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사에게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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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정순기(鄭順己)의 의옥(疑獄) 사건으로써 직접 뵙고 아뢴 바 있었으나, 자세한 곡절은 다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저 이 옥사는 실로 맹랑한 일에 속합니다. 당초에 재검(再檢)하여 옥사를 마무리할 사건이 아니었는데, 그때 겸관(兼官)이 도임한 지 수일 만에 갑자기 이 옥사를 당하자 겸읍(兼邑)의 하인들이 제멋대로 검시(檢屍)를 행하여, 상처가 어떠한지도 돌아보지 않고 자백과 증언의 유무도 헤아리지 않고서, 대강대강 옥안(獄案)을 갖춘 것이므로 이미 소홀하다는 탄식을 면치 못했습니다. 재검 때에 ‘낙태’라는 한 조목을 특별히 덧붙인 것은 더욱 근거가 없습니다. 전임 순찰사 때에 그 원통한 실상을 살펴서 안 바 없지 않아, 특별히 관문(關文)을 보내 이치를 따져서 여러 추관(推官)들로 하여금 의견을 내어 보고를 올리게 한 것이 바로 이 사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옥사의 정황을 곰곰이 따져 보니 완성된 옥안과 저절로 어긋나서 역시 앞뒤가 모순되는 혐의가 없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질질 끌어 온 것입니다. 이른바 원범(元犯)이라는 자는 그 생김새를 살펴보니, 평범하기 이를 데 없으며 지극히 순하고 용렬한 놈입니다. 해가 넘도록 옥에 갇혀 있는데 그동안에 부모는 다 죽고 아내도 또한 다른 데로 시집가 버렸으니, 비단 본 사건이 원통할 뿐만 아니라 인정상으로 또한 몹시 불쌍한데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습니다. 더더구나 지난겨울부터 감옥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가 비록 사형수라 할지라도, 텅 빈 감옥에 홀로 둔 채로 돌보고 먹여줄 사람이 없어, 주림과 병이 잇달아 옥중에서 병사하고 말 것이니, 신중히 살필 것을 거듭 당부하는 것 외에는 역시 옥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방도가 어찌 있겠습니까. 사실을 낱낱이 들어 보첩(報牒 보고서) 속에 모두 기록하였으니, 재량하여 처리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向以疑獄鄭順己事。有所面陳。而未畢其委折矣。大抵此獄實涉孟浪。初非再檢成獄之事。而其時兼官莅任數日。遽當此獄。則兼邑下屬之得得行檢。不顧痕損之如何。不計詞證之有無。而草草具案。已不免踈率之歎。覆檢之別添墮胎一款。尤涉無據。前巡使時。不無廉得其寃狀。而別關論理。使諸推官。出意見論報者此也。然追反獄情自乖。成案亦
부(附) 보첩의 초본
지금 이 옥사는 군수가 서울에 올라갔을 때에 생긴 것이어서, 검시에 참여하지 못했고 물어볼 만한 관련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초검과 복검의 검안(檢案)을 반복하여 따져 보니, 시친(屍親 피살자의 친척) 김한성(金汗成)은,
“제 처 설운례(雪云禮)가 순기(巡己)와 싸움이 붙어 그자의 뺨을 갈기려 들자, 순기가 두 손으로 꽉 잡고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길질을 했는데, 3일 동안 앓아누웠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초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저는 출타 중이라서 애당초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라고 공초하였고, 원범 정순기(鄭巡己)의 공초에는“설운례와 싸움이 붙었을 때 그 여자가 몽둥이를 가지고 달려들기에 두 손을 붙잡아 몽둥이로 때리지 못하게 하려 했는데, 서로 버티고 있을 때 평소에 전혀 모르던 지나가는 사람이 힘껏 당겨서 양편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제 몸을 마구 내던지며 스스로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지고 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이 두 가지 공초를 보면 모두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시친이 비록 ‘목격했다’고 말할지라도 믿을 바가 못 되므로, 관련자들을 잡아다 조사하여 참고가 될 만한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그가 이미 애당초 목격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진술했으니, 반드시 전해 들은 긴요한 증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증언을 한 자는 그의 아들인 일곱 살 난 아이에 지나지 않으며, 한성의 집이 산골짝에 외떨어져 있으니, 싸울 때의 광경과 두들겨 맞을 때의 경중(輕重)은 직접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다른 집의 일곱 살 난 아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이미 차지 못하고 말이 자세하지 못하여 증인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딴 사람이 아니고 바로 그의 자식이고 보면 법으로 보아 당연히 물을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감히 증인으로 삼았으니 어찌 사리에 맞겠습니까.
