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사에게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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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기 한 뒤로 심한 가뭄이 들어, 갑자기 6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늘엔 한 점 구름도 없었습니다. 부채질을 하고 찬물을 마셔 대지만 밤낮없이 활활 타는 화로 속에 앉아 있는 듯하니, 이는 지난 60년 동안 처음 겪는 일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순사또께서는 원기왕성하게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하관(下官 연암의 자칭)은 갈수록 쇠약하고 병이 깊어지고 있지만, 분주히 달려가 비를 빌었어도 신령의 보응은 한층 더 멀어지기만 하니, 백성들의 일에 대한 걱정으로 목이 타는 듯합니다. 고을살이 3년에 한 가지도 은혜로운 정사가 없었으니, 재앙이 닥쳐오는 것은 이치상 혹시 당연할 듯도 합니다. 다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붉은 도장을 마구 찍어 대는 것이 부정(不正) 아닌 것이 없는데, 오늘도 이렇게 하고 내일도 이렇게 하여 잘못된 전례를 답습하며 바로잡아 고쳐 가는 일이 없으니, 이는 어찌 거심(距心)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 원문 74자 빠짐 -
지금의 이른바 양반이란 옛날의 이른바 대부(大夫)와 사(士)요, 지금의 이른바 수령이란 옛날의 이른바 도신(盜臣)입니다. 만약 백이(伯夷)나 오릉중자(於陵仲子) 같은 이로 하여금 지금 장리(長吏 고을 수령)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면, 어찌 다만 더러운 진흙탕과 잿더미에 앉은 것같이 여길 뿐이겠습니까. 반드시 밖으로 뛰쳐나가 먹은 것을 토해 내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는 관문(關文)이나 가는 첩보(牒報 서면 보고)가 한 가지도 절실한 내용이 없으며, 백성의 근심이나 나라의 장래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어물어물 넘기고 모호하게 처리할 따름입니다.
지금과 같은 무더위에 걸리는 병은 학질과 이질이요 관격(關格)인데, 이는 풍한서습(風寒暑濕)이 원인이 되거나 허로(虛勞)와 내상(內傷)이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삐 주명신(周命新)을 불러오지만, 애시당초 어찌 맥박이나 증세를 제대로 살펴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이진탕(二陳湯)의 약방문을 받아 적게 하고, 한편으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읊어 주고는, 국수에다 돼지고기까지 먹고 총총히 일어나 가 버리지요. 날마다 수백 가지 병을 살펴보지만, 가는 곳마다 이런 식입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 증세를 진단하기를, ‘인순고식(因循姑息)이요 구차미봉(苟且彌縫)이다’라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서 복의(福醫)로 세상에 행세하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그 복의부터 처벌해야만, 비로소 백성들의 병이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돼지 족발 하나로 풍년을 빌었던 사람은, 바친 것은 비록 보잘것없었으나, 그 뜻은 그래도 진실하고 그 말은 매우 정성스러웠습니다. 지금 비를 비는 제사로써 따져 본다면, 비록 ‘땅을 깨끗이 쓸고 제사를 올린다’고 하지만 자리를 깔고 장막을 친 것부터 그다지 평평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릇들은 금 가고 비틀어졌으며 제기(祭器)들은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시골구석의 집사(執事)들도 예의에 익숙하지 못하여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이 바르지 못하며, 옛 법도에도 지금 법도에도 맞지 않은 관을 쓰고, 평성(平聲)인지 거성(去聲)인지도 분변하기 어려운 성조로 무미건조한 축문을 읽어 대니, 이렇게 하면서 사방 천리에 큰비를 맞이하기를 바란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세간의 만사가 모두 다 이런 부류입니다. - 이하 원문 빠짐 -
鋤後亢旱。忽自夏季。一直到今。天無一點雲。搖扇飮冷。晝夜如在熾爐中。六十年來所初經也。伏惟旬宣起居萬重。下官衰病轉深。而奔走禱雨。霛應彌邈。民事渴悶。居邑三載。無一惠政。災咎之召。理或固然。但從朝至暮。亂朱胡蹋。莫非不正。今日如是。明日如是。而因訛襲謬。莫之矯
革。則庸詎非距心之罪乎。缺七十四字。今之所謂兩班。古之所謂大夫士。今之所謂守令。古之所謂盜臣。如使伯夷於陵。處今長吏之一席。則奚但如坐塗炭。必將出而哇之矣。然而來關去牒。無一實事。民憂國計。了不關涉。囫圇喫着。糊塗做去。如今暑熱所病。瘧痢也。關格也。或源於風寒暑濕。或祟於虛勞內傷。而忙邀周命新初。何甞診脉察證。一邊呼寫二陳湯。一邊誦傳七律詩。吃麪喫猪。怱怱起去。日閱百病。到處如此。吾則執其證曰。因循姑息。苟且彌縫也。以此而以福醫行世。豈不痛哉。先治其福醫。然後方可。昔之豚蹄禳田者。所持雖狹。其情猶原。其辭甚愨。以今祈雨之祭驗之。雖曰掃地而祭。陳席設幕。旣不甚平正。而器皿啙窳。俎豆傾側。鄕曲執事。不嫺禮儀。跪拜歪斜。冠非古非今之冠。以平去難卞之音。讀古淡無味之文。以此而欲邀方千里之大霈。豈不難哉。世間萬事。莫非此類 缺。
