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밀양(密陽)의 의옥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19. 12:47

밀양(密陽)의 의옥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

  

 


밀양부(密陽府)의 통인(通引) 윤양준(尹良俊)이 중 돈수(頓守)를 치사한 사건에 대하여 초검 및 복검이 모두 매를 맞은 것으로 실인을 삼았는데, 이 옥사는 시친(屍親)의 고발이 없는 이상, 법리로 따져 보면 관에서 지레 검시한 것은 벌써 옥사의 체통에 어긋난 것입니다. 다만 절의 중이 유리(由吏)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두서없이 돈수의 일을 언급했는데 거기에,
“지난번 돈수가 통인청(通引廳)에서 형벌로부터 풀려날 때 절곤(折困)을 당하여 그로 인해 병사했으니 이런 견해가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라고 했다는 말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 말이 아주 모호하기는 하지만 ‘절곤(折困)’이란 두 글자는 극히 수상합니다. 더구나 그 사단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관속(官屬)에게서 일어난 일이므로, ‘병사했다’는 대목은 미처 자상히 살펴보지도 않고 먼저 ‘절곤’이란 말에만 마음이 동요했던 것입니다. 뒤이어, 혐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바로 가서 초검을 시행한 것인데, 급기야 본 사건을 규명해 보니 몇 대의 태형(笞刑)으로 위엄을 보인 데 지나지 않았은즉, ‘절곤’ 두 글자는 저절로 허망한 고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초에 이 ‘절곤’이란 말로 인해서 검험을 했던 것이나 끝내 그 말뜻을 알 수 없었으며, 매 맞은 자국밖에 다른 상처나 병환의 증거를 찾아보았으나 늘 실상에 들어맞지 않은 듯하였으며, 끝까지 조사하려고 해도 더 이상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왕좌왕 옥사가 이루어지고 꼭 맺혀 풀리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릇 타박상을 입어 목숨을 잃은 경우는 반드시 행흉(行凶)한 기장(器仗 도구)이 있기 마련이니, 행흉한 기장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내면 이 옥사가 당장에 해결될 것입니다. 하관(下官 연암 자신을 가리킴)의 얕은 소견으로는 ‘절곤’ 두 글자는 바로 ‘결곤(決棍)’의 오기인 듯합니다. 결곤이건 결태(決笞)건 볼기를 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다지 용처(用處)의 경중을 따질 것이 못 됩니다. ‘결(決)’을 ‘절(折)’로 바꾸어 발음하는 것은 상놈들의 통폐요, ‘곤(棍)’을 ‘곤(困)’으로 잘못 기록한 것은 무식한 소치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보는 자의 선입견이 절납(折拉 부러뜨림)의 ‘절(折)’ 자에 놀라고, 곤박(困迫 곤욕을 보임)의 ‘곤(困)’ 자에 더욱 현혹된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 통인들이 다 같이 했다고 나서자 주범과 종범을 분별하기 어렵게 되니, 마치 힘을 모아 함께 두들겨 패서 낭자하게 상처를 입힌 일이 있는 것처럼 되었으며, 뭇 중놈들이 일제히 병을 앓았다고 칭하여 증언들이 덩달아 똑같고 보면, 그들이 관속을 두려워하여 숙의한 끝에 입을 맞춘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에 전후의 검관들이 감히 그 정상을 경솔히 논하지 못한 것이요, 여러 해를 두고 결말을 못 지은 것도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다만 옥사의 진상을 들어 판단한다면 15대의 태형으로 어찌 목숨을 잃을 리가 있으며, 더욱이 두서너 곳의 상처도 급소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개 각 고을의 통인들이 종이 자르는 판자를 장척(長尺)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그놈들 두목이 항용 쓰는 볼기 치는 막대인즉, 통인들이 이것으로써 벌을 시행하는데 더러는 속여서 ‘태(笞)’라고도 합니다. 중들이 이 장척을 잘못 보고서 혹시 ‘곤(棍)’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는 것이니, 상식적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검관이 된 사람들은 마땅히 먼저 그 ‘절곤’이 무슨 말인가를 신문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결곤’의 오기였다면, 또한 마땅히 그것이 과연 곤장(棍杖)이었는지 태장(笞杖)이었는지를 자상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곤’이 아니고 ‘태’라 말한다면, 또한 마땅히 그 크기가 어떤 종류인가를 자상히 분별하여, 매를 맞은 자국과 대조해 본다면 판자에 맞은 흔적인지 태를 맞은 흔적인지를 그 자리에서 저절로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태형의 여부와 병환의 진위(眞僞)도 따라서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진술들을 참조하고 검증해 보면, ‘조갈증이 나서 물을 찾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돌에 부딪쳤다’느니 ‘방을 되게 달구어 땀을 내느라 이렇게 짓무르게 되었다’느니 하였는데, 열병으로 미친 증상이 생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요, 달군 구들에 살이 데어 부풀어 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실인으로 단지 매 맞은 것만을 장부에 기록한다면 옥사의 체통이 서지 못할 것이며, 원범을 유독 수번(首番)에게만 뒤집어씌운다면 더욱 원통한 죄가 될 것입니다. 재량하소서.

