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사(李監司) 서구(書九) 가 귀양 중에 보낸 편지에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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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집의 아이 혼인을 치르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중씨(仲氏)ㆍ계씨(季氏) 두 분 진사를 만날 수 있어 귀양살이 소식을 대략 들었지요. 내 비록 영해(寧海)를 보지는 못했지만, 추측건대 천하의 동쪽 끝에 처하여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마치 아교로 붙이고 실로 꿰맨 듯이 맞닿고, 낙지나 인어(人魚)뿐일 터이니 누구를 이웃으로 삼으리오? 임금의 은혜를 받잡고 자신의 허물을 반성할 따름이지요. 옛사람은 그래서 어디에 들어가도 스스로 뜻을 이루었던 것이니, 군자(君子 남에 대한 존칭)께서는 더욱 명덕(明德)을 높여 나가시기 바라오.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닥쳐오매, 바람은 높은 곳에서 불고 서리는 조촐히 내려 그리움이 한창 간절했는데, 뜻밖에 소곡(巢谷)에서 갑자기 친필 편지를 전해 올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때는 묵은 학질이 또 발작하여, 이불을 포개 덮고도 추워서 떨며 숨을 몰아쉬고 있던 참이었는데, 편지를 받고는 이불을 걷어 젖히고 기쁨이 넘쳐 땀이 나면서, 등이 땅기던 것도 바로 그쳤답니다. 편지로 인하여 객지에서 신령의 가호로 건강히 지내심을 알게 되었으나, 어찌 한(韓) 나라 대부(大夫)처럼 씩씩한 걸음으로 용감하게 갈 수 있으리오.
상자평(向子平)처럼 자녀의 혼사도 이미 다 치렀고, 도연명(陶淵明)처럼 집 정원에는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도 그대로 있는데 어찌하여 오래도록 밥이나 탐하는 늙은이가 되어 홀로 텅 빈 관아를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매화가 아내처럼 다정스럽게 안방을 떠나지 아니하고, 또 작은 화분이 있어서 매화 화분을 따라와 그 시녀가 되었지요. 옛사람 중에는 파초를 벗한 이가 없는데, 나는 유독 파초를 사랑하지요. 줄기는 비록 백 겹으로 돌돌 말려 있지만 가운데가 본래 텅 비어 한번 잎을 펼치면 아무런 꾸밈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의 마음을 터놓는 벗이 된 것이라오. 달 밝은 창이나 눈 내리는 창가에서 가슴을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하니, 중산군(中山君)이 민첩하여 말없이 도망치는 것과는 같지 않소이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에는 식사할 때 이〔齒〕가 있음을 잊어버리고 딱딱한 것 연한 것 가리지 않고, 혀를 놀리기를 바람같이 하고 뺨을 불끈거리기를 우레같이 하면서도, 물고 뜯고 씹어 대곤 하는 것을 각자 맡은 것이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 못했지요. 그런데 최근 4년 사이에 잇몸 사이가 요란스럽게 모두 들썩이고, 시고 짜고 덥고 찬 것에 따라 각기 다른 통증이 나타나니, 잠시 뭘 마시고 씹으려 해도 먼저 조심하게 되는구려.
지난가을에 왼쪽 볼의 둘째 이가 갑자기 빠져 나가고, 오른쪽 볼의 셋째 어금니는 안쪽은 빠지고 겉만 간신히 걸려 있어서 마치 마른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연연하는 것과 같으니, 이야기하고 숨쉬는 사이에도 뒤집힌 채로 들락날락하여 잘그락잘그락 패옥 부딪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곤 한다오. 아, 이가 빠진 뒤에도 이는 남아 있지만, 남아 있는 이라 해서 어찌 진실로 내가 소유했다 할 수 있겠소이까.
아침 해가 떴을 때 창가로 가서 빠진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뼈도 아니요 돌도 아닌 데다, 붙어 있는 뿌리가 너무나 옅어서 망치와 끌로도 단단히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대개 온몸의 힘과 원기가 그것들을 단속하고 다스릴 수 있었으나, 급기야 피와 살이 차츰 마르고 진원(眞元 원기)이 그것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어서는, 예전에 나를 위하여 효능을 발휘했던 것들이 얼음 녹듯이 먼저 무너지고 마니, 예로부터 천하의 대세가 본디 대부분 이와 같지요. 내 이제 이 하나가 빠졌으나, 역시 또 어찌하겠소?
