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두 번째 편지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1:04

두 번째 편지

 

 


본분으로 돌아가 이를 지키는 것이 어찌 문장에 관한 일뿐이리요. 일체 오만 가지 것이 모두 다 그러하다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밖에 나갔다가 제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우는 자를 만나서
“너는 어찌 우느냐?”
했더니, 대답이
“저는 다섯 살 적에 소경이 되었는데, 그런지 지금 20년이 되었습니다. 아침나절에 밖을 나왔다가 갑자기 천지 만물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밭둑에 갈림길이 많고 대문들이 서로 같아서 제집을 구분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하기에, 선생이
“내가 너에게 돌아갈 방도를 가르쳐 주마. 네 눈을 도로 감으면 바로 네 집이 나올 것이다.”
했습니다. 이에 소경이 눈을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며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니 서슴없이 제집을 오게 되었더라오. 눈 뜬 소경이 길을 잃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색상(色相)이 뒤바뀌고 희비(喜悲)의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망상(妄想)이라 하는 거지요. 지팡이로 더듬고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분수를 지키는 전제(詮諦)요, 제집으로 돌아가는 증인(證印)이 되는 것이오.

 

還他本分。豈惟文章。一切種種萬事摠然。花潭出。遇失家而泣於塗者曰。爾奚泣。對曰。我五歲而瞽。今二十年矣。朝日出往。忽見天地萬物淸明。喜而欲歸。阡陌多歧。門戶相同。不辨我家。是以泣耳。先生曰。我誨若歸。還閉汝眼。卽便爾家。於是。閉眼扣相。信步卽到。此無他。色相顚倒。悲喜爲用。是爲妄想。扣相信步。乃爲吾輩守分之詮諦。歸家之證印。


 


 

[주D-001]색상(色相)이 뒤바뀌고 : ‘색상’은 불교 용어로,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을 말한다. 색상은 본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한다. ‘뒤바뀌다〔顚倒〕’ 역시 불교 용어로, 번뇌로 인해 망상(妄想)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주D-002]전제(詮諦) : 불교 용어로 진제(眞諦)와 같은 말이다. 속사(俗事)의 허망한 도리인 속제(俗諦)와 구별되는 진정한 도리를 가리킨다.
[주D-003]증인(證印) : 불교 용어로 인가(印可)와 같은 말이다. 제자가 진리를 증득(證得)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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