진상을 깊이 파고들었다.

 

252_033a密陽府通引尹良俊致死僧頓守。而初檢及覆檢。俱以被打爲實因。此獄旣無屍親之發告。則揆以法意。自官徑檢。已違獄軆。而第緣寺僧所抵由吏書末。漫及頓守事。有曰。頃日頓守通引廳解罰時折困。因爲病故。此意知之。其所爲說。雖甚未瑩折困二字。極涉殊常。且其事端雖微。起自官屬。則未及看詳於病故。先自動心於折困。繼又遠謙。卽行初檢。而及究本事。不過略施笞警。則折困二字。自歸妄告。初旣因此檢驗。而終亦莫曉其語。笞痕之外。別求他傷染疾之證。常若非情欲爲窮覈。更無摸捉。所以轉輾成獄。結而不解者此也。凡係被打致命。必有行凶器仗。行凶器仗。先辨其名。則此獄立判矣。以下官淺見。折困二字。似是决棍之誤也。决棍决笞。同是打臂。則不甚分別於用處之輕重。而折決易音。常漢之通患。困棍誤書。無識之所致。遂令觀者。驟駭于折拉之折。而滋惑于困迫之困。至於諸通引之甘受同罪。首從難別。則有似乎奮力252_033b共打。狼藉致傷。衆僧徒之齊稱染疾。詞證雷同。則無恠其怵畏官屬。爛熳和應。此前後檢官之所以不敢輕議其情跡。而歷歲未決。職由於此。直以獄情斷之。則十五度之笞罰。寧有致命之理。數三處之痕損。况非要害之地乎。大抵列邑通引剪紙之板。號爲長尺。乃是渠輩頭目。行用臀杖。則通引之以此施罰。而或諱爲笞。僧徒之誤看長尺。而或認爲棍。求之常理。不甚相遠。爲檢官者。當先訊其折困之何語。果是决棍之誤。則且當詳辨其棍笞之間。果是何杖。若曰。非棍而笞。則且當詳辨其大小之何樣。以驗其受杖之處。則板痕笞跡。自可立辨。夫然後笞警與否。染疾眞僞。從可推知矣。參證諸供之。有曰。煩躁索水。墜階觸石也。有曰。過炊取汗。致此爛傷也。熱病顚狂。理或無恠。煖堗泡腫。不是異事。今此實因之。但以被打懸錄。不成獄軆。元犯之獨以首番勒歸。尤涉寃枉。伏惟裁量。
252_033c切事近情。


 


 

[주C-001]밀양(密陽)의 …… 답함 :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이전(吏典) 어중조(馭衆條)에 이 편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지통통인(紙筒通引)이 절에서 매달 만들어 바치는 지물(紙物)을 퇴짜 놓는 것으로 위세를 부리니 불가불 단속해야 한다면서, 산청현(山淸縣)의 수통인(首通引)이 지장(紙匠) 승려를 곤장 쳐 죽였으나 검안(檢案)에 ‘결곤(決棍)’이 ‘절곤(折困)’으로 잘못 기록되는 바람에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옥사를 연암이 마침내 해결했다고 하였다.
[주D-001]유리(由吏) : 수령의 해유(解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아전, 즉 지방 고을의 이방 아전을 이른다.
[주D-002]결곤이건 결태(決笞)건 : 조선 시대의 형(刑)에는 죄의 경중과 형구(刑具)에 따라 태형(笞刑), 장형(杖刑), 곤형(棍刑)의 세 종류가 있었다. 결곤은 가장 가혹한 곤형을 가하는 것이고 결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태형을 가하는 것이다.
[주D-003]결(決)을 …… 소치입니다 : 원문은 ‘折決易音 常漢之通患 困棍誤書 無識之所致’인데, 《목민심서》 이전 어중조(馭衆條)에 인용된 구절은 ‘決折通音 常漢之依例 棍困誤讀 無識之所致’로 되어 있다.
[주D-004]수번(首番) : 《목민심서》 이전 어중조의 내용으로 미루어, 통인의 우두머리인 수통인(首通引)을 가리키는 듯하다. 통인의 임무 중의 하나는 당직을 서는 수번(守番)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