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세 번째 편지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1:15

세 번째 편지

 

 


어제는 우리들이 달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달이 우리들을 저버린 거요. 세상에 어떤 일이든 모두 다 저 달과 같지 않겠소?
한 달이라 서른 날에도 큰달이 있고 작은달도 있으니, 초하룻날과 초이튿날은 방백(旁魄)일 따름이며, 초사흗날에는 겨우 손톱 흔적만 하되 그래도 낙조(落照) 때에는 빛을 발하며, 초나흗날이면 갈고리만 하고 초닷샛날이면 미인의 눈썹만 하고 초엿샛날이면 활만 하되 빛은 아직 넓게 퍼지지 못하고, 칠팔일로부터 열흘에 이르면 비록 얼레빗만 하나 빈 둘레가 여전히 보기 싫고,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이면 변송(汴宋 북송(北宋))의 산하(山河)처럼 오(吳)ㆍ촉(蜀)ㆍ강남(江南)이 차례로 평정되어 판도에 들어오는데 운주(雲州)와 연주(燕州)가 요(遼)에 함락되어 국토가 끝내는 이지러진 모습을 지닌 것과 같고, 열나흘이면 마치 곽 분양(郭汾陽)의 운수가 오복(五福)을 다 갖추었으나 다만 한편으로 옆에 달라붙은 어조은(魚朝恩) 때문에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했던 것이 한 가지 결함인 것과 같지요.
그렇다면 거울같이 완전히 둥근 때는 보름날 하루저녁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 달이 가장 둥근 때가 열엿새로 옮겨지거나 혹은 살짝 월식(月蝕)이 되든지 달무리가 지거나 혹은 먹구름에 가려지거나 혹은 모진 바람과 세찬 비가 내려 어제처럼 사람들을 낭패하게 만들지요. 우리들은 이제부터 마땅히 송조(宋朝)의 인물을 본뜨고, 다만 곽 분양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아끼기를 바라는 것이 옳겠지요.

 

昨日。非吾輩負月。月負吾輩也。世間甚事。摠非彼月耶。一月三十日。有大有小。一日二日。旁魄而已。三日堇如爪痕。而猶爲落照所射。四日如鉤。五日如美人眉。六日如弓。光輝未敷。自弦至旬。雖云如梳。虛圈猶醜。十一二三。如汴宋之山河。吳蜀江南。次第漸平。盡入版圖。而雲燕陷遼。金甌終缺。十四如汾陽之身命。五福俱全。惟是一邊旁着魚朝。恐懼戒謹。乃缺陷事耳。然則正圓如鏡。不過十五一夕。或移望在六。或薄蝕暈珥。或頑雲掩罩。或甚風疾雨。沮敗人意。如昨日耳。吾輩從今。當效宋朝之人物。正希汾陽之惜福可耳。


 



 

[주D-001]작은달 : 한 달이 28일이나 29일이 되는 달로 음력 2월ㆍ4월ㆍ6월ㆍ9월ㆍ11월이 작은달이다.
[주D-002]방백(旁魄) : 백(魄)은 달이 태양빛을 받지 못해 어두운 부분을 말한다. 초하루의 달은 달빛이 아주 소멸하여 사백(死魄)이라 하고, 초이튿날의 달은 사백에 가깝다고 하여 방사백(旁死魄)이라 한다.
[주D-003]곽 분양(郭汾陽)의 …… 같지요 : 곽 분양은 곽자의(郭子儀 : 697~781)를 말한다. 곽자의는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한 일등공신으로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으며,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후손들이 모두 현달(顯達)하였다. 단 총신(寵臣) 어조은(魚朝恩)이 관군용선위처치사(觀軍容宣尉處置使)로서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인 곽자의를 견제하고 집요하게 모함했으나, 곽자의는 은인자중하며 잘 대처하여 어조은의 참소가 끝내 통하지 못했다.
[주D-004]달이 …… 옮겨지거나 : 달이 가장 밝은 때를 망(望)이라 하는데, 작은달에는 15일이 망이 되지만, 큰달에는 16일이 망이 된다.
[주D-005]우리들은 …… 옳겠지요 : 꼭 15일에만 만나려 하지 말고, 그 전에 11일에서 14일 사이에 만나는 것도 좋겠다는 취지로 농담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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