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화(洪太和)의 비성아집(秘省雅集)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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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가을 맑은 잔치 난향(蘭香)이 상쾌한데 / 新秋淸讌洒蘭薰
밥상 받은 여러 님은 효반(皛飯)과 취반(毳飯)으로 나뉘었네 / 會飯群公皛毳分
영지(靈芝) 돋은 늙은 나무 옛 비를 간직했고 / 老樹蒸芝藏舊雨
어떤 본에는 ‘장맛비를 머금고〔含積雨〕’로 되어 있다. /
신기루 같은 먼 누각 무너지는 구름을 부축하고 있네 / 遙樓學蜃擁頹雲시마(詩魔)에 홀렸다는 비웃음이 뒤따르고 / 詩魔邂逅從他笑
용의 뿔 우뚝하게 그렸노라
어떤 본에는 ‘허겁지겁 수묵화를 그렸노라〔墨畵蒼茫〕’로 되어 있다.
반쯤 술이 취한 김에 / 龍角崢嶸倚半醺자주 : 태화가 종이를 펴고 나더러 용을 그려 달라고 떼를 쓰기에 내가 비늘과 뿔을 대충 그리고 먹을 뿌려 보았다.
귀밑털에 서리 내린 이래로 기사(耆社)에 들기 넉넉하니 / 霜鬢由來優入社북산에서 이문(移文)을 보내오진 않겠구먼 / 北山應不便移文
[주C-001]홍태화(洪太和)의 …… 차운하다 : 태화(太和)는 홍원섭(洪元燮 : 1744~1807)의 자이다. 홍원섭은 충주 목사를 지냈으며 고문(古文)을 잘 지었다. 그의 문집 《태호집(太湖集)》에 비성아집첩전운(秘省雅集疊前韻)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시에 붙인 소주(小註)에 연암과 이덕무ㆍ박제가ㆍ유득공ㆍ성대중(成大中) 등과 함께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비성(秘省)은 비서성(秘書省) 즉 규장각(奎章閣)의 외각(外閣)인 교서관(校書館)을 가리킨다. 정조 15년(1791) 7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가 왕명으로 교서관에서 병지(兵志)를 편찬할 때 성대중이 마침 교서관에 숙직하자 홍원섭과 박지원 등이 함께 모여 시를 지었다고 한다. 《貞蕤詩集 卷3 辛亥七月同靑莊泠菴奉命纂輯國朝兵事開局於秘省而靑城適就直太湖燕巖玉流諸公偶集》
[주D-001]효반(皛飯)과 취반(毳飯)으로 나뉘었네 : 소식(蘇軾)과 전협(錢勰) 간의 해학적인 일화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전협이 소식에게 편지를 보내 효반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가 보니 밥 한 사발, 무 한 접시, 백탕(白湯) 한 그릇뿐이었다. 세 가지가 모두 백색(白色)이라고 ‘효반’이라 한 것이었다. 며칠 뒤 소식은 전협에게 편지를 보내 취반을 대접하겠노라고 했는데, 가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모(毛)는 ‘무(無)’와 통하므로, 밥ㆍ무ㆍ백탕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뜻으로 ‘취반’이라 한 것이었다. 《高齋漫錄》 여기서는 차려진 음식이 변변치 않았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D-002]차수(次修)가 …… 웃었다 : 평소 시를 즐겨 짓지 않던 연암이 모처럼 시를 지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농담을 한 것이다.
[주D-003]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를 말한다. 70세 이상의 고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경로(敬老) 기관이었다.
[주D-004]북산(北山)에서 …… 않겠구먼 : 북산은 중국의 종산(鍾山)을 가리키며 남경(南京)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산이라 한다. 이문(移文)은 관부 문서의 일종으로 격문(檄文)과 비슷하며 어떤 대상을 성토하는 글이다. 남조(南朝) 때에 주옹(周顒)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불려 나가 해염 영(海鹽令)이 되었는데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들어오다 다시 북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에 공치규(孔稚珪 : 447~501)가 북산의 산신(山神) 이름을 빌려 사이비 은사(隱士)인 그를 성토하였다. 《文選 北山移文》
[주D-001]효반(皛飯)과 취반(毳飯)으로 나뉘었네 : 소식(蘇軾)과 전협(錢勰) 간의 해학적인 일화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전협이 소식에게 편지를 보내 효반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가 보니 밥 한 사발, 무 한 접시, 백탕(白湯) 한 그릇뿐이었다. 세 가지가 모두 백색(白色)이라고 ‘효반’이라 한 것이었다. 며칠 뒤 소식은 전협에게 편지를 보내 취반을 대접하겠노라고 했는데, 가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모(毛)는 ‘무(無)’와 통하므로, 밥ㆍ무ㆍ백탕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뜻으로 ‘취반’이라 한 것이었다. 《高齋漫錄》 여기서는 차려진 음식이 변변치 않았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D-002]차수(次修)가 …… 웃었다 : 평소 시를 즐겨 짓지 않던 연암이 모처럼 시를 지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농담을 한 것이다.
[주D-003]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를 말한다. 70세 이상의 고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경로(敬老) 기관이었다.
[주D-004]북산(北山)에서 …… 않겠구먼 : 북산은 중국의 종산(鍾山)을 가리키며 남경(南京)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산이라 한다. 이문(移文)은 관부 문서의 일종으로 격문(檄文)과 비슷하며 어떤 대상을 성토하는 글이다. 남조(南朝) 때에 주옹(周顒)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불려 나가 해염 영(海鹽令)이 되었는데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들어오다 다시 북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에 공치규(孔稚珪 : 447~501)가 북산의 산신(山神) 이름을 빌려 사이비 은사(隱士)인 그를 성토하였다. 《文選 北山移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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