하례하는 대표글로는 <하팔관회표>가 있음
2) 권적 (1094-146)
; 태조 때 공을 세운 공신의 후예, 송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1117년(에종 12)에 귀국
; 송나라에 가면서 지은 <조송로상기제우>가 있음
3) 최약
; 문벌귀족의 득세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다고 경고, 예종더러 놀이만 일삼지 말고
위기를 인식하라고 함
; 경전과 역사를 깊이 탐구한 바를 근거를 삼아 밖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을
찾고 안으로 순수하고 올바른 마음을 찾는 문학관을 제시
4) 정극영(1067-127)
; <고려사>와 <동문선>에 예조에게 올린 <청연방조신표>가 수록되어 있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어진 신하를 찾아서 맞이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음
( 섶을 쌓은 곳 밑에다 불을 놓고 그 위에서 자면서 아직은 타오르지 않으니 편안하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병이 들었으면서도 찾아낼 의원이 없으니 나중에는 고질이 되더라도 우선은 알 수 없습니다.)
@ 문벌귀족이 지배하는 고려사회는 수많은 모순이 누적되어 그대로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무신란이 일어나 중세 전기사회가 중세 후기사회로 개편된 것이 필연적 추세였다.
*격동의 상황
개경파 서경파 | ||||
|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문벌귀족 세력 신라 정통론, 귀족불교와 유학 |
|
서경을 기반으로 한 신진세력 고구려 정통론, 민중불교 |
|
서경천도운동 |
1, 중간자의 입장
1) 이지저(1092-145)
; 이자겸이 득세했을 때에는 오히려 미움을 받아 좌천되었다가, 이자겸이 망한
다음에 다시 발탁됨
; 인종의 서경 거동에 동행해 구호와 치어를 여럿 지었음
2) 윤언이(?-1149)
; 서경파의 칭제건원에 동조했다가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김부식을 도와 공을 세웠음
; 윤언이는 이자겸의 난이 끝난 다음에 정지상과 함께 인종에게 정치개혁을 진언하면서 서경천도파의 노선에 동조
;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개경파에 가담,
김부식의 막료로 출전해서 현지에서 공을 세웠으나 김부식은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음
3) 정지상(?-1135)
; 예종 때에 과거에 급제해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면서 서경 출신의 기대를 모았음
; 서경천도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 묘청과 그 일을 주도
; 정지상은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마침 개경에 머무르고 있다가 김부식 일파에게 참살됨
; 김부식은 문학창작에서 고답적인 규범을 수립하고자 했다면, 정지상은 향토의 정서를 살리면서 절실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을 구사하는 데 막힘이 없었음
; <서도>라는 칠언절구에서는 거리는 번화하고 집에는 푸른 창과 붉은 문이 달려
있다고 하면서, 거기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흐느긴다고 함 . 서경의 경제력이며
인재며 모두 개경을 위해서 동원되는 데 대한 불만을 나타냄
; 격식이 까다로워 짓기 어려운 한시를 짓느라고 나타내야 할 절실한 체험이나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는 당시 관습에 대해서 반발함 --> <송인>
* 무신란 직전의 상황
1, 1170년(의종 24) 무신란
; 인종의 아들 의종이 왕위를 계승
-- 의종은 방탕한 놀이를 일삼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집권층 내부에서도 불만이 거세게 일어남
; 내시의 득세
2, 정습명(?-1151)
; 의종의 잘못을 거침없이 간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고 마침내 자결하였다.
; 남긴 시문이 몇 편 <동문선>에 전하는데 그 가운데 <석죽화>가 유명함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 세상사람들이야 붉은 모란 좋다고들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 심어서 뜰을 가득하게 하지만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 누가 알리 거친 풀 벌판에도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 또한 좋은 꽃포기가 있는 줄을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 빛은 마을 연못 달에 스며들고
香傳?樹風(향전롱수풍) : 향기는 언덕 나무 바람에 풍기네
地僻公子少(지벽공자소) : 궁벽한 땅이라 귀공자가 적으니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아름다운 모습 농사짓는 늙은이 것이구나
3, 신숙(?-1160)
; 내시의 득세에 대해 간하며 처음 보는 변괴 때문에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한다 하고,
말이 옳지 못하면 차라이 자기를 죽이라고 함
4, 최유청(1093-1174)
; 문의 위세를 배경으로 놓은 지위를 누리면서도 횡포를 저지르는 데는 가담하지 않음
-- 무신란이 일으킨 장수들이 문신을 숙청할 때 최유청의 덕망에 평소부터 감복한 바
있어서 그 집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후일담이 전함
; <우서>라는 시가 전해짐
'국문학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문학의 역사 교재 개편에 따른 강의에 대하여 (0) | 2012.06.10 |
---|---|
국문학의 역사 출시 (0) | 2012.06.10 |
2011년 기출문제 (0) | 2012.06.06 |
국문학사 방송강의 15강 내용입니다 (0) | 2012.06.02 |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1)한눈에 들어오는 강의, 교재 요약본 (0) | 2012.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