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사에게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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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下敎)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부임한 초기에 시노(寺奴)에 관한 사안으로 시끄럽게 말들이 귀에 들려오길래 그 김에 즉시 비밀리에 알아보았습니다. 계묘년(1783, 정조 7) 무렵에 시노의 두목(頭目)들이 신공(身貢)을 방납(防納)한다는 핑계로 돈을 거둬들인 것이 모두 900여 냥이나 되는데 그것을 모두 다 써서 없애버려, 이 때문에 패가망신한 자가 많으므로 원통함이 뼛속까지 사무쳤는데, 지난겨울에 추가로 노비를 찾아내어 신공을 거둘 때에 또다시 때를 타서 농간을 부린 것이었습니다. 시노들이 남몰래 뇌물을 바친 것은 본래 앞으로 있을 신공을 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10년 후에 마침내 추가로 찾아내어 신공을 거두는 대상에 들고 말았으므로, 이름을 누락시키고 몸을 숨긴 그 밖의 다른 자들도 모두 두려움을 품고, 지난 일을 뒤미쳐 끄집어내어 원망하는 말을 서로 퍼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교하신 것을 보면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아신 듯하나, 두목들이 방납을 빙자하여 침학(侵虐)하는 것은 본래 때가 있으니, 바로 세밑에 추가로 노비를 찾아내는 때입니다. 지금은 추가로 찾아내는 날짜가 아직 멀었으니, 아무리 농간을 부리고자 해도 형세상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개 지난겨울에도 이러한 폐단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끌어다 붙여 원망과 비난이 떼지어 일어나고 있어, 엄정하게 조사하여 보고를 드려야 함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일 뿐만 아니라 전임(前任) 수령과 관계된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임 수령으로서 작고한 자가 이미 3등(等)인데, 그중에서도 족숙(族叔)이 가장 곤란한 입장이 되겠기에, 반복해서 깊이 헤아리며 감히 경솔히 발설을 못 하고 사건의 추이를 관망하여 조처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근원은 이와 같은 데 불과하나, 다만 이들 무리가 원한이 깊어서, 외람되이 임금에게까지 소원(訴冤)하는 일이 자주 있는 점이 걱정됩니다. 어떤 일을 막론하고, 만약 ‘거둬들인다’는 따위의 말로써 두루뭉술하게 원통함을 하소연한다면, 본 고을에 탈이 생기는 것은 놔두고라도 영문(營門 경상 감영)에 근심을 끼치는 것은 응당 또 어떠하겠습니까. 원한이 쌓인 지 이미 오래이고 말이 멀리까지 퍼졌으니, 일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만약 직관(直關)을 보내 엄중히 조사하라고 지시한다면, 또한 어찌 감히 적당히 얼버무리고 발뺌을 하겠으며, 뒤처리를 잘할 방책을 스스로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치는 별지(別紙)는 바로 저의 족질이 우의정에 제수됨을 축하한 편지입니다. 감영(監營)으로부터 황각(黃閣 의정부)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처음 연석(筵席)에 나갔을 때 임금께 아뢰면 힘써 도와주기가 쉬울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폐단을 손이 가는 대로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그 부본(副本)입니다. 보시면 짐작하실 것이나, 이는 본디 제가 평소에 고심했던 바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敎意謹悉。到任初。寺奴一款。紛紜入聽。故趁時密探。則癸卯年間。其頭目輩托以防貢。收斂錢財。摠爲九百餘兩。而都歸消瀜。以此敗亡者。多痛怨入骨。及夫昨冬加括也。又復乘時作奸。而寺奴之暗地納賂者。本以圖免於將來矣。十年之後。竟入加括。故其他漏名隱身者。擧懷危懼。追提往事。胥動怨言也。今此提敎似認事在目下。而頭目之所以憑藉
侵虐。自有其時。卽歲末加括也。今則加括尙遠。雖欲作奸。其勢末由也。葢昨冬不無此弊。則捏合往事。怨讟朋興。非不知嚴覈報聞。而不但事屬旣往。多關前任。前任之作故者。已是三等。而其中族叔。最爲碍逼。故反覆沈量。未敢輕發。欲觀來頭以爲處置之計。本事苗脉不過如此。但恐此輩怨毒旣深。猥濫登徹。比比有之。無論某事。若以收斂等說。混淪稱怨。則本邑生事姑舍之。其爲貽憂上營。當復如何哉。積感旣久。騰播亦遠。則事非可秘。若蒙直關嚴査。則亦安敢因循退托。不自圖善後之策耶。此呈胎紙。卽賀右相大拜書也。自藩入閣。初筵陳白。似易爲力。故果以此弊。信手錄入。此其副本也。覽至可諒此固平日苦心矣。不宣。
[주C-001]순찰사에게 답함 : 연암은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직후인 1792년(정조 16) 족질(族姪) 박종악(朴宗岳)이 우의정에 제수됨을 축하하면서 그에게 시노(寺奴) 문제에 관해 건의한 편지, 즉 《연암집》 권2에 수록된 ‘삼종질 종악이 정승에 제수됨을 축하하고 이어 시노 문제를 논한 편지〔賀三從姪宗岳拜相 因論寺奴書〕’를 보낸 뒤에, 역시 시노 문제로 경상 감사의 편지를 받고 그에 답한 것이다.
[주D-001]신공(身貢)을 방납(防納)한다는 핑계 : 신공은 지방에 거주하는 시노들이 해당 관아에 가서 신역(身役 : 구실)을 하는 대신 공포(貢布)라고 하여 베를 바치는 것을 말한다. 방납(防納)은 이 공포를 대신하여 납부하고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것을 말한다. 중간에서 높은 이윤을 취하여 폐단이 심했다.
[주D-002]3등(等) : 등(等)은 수령의 임기를 말한다. 수령의 임기 동안을 등내(等內)라고 한다. 여기서는 작고한 수령이 3명이라는 뜻이다.
[주D-003]직관(直關) : 중앙의 각 관청에서 순영(巡營)이나 병영(兵營)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외읍(外邑)으로 보내는 관문(關文)을 말한다.
[주D-001]신공(身貢)을 방납(防納)한다는 핑계 : 신공은 지방에 거주하는 시노들이 해당 관아에 가서 신역(身役 : 구실)을 하는 대신 공포(貢布)라고 하여 베를 바치는 것을 말한다. 방납(防納)은 이 공포를 대신하여 납부하고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것을 말한다. 중간에서 높은 이윤을 취하여 폐단이 심했다.
[주D-002]3등(等) : 등(等)은 수령의 임기를 말한다. 수령의 임기 동안을 등내(等內)라고 한다. 여기서는 작고한 수령이 3명이라는 뜻이다.
[주D-003]직관(直關) : 중앙의 각 관청에서 순영(巡營)이나 병영(兵營)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외읍(外邑)으로 보내는 관문(關文)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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