원범에 대하여 논하자면, 둘이 서로 욕을 하다가 차츰 격해져서 몽둥이로 때리려 하였으니, 피해 달아나지 않으면 형세상 맞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장정인 그가 어찌 단지 그 여자의 두 손만 붙잡고 꼿꼿이 멍청하게 서 있었겠습니까.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길질을 하는 것은 그렇게 아니 할 수 없는 바였습니다. 급기야 흉악한 짓을 한 몸이 되어 죄를 피할 수 없게 되어서는, 극구 발뺌하는데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당초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손을 붙잡고 때리지 못하도록 막을 때에 만류하여 떼 놓은 사람은 과연 누구였겠습니까? 전혀 모르던 지나가는 사람을 얼렁뚱땅 증인으로 삼았으니, 극히 교묘하고 악독한 일입니다. 이것이 자백과 증언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정상과 형적이 더욱 알 수 없게 된 까닭입니다.
비록 두 검안의 실인(實因 사망 원인)을 들어 논한다 해도, 뜬구름을 잡는 것을 면치 못하여 억지로 상처를 찾아낸 것입니다.
“하나는 불두덩〔陰岸〕에 피멍이 번진 것이고 하나는 아랫배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이니, 마치 외부로부터 입은 상처인 듯하지만, 이미 정수리에 혈흔이 없으니 상처가 그다지 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했는데, 상처가 과연 중하지 않다면 어찌 목숨을 잃게 되었단 말입니까. ‘마치 …… 듯하다〔宛是〕’란 것은 긴가민가하는 말이요, ‘이미 …… 없다〔旣無〕’라는 것은 분명히 그렇다고 단정하는 말입니다. 아랫배나 불두덩은 모두 급소에 속하는데 또한 어찌 3일 동안이나 연명했으며, ‘마치 …… 듯한’ 상처와 ‘이미 …… 없다’는 증험으로써 어찌 옥안을 충분히 갖출 수 있겠습니까. 요안(腰眼) 위쪽과 등뼈 아래쪽 사이에 찰과상이 이와 같이 확실하다면, 발에 차인 곳은 앞에 있어야지 뒤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스로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졌다’는 순기의 말은 이렇게 해서 발뺌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처가 불분명한 것은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실인을 하나는 내상(內傷)이라 하고 하나는 태상(胎傷)이라 한 것은, 결국 억지로 찾아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외상(外傷)이 드러나지 않으면 대개는 내상으로 돌리고, 내상을 알기 어려우면 태상으로 단정하지만, 그와 같이 단정한 것은 더욱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릇 죽은 사람은 대맥(大脈)이 이미 풀어지면 평소에 쌓였던 어혈(瘀血)이 저절로 덩어리져 흘러내리는 수가 있습니다. 출산을 많이 한 부녀자의 경우에는 핏덩이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데, 이것으로써 억지로 태상이라고 실인을 정한다면 옳겠습니까? 더구나 그 여자는 출산한 뒤 겨우 열 달이 되었으니, 일 년에 두 번 임신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더구나 제 남편도 모르고 있는데, 볼록 튀어나온 것이 살짝 보인다고 해서 어찌 낙태했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또 한성이 3일 뒤에야 억지로 고발한 문서를 보면, 이미 그가 고주(苦主)가 아닙니다. 전임 순찰사가 특별히 공문을 보내어 의문점을 낱낱이 거론하고서, ‘반복하여 자세히 조사해서 의견을 내어 보고함으로써 무고히 재앙을 당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했는데, 그때 갑자기 영문(營門 순찰사)이 교체되는 때를 만나 미처 보고를 올리지 못하였고, 그 뒤에 한성이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조사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가 넘도록 질질 끌어 온 것이니, 실로 옥체(獄體)를 중히 여기는 도리가 아닙니다.