최근에 지은 졸작(拙作) 두어 편이 있기에, 이 편에 기록해 보내어 삼가 적막함을 위로하는 바이니 글을 바로잡아 주기를 망녕되이 바라오. 글에 대한 평어(評語)는 모두 중존(仲存 이재성)이 쓴 것이외다.
겨울 날씨가 봄같이 따뜻한데, 대감께서 더욱 조리 잘하시기만을 바라며, 나머지 많은 말은 우선 줄입니다.
初秋。爲行兒婚赴都。得逢賢仲季兩上舍。畧聞匪所起居。我雖不見寧海。葢天下之東盡頭也。上蒼下碧。如黏膠線縫。章擧鮫人。誰與爲鄰。戴恩訟愆。古人所以無入而不自得焉。願言君子益崇明德。秋盡冬届。風霜高潔。瞻悵方切。豈意巢谷忽傳手書。時則舊瘧方作。重衾寒欷。得書
發蒙。歡溢爲汗。背搐旋止。因審寓中軆度神護。何由健步勇往。得如韓大夫也。向平之婚嫁已畢。淵明之松菊猶存。胡爲久作老饕。獨守空舘乎。但梅妻卿。卿能不去帷。又有小盆從而爲媵。古人無友蕉者。吾獨愛渠。心雖百卷。中兮本虛。一展則無表襮邊幅。所以爲吾虛心之友。月窓雪戶。開襟暢叙。不似中山君狡而默逃也。念少年時。當食忘齒。物無硬毳。運舌如風。鼓頰如雷。殊不覺其齧嗑咀嚼。各有主用。此來四載。齗齶之間。騷然皆動。酸醎溫冷。痛各異形。造次飮吃。戒先在心。去秋。左輔第二車。倐已脫去。右輔第三牙。內脫外罥。如枯葉之戀枝。談言呼噏之際。顚倒出入。珊珊然微聞環珮之聲。嗟乎。齒亡而後有齒。有齒者是豈眞吾有耶。朝日就窓。細玩落齒。非骨非石。托根甚淺。有非椎鑿所可安固。葢一身之全力元氣。有以收斂而紀綱之。及其血肉漸乾。眞元不綱。則昔之爲我利用者。渙然先頹。古來天下大勢。固多類此。吾今於一齒之
落。亦復何哉。近有拙作數篇。玆以錄呈。奉慰寂寞。妄希斧政。評語皆仲存筆也。冬暄如春。惟冀台履益加調護。餘萬姑不備。
[주C-001]이 감사(李監司)가 …… 답함 : 《정조실록》에 의하면 전라 감사 이서구는 1795년(정조 19) 6월 도내의 진휼(賑恤)을 실시한 고을에서 굶어 죽은 자들이 속출한 사건으로 인해 치죄를 당하고 경상도 영해부(寧海府)로 귀양 갔으며, 그해 11월 방면된 뒤 12월에 성균관 대사성으로 임명되었다.
[주D-001]초가을에 …… 들었지요 : 연암의 차남 종채(宗采)는 1795년 가을에 처사 유영(柳詠)의 딸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결혼하였다. 이서구에게는 아우로 경구(經九 : 1763~1818)와 소구(韶九 : 1766~1818)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1790년에 함께 진사 급제하였다.
[주D-002]옛사람은 …… 것이니 : 《중용장구》 제 14 장에 군자는 “환난에 처하면 환난 속에서 도를 행한다. 군자는 어디에 들어가도 스스로 뜻을 이룬다.〔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고 하였다.
[주D-003]어찌 …… 있으리오 : 만나러 가기 힘들다는 뜻을 장취(張翠)의 고사를 이용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한(韓) 나라 대부(大夫) 장취는 초(楚) 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진(秦) 나라에 원병(援兵)을 청하러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병을 핑계 대고 날마다 하나의 현(縣)만 행진하였다. 장취가 진 나라에 도착하니, 승상 감무(甘武)는 “한 나라가 급하긴 급하군요. 선생이 병든 몸으로 오시다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韓策》
[주D-004]상자평(向子平)처럼 …… 치렀고 : 자평은 한(漢) 나라 때의 고사(高士) 상장(向長)의 자이다. 상장은 자녀의 혼사를 다 치르고 나자, 다시는 가사(家事)를 묻지 않고 명산을 유람하러 떠나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向長》
[주D-005]도연명(陶淵明)처럼 …… 있는데 :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정원의 세 갈래 작은 길은 잡초가 우거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하였다.
