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당기(喚醒堂記)
당(堂)의 액호(額號)를 ‘불러서 깨운다’는 뜻의 ‘환성당(喚醒堂)’으로 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주인옹(主人翁)이 손수 쓴 것이다. 주인옹은 누구인가? 서봉(西峰) 이공(李公)이다. 부르는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자신을 부른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불렀는가? 공은 평소에 경이직내(敬以直內)하고 잠깐 사이라도 주일무적(主一無適)하여, 언제나 삼가고 독실하여 하나의 공경할 ‘경(敬)’ 자로써 힘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온 세상 사람들이 무지몽매하여 취생몽사(醉生夢死)하니 어느 한 사람도 이러한 도리를 간파한 자가 없었으므로, 아무리 불러 보았자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였고 아무리 깨워 보았자 취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기거하는 당에다 편액을 걸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대신하고 아침저녁으로 스스로를 깨우치며 항상 볼 수 있게 하였으니, 어찌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공의 후손인 판서공(判書公)이 집을 짓고자 한 선조의 뜻을 잊지 아니하고 훌륭한 집을 이처럼 빛나게 지어 능히 선조의 미덕을 계승하였으니, 그 집안의 어진 자손이요 조상을 욕되게 아니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나는 이 당에 대하여 거듭 감회가 있다. 이른바 오래된 가문이라는 것은 거기에 교목(喬木)이 있다고 해서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대로 공신이 이어져 온 집에는 반드시 수백 년 된 교목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그 정원을 두루 살펴보면, 늙은 나무가 우람하고 큰 가지 작은 가지가 새로 나서 울울창창하니, 이는 단지 비와 이슬만 먹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만약에 나무를 배양하는 노고가 없었더라면 어찌 이처럼 무성할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이 당에 사는 후손이 진실로 거경(居敬)하여 몸가짐을 지켜가지 않는다면, 뜰을 뒤덮은 늙은 나무를 보고 왕씨(王氏)의 세 그루 홰나무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를 힘써야 할진저.
[주D-002]경이직내(敬以直內)하고 …… 주일무적(主一無適)하여 : 《주역》 곤괘(坤卦)에 “군자는 경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로써 행동을 바르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고 하였다. 《논어》 학이(學而)에서 공자가 천승(千乘)의 제후국을 통치하는 방법으로서 “그 일을 공경하고 인민들에게 신임을 얻어야 한다.〔敬事而信〕”고 했는데, 주자(朱子)의 주(註)에 “경이란 주일무적을 이른 것이다.〔敬者 主一無適之謂〕”라고 하였다. ‘주일무적’은 정신을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성리학에서 ‘경이직내’와 ‘주일무적’은 수양(修養) 방법을 나타내는 표어로 흔히 쓰였다.
[주D-003]판서공(判書公) : 연암과 교분이 있었으며 공조 판서ㆍ형조 판서를 지낸 이민보(李敏輔 : 1717~1799)가 아닌가 한다.
[주D-004]이른바 …… 마련이다 :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맹자가 제(齊) 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이른바 오래된 나라라는 것은 거기에 교목이 있다고 해서 이르는 것은 아니다. 대대로 이어져 온 공신들이 있기에 그렇게 이르는 것이다.〔所謂故國者 非謂有喬木之謂也 有世臣謂之也〕”라고 하였다. 연암의 말은 맹자의 이 말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주D-005]거경(居敬) : 경으로써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거경궁리(居敬窮理)는 성리학에서 수양과 학문의 요체로 간주되었다.
[주D-006]왕씨(王氏)의 세 그루 홰나무 : 송(宋) 나라 때 왕우(王祐)가 뜰에다 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서, “내 자손 가운데 반드시 삼공(三公)이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그 후에 아들 왕단(王旦)이 정승이 되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삼괴왕씨(三槐王氏)’라 하였다. 《宋史 卷282 王旦傳》 삼괴(三槐)는 주 나라 때 삼공이 천자에게 조회할 때 궁정 뜰의 세 그루 홰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었으므로 ‘삼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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