대저 이 옥사는 현저한 상흔이 없고 또 직접 목격한 긴요한 증언이 없으니, 낙태 여부는 끝내 알 수가 없습니다. 원범에 대한 추궁을 중지한 지도 이미 오래이고 시친의 종적도 영원히 끊어져서 다시 힐문할 곳이 없으니, 또한 옥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운운(云云).
報草附
今此獄事。出於郡守上京之時。未得參檢。而旣無干連之可問。惟以初覆檢案。反覆審覈。則屍親金汗成以爲其妻雪云禮。與巡己爭鬪。欲打其頰。則巡己兩手牢執。捽之踢之。痛臥三日。以至致命。而當初爭鬨之時。渠則出他。初不目覩爲招。元犯鄭巡己之招。則以爲雪云禮爭鬨之時。厥女持椎奔入。故執其兩手。要免其打。相撑拒之際。所昧過去之人。力挽分解。則厥女不勝其毒。投擲四體。自顚自撲爲招。
觀此兩招。俱不成說。屍親雖曰目覩。非可取信。故拘覈干連。以爲參證。渠旣自招。其初不目覩。則必有傳聞之緊證。而所證者。不過渠子之七歲奚兒。汗成之家。孤在山谷。則相鬨時光景。被打時輕重。無人參看。推此可知。雖他家七歲之兒。年旣未滿。語言未詳。不可爲證。况非別人。乃是渠子。則在法非所當問。而乃敢作證。豈成事理乎。至於元犯論之。兩相詬辱之層激。持椎欲打。若不避走。則勢當迎擊。渠以壯丁。豈徒執其兩手。挺挺癡立乎。捽之踢之。在所不已。及作凶身。無所逃罪。則極口發明。何所不至。而其曰初不犯手者。豈可成說乎。執手拒打之時。解挽者果是何人。而以所昧過去人。漫漶作證。極爲巧惡。此所以詞證不備。情跡轉晦者也。雖以兩案實因論之。未免摸撈。强覔痕損。而一則曰陰岸之紅暈。一則曰小腹之靑黯。宛是受損之痕。而旣無䪿門之血紅。則所傷之不深重可知。傷果不重。則豈足致
命。宛是者。其然似然之辭也。旣無者。果然截然之辭也。小腹陰岸。俱係要害。則亦何能延至三日。宛是之痕。旣無之驗。豈足以具案乎。腰眼上脊膂下。擦傷之痕。若是丁寧。則其所被踢在前。而不當在後也。巡己之自顚自撲之說。以此抵賴歟。傷痕之不明的。推此可知。實因之一以內傷。一以胎傷。終涉强覓。外痕未著。則率歸內傷。內傷難審。則執定以胎傷。其所執定。尤似未審。凡死人大脉旣放。則平日癖積瘀血。有自然堆下者。至於多產婦女。其血塊之露出。不是異事。則以此硬定其胎傷可乎。况其產後纔滿十朔。則一年再胎。乃是絶罕之事乎。又况其夫之所不知。而安可以凸物之微見。謂之墮胎乎。且汗成之三日後勉强發告之狀。已非苦主。而前巡使別關枚擧疑端。以爲反覆詳覈。出意見論報。俾無無辜橫罹之弊。而其時遽値營門交遞之際。未及論報。是後汗成亦無去處。究覈無路。以至閱歲遷就。實
非重獄軆之道。大抵此獄未有顯著之痕損。且無參見之緊證。則墮胎與否。終涉䵝昧。元犯之停推許久。而屍親之蹤跡永絶。更無盤詰之地。則有非審克之道云云。
[주D-001]겸관(兼官) : 이웃 고을의 수령 자리가 비었을 때 임시로 그 고을의 사무를 겸임하는 수령을 말한다. 또한 이웃 고을의 수령이 겸관으로서 다스리는 고을을 겸읍(兼邑)이라 한다. 함양군과 안의현은 본래 겸관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겸관은 연암 자신을 가리키고, 겸읍은 함양군을 가리킨다. 《연암집》 권2 ‘함양 군수 윤광석에게 보냄〔與尹咸陽光碩書〕’ 참조.