[주D-001]거심(距心)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 고을 수령인 연암 자신의 죄라는 뜻이다. 공거심(孔距心)은 제 나라의 평륙(平陸)이란 고을의 수령이었는데, 맹자가, “지금 남에게서 소와 양을 받아 대신해서 기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목장과 꼴을 구할 것이다.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소와 양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또한 소와 양이 죽어 가는 것을 서서 볼 것인가?” 하고 질책하니, “이는 저 거심의 죄입니다.” 하고 뉘우쳤다고 한다. 《孟子 公孫丑下》
[주D-002]도신(盜臣) : 관청 창고의 재물을 도적질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백승지가(百乘之家 : 경대부가〈卿大夫家〉)는 ‘재물을 긁어모으는 관리〔聚斂之臣〕’를 기르지 않는다. 재물을 긁어모으는 관리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신(盜臣)을 둘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03]만약 …… 것입니다 : 백이는 악인(惡人)의 조정(朝廷)에 참여하고 악인과 말하는 것을 마치 의관을 갖추고서 더러운 진흙탕과 잿더미에 앉은 듯이 여겼다고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오릉중자(於陵仲子)는 제(齊) 나라에서 대대로 벼슬을 한 가문 출신으로, 그의 형은 식읍(食邑)인 합(蓋)에서 만종의 녹봉을 받고 있었다. 오릉중자는 형의 녹봉을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 한 집에서 살지 않고 오릉(於陵)에 은둔하였다. 훗날 집에 돌아와 형에게 뇌물로 거위를 바치는 자를 보고 “이 꽥꽥거리는 것은 무엇에 쓰자는 거요?”라고 하며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뒤 어머니가 요리한 거위 고기를 먹고 있을 때 형이 보고는 “이것이 꽥꽥거리던 고기다.”라고 하자, 밖으로 뛰쳐 나가 먹은 것을 토해 버렸다고 한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4]풍한서습(風寒暑濕) : 한의학에서 풍ㆍ한ㆍ서ㆍ습은 병을 일으키는 외부의 사기(邪氣)를 가리킨다. 이 사기가 인체에 들어와 병을 일으키는 것을 각각 중풍(中風), 중한(中寒), 중서(中暑), 중습(中濕)이라 한다.
[주D-005]허로(虛勞)와 내상(內傷) : 허로는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로한 결과 나타난 증상을 총칭한 말이다. 내상은 한의학에서 내인성(內因性) 질환을 말하는데, 음식을 잘못 섭취해 생기는 음식상(飮食傷), 술을 과음해서 생기는 주상(酒傷), 심신을 과도하게 사용해 생기는 노권상(勞倦傷) 등이 있다.
[주D-006]주명신(周命新) : 조선 후기의 명의이다. 허준(許浚)의 제자로 《동의보감》을 참조하여 1724년(경종 4) 임상치료학의 명저인 《의문보감(醫門寶鑑)》 8권을 저술하였다.
[주D-007]이진탕(二陳湯) : 반하(半夏), 귤껍질, 붉은 복령(茯笭), 감초 등을 넣어 달인 탕약으로 담(痰)을 다스리는 데 특히 효과가 있다.
[주D-008]인순고식(因循姑息)이요 구차미봉(苟且彌縫)이다 : 인순고식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임시방편을 구하는 것을 뜻하고, 구차미봉 역시 비슷한 말로 대충 해치우고 임시변통하여 문제를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연암은 만년에 병풍에다 큰 글씨로 ‘인순고식 구차미봉’ 여덟 자를 쓰고는, “천하만사가 모두 이 여덟 자를 따라 무너지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過庭錄 卷4》
[주D-009]복의(福醫) : 운 좋게도 병을 잘 낫게 하는 의사를 말한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운 좋게도 늘 승리하는 장수를 복장(福將)이라 하며, ‘지장(智將)은 복장(福將)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주D-010]옛날에 …… 정성스러웠습니다 : 《사기》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순우곤(淳于髡)이 제 나라 위왕(威王)을 설득하면서 한 이야기에 나온다. 위왕은 초 나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순우곤을 조(趙) 나라로 구원병을 청하러 보내면서도, 조 나라에 보내는 선물을 매우 인색하게 준비했으므로, 순우곤은 돼지 족발 하나로 풍년을 기원하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그 사람이 바치는 것은 보잘것이 없으면서 바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여 왕을 깨우치게 했다고 한다.
