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咸陽) 장수원(張水元)의 의옥(疑獄)에 대해 순찰사에게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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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사람 장수원이 한조롱(韓鳥籠)이란 계집을 치사한 사건에 있어 초검과 복검이 모두 스스로 물에 빠진 것으로 실인을 삼았으나, 조서를 반복하여 살펴보고 그 정실(情實)을 참작해 보면, 조롱이 수원에게 위협과 핍박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처녀의 몸으로 남의 곁방살이를 하는 처지라, 비록 몹시 부끄럽고 분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형편이 너무나 궁하여 어디 갈 곳조차 없는지라 저 맑고 깨끗한 못만이 그녀의 몸을 깨끗이 보존할 만한 곳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수원이 드잡이하여 밀어 넣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순결을 지키는 처녀로 하여금 이렇게 물에 빠져 죽는 원한을 품게 만든 것이 그놈이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까! 그 정상을 추궁해 가면 그놈이 어떻게 제 목숨을 내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후 진술에서 그 말이 여러 번 변했으니 이는 교활하고 완악한 습성이 그 강포한 자취를 은폐하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강간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곁방의 처녀가 무엇 때문에 끌려갔겠으며, 제 놈이 끌어가지 않았으면 조롱의 머리털이 어찌하여 뽑혔겠으며, 지극히 분통한 일이 아니라면 뽑힌 머리털을 무엇 때문에 꼭 간직해 두었겠습니까. 이 한 줌의 머리털을 남겨 어린 남동생에게 울며 부탁한 것은 한편으로는 그날에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자는 것이요, 또 한편으로는 죽은 뒤에라도 원한을 씻을 자료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른바 ‘이를 잡다가 유혹하고, 길쌈을 하다 말고 유혹했다’거나 ‘호미를 전해 주러 왔다가 싸우고, 버선을 잃어 버려 싸웠다’고 한 진술들은 이 옥사에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수원이 강포한 짓을 한 증거물은 오직 이 머리털이요, 조롱이 죽도록 항거한 자취도 오직 이 머리털이니, 몸은 비록 골백번 으깨지더라도 이 머리털이 남아 있는 이상 보잘것없는 이 머리카락 하나로도 옥사의 전체를 단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심하는 자리에서 형적만을 가지고 따져, 죽게 된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고 상대에게는 그저 위협과 핍박을 한 죄율에 그치고 말았으니, 이로써 판결을 끝낸다면 어찌 죽은 자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정상을 참작하고 행동을 헤아려 보면 위협과 핍박을 했다는 죄율은 마침내 너무도 경한 편이니, 중한 편을 따라 논하여 강간미수의 죄율로 처벌하는 것이 아마도 적절할 듯합니다.
두 편의 글 모두 진상을 깊이 파고들었으며 문장을 지은 것이 시원스럽고 유창하다.
咸陽張水元致死韓女鳥籠。而初檢及覆檢。俱以自溺爲實因者。反覆文案。參究情實。則鳥籠之爲水元所威逼。非至一再。而身是未笄。依止挾室。慚憤雖切。無地可洩。情窮勢蹙。無處可往。則惟彼淸泠之淵。乃其
潔身之所。雖非水元交手推納。致令守紅之女。抱此懷沙之寃者。非渠而誰。究厥情狀。焉逭償命。而前後所供。屢變其說。此不過狡頑之性。欲掩其强暴之跡。然非欲奸騙。則挾室之處女。胡爲捽曳乎。非渠捽曳。則鳥籠之頭髮。緣何見擢乎。事非至憤。則見擢之髮。胡爲留置乎。留此一撮之髮。泣托穉弟。一以爲當日不汚之驗。一以爲死後雪寃之資。所謂獵蝨收績之誘。傳鋤失襪之鬨。無甚關緊於是獄。則水元强暴之贓。惟此髮也。鳥籠死拒之跡。惟此髮也。身雖百爛。此髮尙存。則一髮之微。可斷全獄。然而議讞之地。執跡而論。孽由己作。律止威逼。以此論勘。豈足以小洩死者之幽鬱乎。參情較跡。威逼之律。終涉太輕。從重論。施以奸未成之律。恐似得宜。
兩篇俱深切事情。行文踈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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