[주D-002]추관(推官) : 사죄(死罪)를 저지른 경우 수령들이 회동하여 죄인을 신문(訊問)하는 것을 동추(同推)라고 하는데 그때의 동추관(同推官)을 말한다.
[주D-003]군수 : 함양 군수 윤광석(尹光碩)을 가리킨다.
[주D-004]싸움이 붙어 : 원문은 ‘爭鬪’인데, ‘爭鬨’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5]정순기(鄭巡己)의 공초에는 : 원문은 ‘鄭巡己之招則’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則’ 자가 ‘內’ 자로 되어 있다.
[주D-006]서로 …… 때 : 원문은 ‘相撑拒之際’인데, ‘互相撑拒之際’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7]잡아다 조사하여 : 원문은 ‘拘覈’인데, ‘鉤覈’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8]지나가는 사람 : 원문은 ‘過去人’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過去之人’으로 되어 있다.
[주D-009]요안(腰眼) : 허리의 뒤쪽 허리등뼈의 좌우 부위를 가리킨다. 급소에 속한다.
[주D-010]태상(胎傷) : 태중(胎中)의 태아(胎兒)가 입은 상처를 말한다.
[주D-011]대맥(大脈) :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기가 운행하는 통로로 각 장부(臟部)에 속하는 12정맥(正脈)과 그렇지 않은 8개의 기경맥(奇經脈)이 있다고 보는데 대맥은 기경맥 중 허리를 한 바퀴 도는 경맥을 말한다. 경맥 내부에 정상적인 생리 기능을 상실한 혈액이 풀어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 어혈(瘀血)이다.
[주D-012]고주(苦主) : 시친(屍親)으로서 고발하는 사람, 즉 살인사건의 원고(原告)를 가리킨다.
[주D-002]추관(推官) : 사죄(死罪)를 저지른 경우 수령들이 회동하여 죄인을 신문(訊問)하는 것을 동추(同推)라고 하는데 그때의 동추관(同推官)을 말한다.
[주D-003]군수 : 함양 군수 윤광석(尹光碩)을 가리킨다.
[주D-004]싸움이 붙어 : 원문은 ‘爭鬪’인데, ‘爭鬨’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5]정순기(鄭巡己)의 공초에는 : 원문은 ‘鄭巡己之招則’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則’ 자가 ‘內’ 자로 되어 있다.
[주D-006]서로 …… 때 : 원문은 ‘相撑拒之際’인데, ‘互相撑拒之際’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7]잡아다 조사하여 : 원문은 ‘拘覈’인데, ‘鉤覈’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주D-008]지나가는 사람 : 원문은 ‘過去人’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過去之人’으로 되어 있다.
[주D-009]요안(腰眼) : 허리의 뒤쪽 허리등뼈의 좌우 부위를 가리킨다. 급소에 속한다.
[주D-010]태상(胎傷) : 태중(胎中)의 태아(胎兒)가 입은 상처를 말한다.
[주D-011]대맥(大脈) :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기가 운행하는 통로로 각 장부(臟部)에 속하는 12정맥(正脈)과 그렇지 않은 8개의 기경맥(奇經脈)이 있다고 보는데 대맥은 기경맥 중 허리를 한 바퀴 도는 경맥을 말한다. 경맥 내부에 정상적인 생리 기능을 상실한 혈액이 풀어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 어혈(瘀血)이다.
[주D-012]고주(苦主) : 시친(屍親)으로서 고발하는 사람, 즉 살인사건의 원고(原告)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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