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전(馬駔傳)
말 거간꾼이나 집주릅이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짓이나, 관중(管仲)과 소진(蘇秦)이 닭ㆍ개ㆍ말ㆍ소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던 일은 신뢰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어렴풋이 헤어지잔 말만 들어도 가락지를 벗어던지고 수건을 찢어 버리고 등잔불을 돌아앉아 벽을 향하여 고개를 떨구고 울먹거리는 것은 믿을 만한 첩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요, 가슴속의 생각을 다 내보이면서 손을 잡고 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믿을 만한 친구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콧잔등〔準〕 - 음은 ‘절(巀)’이다. - 까지 부채로 가리고 좌우로 눈짓을 하는 것은 거간꾼들의 술책이며, 위협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을 뒤흔들고 상대가 꺼리는 곳을 건드려 속을 떠보며 강한 상대에겐 협박을 하고 약한 상대는 짓눌러서 동맹한 나라들을 흩어 버리거나 분열된 나라들을 통합하게 하는 것은 패자(覇者)와 유세가들이 이간하고 농락하는 권모술수이다.
옛날에 가슴앓이 하는 이가 있어, 아내를 시켜 약을 달이게 하였는데 그 양이 많았다 적었다 들쑥날쑥하였으므로 노하여 첩을 시켰더니, 그 양이 항상 적당하였다. 그 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창구멍을 뚫고 엿보았더니, 많으면 땅에 버리고 적으면 물을 더 붓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첩이 양을 적당하게 맞추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귀에 대고 소근거리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니요,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은 깊은 사귐이 아니요, 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것은 훌륭한 벗이 아니다.
송욱(宋旭), 조탑타(趙闒拖), 장덕홍(張德弘)이 광통교(廣通橋) 위에서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탑타가 말하기를,
하니, 송욱이 말하기를,
하였다. 덕홍이 말하기를,
하니, 송욱이 말하기를,
하니, 덕홍이 말하기를,
하였다. 송욱이 말하기를,
하였다. 탑타가 덕홍에게 묻기를,
하니, 덕홍이 말하기를,
하였다.
탑타가 말하기를,
하니, 덕홍이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기를,
하였다. 탑타가 발끈하여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하고서 이에 서로 의관을 찢어 버리고 때묻은 얼굴과 덥수룩한 머리에 새끼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저자에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골계선생(滑稽先生)은 우정론(友情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무를 붙이자면 생선 부레를 녹여서 붙이고, 쇠를 붙이자면 붕사(鵬砂)를 녹여서 붙이고, 사슴이나 말의 가죽을 붙이자면 멥쌀밥〔粳飯〕을 이겨서 붙이는 것보다 단단한 것이 없음을 내 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사귐에 있어서는 떨어진 틈이란 것이 있다. 연(燕) 나라와 월(越) 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요, 산천(山川)이 가로막고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무릎을 맞대고 함께 앉아 있다 하여 반드시 밀접한 사이가 아니요, 어깨를 치고 소매를 붙잡는 관계라 하여 반드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이에도 틈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상앙(商鞅)이 장황한 말을 늘어놓자 효공(孝公)이 꾸벅꾸벅 졸았고, 범저(范雎)가 성내지 않았다면 채택(蔡澤)이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와서 상앙을 꾸짖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으며, 채택의 말을 전하여 범저가 화를 내도록 만든 사람이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공자(公子) 조승(趙勝 평원군(平原君))이 소개의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성안후(成安侯 진여(陳餘))와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은 사귐에 있어 조금의 틈도 없이 너무나 절친하게 지냈으므로, 그들 사이에 한번 틈이 생기자 누구도 그들을 위해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중히 여길 것은 틈이 아니고 무엇이며, 두려워할 것도 틈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첨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영합하는 것이요, 참소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이간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사귀는 이는 먼저 그 틈을 잘 이용하고, 사람을 잘 사귈 줄 모르는 이는 틈을 이용할 줄 모른다.
