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담헌(湛軒)에게 사과함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25. 11:51

담헌(湛軒)에게 사과함

 

 


어젯밤 달이 밝기로 비생(斐生)을 찾아갔다가 그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을 지키던 자가 말하기를,
“키 크고 수염 좋은 손님이 노랑말을 타고 와서 벽에다 글을 써 놓고 갔습니다.”
하기에, 촛불을 비춰 보니 바로 그대의 필치였소. 안타깝게도 손님이 왔다고 알려 주는 학(鶴)이 없기에 그만 그대에게 문에다 ‘봉(鳳)’ 자를 남기게 하였으니, 섭섭하고도 송구하구려. 이제부터서는 달 밝은 저녁이면 당분간 밖에 감히 나가지 않을 거요.

 

昨夜月明。訪斐生。仍相携而歸。守舍者告曰。客乘黃馬。頎而髯。壁書而去。燭而照之。乃足下筆也。恨無報客之鶴。致有題門之鳳。慊慊悚悚。繼此月明之夕。聊當不敢出。


 


 

[주C-001]담헌(湛軒) : 홍대용(洪大容)의 호이다.
[주D-001]손님이 …… 학(鶴) : 송(宋) 나라의 은사(隱士)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한 임포(林逋)는 학 두 마리를 길렀는데 손님이 오면 그 학이 손님이 온 것을 알렸다고 한다. 《宋詩鈔 卷13 林逋和靖詩鈔序》
[주D-002]문에다 …… 하였으니 : 위(魏) 나라 때 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친하여 매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갔다. 어느 날 여안이 혜강을 찾아갔으나 마침 혜강은 집에 없고 그의 형 혜희(嵇喜)가 문을 나와 맞이하자 여안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위에다 ‘봉(鳳)’ 자를 쓰고는 가 버렸다. 혜강이 돌아와서 그것을 보고 ‘범조(凡鳥)’ 즉 ‘평범한 새’로 파자(破字)하여 읽었다. 즉 혜희는 평범한 인물이므로 함께 사귈 만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韻府群玉 卷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