[주D-011]무미건조한 : 대본은 ‘古淡無味’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古談無味’로 되어 있다. 둘 다 잘못된 것으로, ‘枯淡無味’라야 옳다.
[주D-002]도신(盜臣) : 관청 창고의 재물을 도적질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백승지가(百乘之家 : 경대부가〈卿大夫家〉)는 ‘재물을 긁어모으는 관리〔聚斂之臣〕’를 기르지 않는다. 재물을 긁어모으는 관리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신(盜臣)을 둘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03]만약 …… 것입니다 : 백이는 악인(惡人)의 조정(朝廷)에 참여하고 악인과 말하는 것을 마치 의관을 갖추고서 더러운 진흙탕과 잿더미에 앉은 듯이 여겼다고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오릉중자(於陵仲子)는 제(齊) 나라에서 대대로 벼슬을 한 가문 출신으로, 그의 형은 식읍(食邑)인 합(蓋)에서 만종의 녹봉을 받고 있었다. 오릉중자는 형의 녹봉을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 한 집에서 살지 않고 오릉(於陵)에 은둔하였다. 훗날 집에 돌아와 형에게 뇌물로 거위를 바치는 자를 보고 “이 꽥꽥거리는 것은 무엇에 쓰자는 거요?”라고 하며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뒤 어머니가 요리한 거위 고기를 먹고 있을 때 형이 보고는 “이것이 꽥꽥거리던 고기다.”라고 하자, 밖으로 뛰쳐 나가 먹은 것을 토해 버렸다고 한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4]풍한서습(風寒暑濕) : 한의학에서 풍ㆍ한ㆍ서ㆍ습은 병을 일으키는 외부의 사기(邪氣)를 가리킨다. 이 사기가 인체에 들어와 병을 일으키는 것을 각각 중풍(中風), 중한(中寒), 중서(中暑), 중습(中濕)이라 한다.
[주D-005]허로(虛勞)와 내상(內傷) : 허로는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로한 결과 나타난 증상을 총칭한 말이다. 내상은 한의학에서 내인성(內因性) 질환을 말하는데, 음식을 잘못 섭취해 생기는 음식상(飮食傷), 술을 과음해서 생기는 주상(酒傷), 심신을 과도하게 사용해 생기는 노권상(勞倦傷) 등이 있다.
[주D-006]주명신(周命新) : 조선 후기의 명의이다. 허준(許浚)의 제자로 《동의보감》을 참조하여 1724년(경종 4) 임상치료학의 명저인 《의문보감(醫門寶鑑)》 8권을 저술하였다.
[주D-007]이진탕(二陳湯) : 반하(半夏), 귤껍질, 붉은 복령(茯笭), 감초 등을 넣어 달인 탕약으로 담(痰)을 다스리는 데 특히 효과가 있다.
[주D-008]인순고식(因循姑息)이요 구차미봉(苟且彌縫)이다 : 인순고식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임시방편을 구하는 것을 뜻하고, 구차미봉 역시 비슷한 말로 대충 해치우고 임시변통하여 문제를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연암은 만년에 병풍에다 큰 글씨로 ‘인순고식 구차미봉’ 여덟 자를 쓰고는, “천하만사가 모두 이 여덟 자를 따라 무너지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過庭錄 卷4》
[주D-009]복의(福醫) : 운 좋게도 병을 잘 낫게 하는 의사를 말한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운 좋게도 늘 승리하는 장수를 복장(福將)이라 하며, ‘지장(智將)은 복장(福將)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주D-010]옛날에 …… 정성스러웠습니다 : 《사기》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순우곤(淳于髡)이 제 나라 위왕(威王)을 설득하면서 한 이야기에 나온다. 위왕은 초 나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순우곤을 조(趙) 나라로 구원병을 청하러 보내면서도, 조 나라에 보내는 선물을 매우 인색하게 준비했으므로, 순우곤은 돼지 족발 하나로 풍년을 기원하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그 사람이 바치는 것은 보잘것이 없으면서 바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여 왕을 깨우치게 했다고 한다.
[주D-011]무미건조한 : 대본은 ‘古淡無味’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古談無味’로 되어 있다. 둘 다 잘못된 것으로, ‘枯淡無味’라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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