성격이 강직한 사람은 외골수여서 자신을 굽히고 남에게 나아가지도 않고 우회적으로 말을 하지도 않으며, 한번 말을 꺼냈다가 의견이 합치하지 않으면 남이 이간질하지 않아도 제풀에 막히고 만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찍고 또 찍어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어디 있으리.”라고 했으며, “아랫목에 잘 보이기보다는 아궁이에 잘 보여라.”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아첨을 전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몸을 정제(整齊)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스레 하고 명예와 이익에 담담하며 상대와 사귀려는 마음이 없는 척함으로써 저절로 아첨을 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다음으로 바른 말을 간곡하게 하여 자신의 속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잘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말굽이 닳도록 조석(朝夕)으로 문안(問安)하며 돗자리가 떨어지도록 뭉개 앉아, 상대방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살펴서, 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다 좋다 하고 그 사람이 행하는 것마다 다 칭송한다면, 처음 들을 때에야 좋아하겠지만 오래 들으면 도리어 싫증이 난다. 싫증이 나면 비루하게 여기게 되어, 마침내는 자기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첨(下諂)이다.
관중(管仲)이 제후(諸侯)를 여러 번 규합하였고, 소진(蘇秦)이 육국(六國)을 합종(合縱)시켰으니 천하의 큰 사귐이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걸식을 하고 덕홍은 저자에서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다니면서도 오히려 말 거간꾼의 술수를 부리지 않았거늘, 하물며 군자로서 글 읽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滑稽先生友情論曰。續木吾知其膠魚肺也。接鐵吾知其鎔鵬砂也。附鹿馬之皮。莫緻乎糊粳飯。至於交也。介然有閒。燕越之遠也非閒也。山川閒之非閒也。促膝聯席非接也。拍肩摻袂非合也。有閒於其閒。衛鞅張皇。孝公時睡。應侯不怒。蔡澤噤喑。故出而讓之。必有其人也。宣言怒之。必有其人也。趙勝公子爲之佋介。夫成安侯常山王。其交無間。故一有間焉。莫能爲之間焉。故可愛非閒。可畏非間。諂由閒合。讒由閒離。故善交人者。先事其間。不善交人者。無所事間。夫直則逕矣。不委曲而就之。不宛轉而爲之。一言而不合。非人離之。己自阻也。故鄙諺有之曰。伐樹伐樹。十斫無蹶。與其媚於奧。寧媚於竈。其此之謂歟。故導諛有術。飭躬修容。發言愷悌。澹泊名利。無意交遊。以自獻媚。此上諂也。其次讜言款款。以顯其情。善事其間。以通其意。此中諂也。穿馬蹄。弊薦席。仰唇吻。俟顔色。所言則善之。所行則美之。初聞則喜。久則反厭。厭則鄙之。乃疑其玩己也。此下諂也。夫管仲九合諸侯。蘇秦從約六國。可謂天下之大交矣。然而宋旭闒拖乞食於道。德弘狂歌於市。猶不爲馬駔之術。而况君子而讀書者乎。
[주D-002]닭 …… 일 : 고대 중국에서 동맹을 맺을 때 천자는 입가에 말이나 소의 피를 바르고, 제후는 개나 돼지의 피를 바르고, 대부 이하는 닭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다.
[주D-003]콧잔등〔準〕 : ‘準’ 자를 콧잔등이란 뜻으로 쓸 때는 ‘절’이라 읽는다.
[주D-004]상대가 …… 떠보며 : 원문은 ‘餂情投忌’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선비가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을 하면, 이는 말로써 속을 떠보는 것이다.〔士未可以言而言 是以言餂之〕”라고 비판하였다. 투기(投忌)는 ‘쥐 잡으려 해도 그릇 깨뜨릴까 봐 꺼려진다.〔投鼠忌器〕’는 말의 준말이다.
[주D-005]송욱(宋旭) : 《연암집》 권7 염재기(念齋記)에 의하면, 송욱은 당시 한양에 실존했던 기인(奇人)이었다.