[주D-006]매화가 아내처럼 다정스럽게 : 원문은 ‘梅妻卿卿’인데, 매처(梅妻)는 송 나라 은사 임포(林逋)가 매화를 아내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고, 경경(卿卿)은 아내가 남편을 친근하게 부른다는 뜻으로 《세설신어(世說新語)》 중 왕안풍(王安豐)의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부부가 금슬이 좋은 모양을 표현할 때 쓴다.
[주D-007]아무런 꾸밈이 없으니 : 원문은 ‘無表襮邊幅’인데, 옷의 겉이나 가장자리를 꾸미지 않듯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주D-008]중산군(中山君)이 …… 것 : 생각을 글로 표현하려고 해도 붓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산(中山)에 나는 토끼의 털로 만든 붓이 가장 좋다고 하여 이를 중산호(中山毫)라 한다.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붓〔毛穎〕은 중산(中山) 사람이며, 그 조상 중에 준(㕙)은 “민첩하여 달리기를 잘한다〔狡而善走〕”고 하였다. 또한 붓은 진 시황 때 중서령(中書令)으로까지 승진하여 황제와 더욱 친근했으므로, 황제가 그를 ‘중서군(中書君)’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주D-001]초가을에 …… 들었지요 : 연암의 차남 종채(宗采)는 1795년 가을에 처사 유영(柳詠)의 딸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결혼하였다. 이서구에게는 아우로 경구(經九 : 1763~1818)와 소구(韶九 : 1766~1818)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1790년에 함께 진사 급제하였다.
[주D-002]옛사람은 …… 것이니 : 《중용장구》 제 14 장에 군자는 “환난에 처하면 환난 속에서 도를 행한다. 군자는 어디에 들어가도 스스로 뜻을 이룬다.〔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고 하였다.
[주D-003]어찌 …… 있으리오 : 만나러 가기 힘들다는 뜻을 장취(張翠)의 고사를 이용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한(韓) 나라 대부(大夫) 장취는 초(楚) 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진(秦) 나라에 원병(援兵)을 청하러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병을 핑계 대고 날마다 하나의 현(縣)만 행진하였다. 장취가 진 나라에 도착하니, 승상 감무(甘武)는 “한 나라가 급하긴 급하군요. 선생이 병든 몸으로 오시다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韓策》
[주D-004]상자평(向子平)처럼 …… 치렀고 : 자평은 한(漢) 나라 때의 고사(高士) 상장(向長)의 자이다. 상장은 자녀의 혼사를 다 치르고 나자, 다시는 가사(家事)를 묻지 않고 명산을 유람하러 떠나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向長》
[주D-005]도연명(陶淵明)처럼 …… 있는데 :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정원의 세 갈래 작은 길은 잡초가 우거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하였다.
[주D-006]매화가 아내처럼 다정스럽게 : 원문은 ‘梅妻卿卿’인데, 매처(梅妻)는 송 나라 은사 임포(林逋)가 매화를 아내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고, 경경(卿卿)은 아내가 남편을 친근하게 부른다는 뜻으로 《세설신어(世說新語)》 중 왕안풍(王安豐)의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부부가 금슬이 좋은 모양을 표현할 때 쓴다.
[주D-007]아무런 꾸밈이 없으니 : 원문은 ‘無表襮邊幅’인데, 옷의 겉이나 가장자리를 꾸미지 않듯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주D-008]중산군(中山君)이 …… 것 : 생각을 글로 표현하려고 해도 붓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산(中山)에 나는 토끼의 털로 만든 붓이 가장 좋다고 하여 이를 중산호(中山毫)라 한다.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붓〔毛穎〕은 중산(中山) 사람이며, 그 조상 중에 준(㕙)은 “민첩하여 달리기를 잘한다〔狡而善走〕”고 하였다. 또한 붓은 진 시황 때 중서령(中書令)으로까지 승진하여 황제와 더욱 친근했으므로, 황제가 그를 ‘중서군(中書君)’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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