[주D-006]광통교(廣通橋) : 한양 중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다리. 광교(廣橋)라고도 한다. 청계천에 놓인 다리 중 가장 큰 다리였다.
[주D-007]구름이 나왔다고 흥얼대고 : 무심한 체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하게 산굴에서 나오고〔雲無心以出岫〕”라는 구절이 있다.
[주D-008]벽에 …… 있더군요 : 원문은 ‘壁上觀畵’인데,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의 군대가 거록(鉅鹿)에서 진(秦) 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 다른 제후의 장수들이 성벽 위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던 고사에서 나온 ‘벽상관전(壁上觀戰)’이란 성어의 패러디이다. 역시 무심한 체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주D-009]팔이 …… 때문이지 : 우리나라 속담이다. 이덕무(李德懋)의 《열상방언(洌上方言)》에는 “술잔 잡은 팔은 밖으로 굽지 않는다.〔把盃腕 不外卷〕”라고 소개되었다. 《靑莊館全書 卷62》
[주D-010]우는 …… 같이한다 : 《주역(周易)》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의 효사(爻辭)이다. 따라서 인용상 실수를 범했거나, 아니면 이를 《시경》의 일시(逸詩)로 간주한 듯하다.
[주D-011]가족에 …… 법이다 : 《주역》 가인괘(家人卦) 구삼(九三)의 효사에 “가족을 호되게 다루었으나 엄격함을 뉘우치면 길하니라.〔家人嗃嗃 悔厲 吉〕”라고 하였다.
[주D-012]골계선생(滑稽先生)은 …… 말했다 : 골계선생은 작가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 인물이다. 따라서 우정론 역시 실제로는 작가가 지은 글이다. 골계란 풍자나 궤변(詭辯)을 잘한다는 뜻이니,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
[주D-013]멥쌀밥〔粳飯〕 : 찹쌀밥〔糯飯〕의 오류인 듯하다. 멥쌀은 차지지 않아 풀로 쓰기 어렵다.
[주D-014]상앙(商鞅)이 …… 졸았고 : 상앙이 진(秦) 나라 총신(寵臣)인 경감(景監)을 통해 진 효공을 만났는데, 첫 번째 만남에서 제도(帝道)에 대하여 유세하였더니 진 효공이 꾸벅꾸벅 졸았다. 이에 경감이 나와서 상앙을 꾸짖자 다음 만남에서는 왕도(王道)에 대해 말하였으나 이 또한 듣지 않았고, 다음에는 패도(覇道)에 대하여 말하자 차츰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강국(强國)에 대하여 말하자 효공이 매우 좋아하였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주D-015]범저(范雎)가 …… 것이다 : 채택(蔡澤)이 진 나라에 들어가 진 소왕(秦昭王)을 볼 목적으로 먼저 사람을 시켜 당시 승상인 범저에게 자신이 진왕을 만나면 승상의 자리를 빼앗게 될 것이라고 하여 범저를 노하게 만듦으로써 범저와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통해 진왕을 만났다. 《史記 卷79 范睢蔡澤列傳》
[주D-016]공자(公子) …… 하였다 : 진(秦) 나라 군대가 조(趙) 나라 수도를 포위하자 노중련(魯仲連)이 위(魏) 나라 장수 신원연(新垣衍)을 설득하여 조 나라를 돕도록 하겠노라고 자청했으므로, 공자 조승, 즉 평원군(平原君)이 노중련을 신원연에게 소개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일개 선비인 노중련이 위 나라 장수 신원연을 상대로 유세할 수 있었던 것은 평원군의 소개 덕분이었다는 뜻이지만, 탈문(脫文)이 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생략한 탓인지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다.
[주D-017]성안후(成安侯)와 …… 없었다 : 《사기》 권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에 자세히 나온다.
[주D-018]아랫목에 …… 보여라 : 《논어》 팔일(八佾)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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