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민옹전(閔翁傳)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31. 09:39

민옹전(閔翁傳)

 

민옹이란 이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무신년 난리에 출정하여 그 공으로 첨사(僉使)가 되었는데, 그 뒤로 집으로 물러나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옹(翁)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였다. 유독 옛사람들의 뛰어난 절개와 위대한 자취를 사모하여 강개(慷慨)히 분발하였으며, 그들의 전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7세 때에는 벽에다 큰 글씨로 “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라고 썼으며, 12세 때에는 “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고 하고, 13세 때에는 “외황(外黃) 고을 아이가 유세를 하였다.”고 썼으며, 18세 때에는 더욱 쓰기를 “곽거병(霍去病)이 기련산(祈連山)에 나갔다.”고 했으며, 24세 때에는 “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고 썼다. 40세가 되었으나 더욱더 이름을 날린 바가 없었기에 마침내 “맹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라고 크게 써 놓았다. 이렇게 해마다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벽이 다 온통 새까맣게 되었다. 70세가 되자 그의 아내가 조롱하기를,

“영감, 금년에는 까마귀를 그리려우?”

하니, 옹이 기뻐하며,

“당신은 빨리 먹을 가시오.”

하고, 마침내 크게 쓰기를,

하니, 그 아내가 더욱 화를 내면서,

“계책이 아무리 기발한들 장차 언제 쓰시려우?”

하니, 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옛날에 강 태공(姜太公)은 80살에 매가 날아오르듯이 용맹하였으니 지금 나는 그에 비하면 젊고 어린 아우뻘이 아니오?”

하였다.
계유ㆍ갑술년 간, 내 나이 17, 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彝器)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더욱더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이때 어떤 이가 나에게 민옹을 소개하면서, 그는 기이한 선비로서 노래를 잘하며 담론도 잘하는데 거침없고 기묘하여 듣는 사람마다 후련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기에,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 함께 와 달라고 청하였다.
옹이 찾아왔을 때 내가 마침 사람들과 풍악을 벌이고 있었는데, 옹은 인사도 하지 아니하고 물끄러미 피리 부는 자를 보고 있더니 별안간 그의 따귀를 갈기며 크게 꾸짖기를,

“주인은 즐거워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느냐?”

하였다. 내가 놀라 그 까닭을 물었더니, 옹이 말하기를,

“그놈이 눈을 부라리고 기를 쓰니 성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므로,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옹이 말하기를,

“어찌 피리 부는 놈만 성낼 뿐이겠는가. 젓대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리고 울 듯이 하고 있고 장구 치는 놈은 시름하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며 온 좌중은 입을 다문 채 크게 두려워하는 듯이 앉아 있고, 하인들은 마음대로 웃고 떠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러고서야 음악이 즐거울 리 없지.”

하기에, 나는 당장에 풍악을 걷어치우고 옹을 자리에 맞아들였다. 옹은 매우 작은 키에 하얀 눈썹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유신(有信)이며 나이는 73세라고 소개하고는 이내 나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병인가? 머리가 아픈가?”
“아닙니다.”
“배가 아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병이 든 게 아니구먼.”

그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마음속이 예전과는 아주 다르게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래서 옹에게 말하기를,

“저는 단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병입니다.”

했더니, 옹이 일어나서 나에게 축하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며,

“옹은 어찌하여 저에게 축하를 하는 것입니까?”

하니, 옹이 말하기를,

“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으니 재산이 남아돌 게고,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 사는 것이니 남보다 갑절 사는 턱이 아닌가.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갑절 살면 오복(五福) 중에 수(壽)와 부(富) 두 가지는 이미 갖춘 셈이지.”

하였다. 잠시 후 밥상을 들여왔다. 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음식을 들지 못한 채 이것저것 집어서 냄새만 맡고 있었더니, 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내가 놀라 옹에게 왜 화를 내고 떠나려 하는지 물었더니, 옹이 대답하기를,

“그대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식사를 차려 내오지 않고 혼자만 먼저 먹으려 드니 예(禮)가 아닐세.”

하였다. 내가 사과를 하고는 옹을 주저앉히고 빨리 식사를 차려 오게 하였더니 옹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 올린 다음 수저를 시원스레 놀려 먹어 대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돌고 막혔던 가슴과 코가 트이면서 예전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밤이 되자 옹은 눈을 내리감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였으나, 옹은 더욱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아 나는 꽤나 무료하였다. 이렇게 한참이 지나자 옹이 갑자기 일어나서 촛불을 돋우면서 하는 말이,

“내가 어릴 적에는 눈만 스쳐도 바로 외워 버렸는데 지금은 늙었소그려. 그대와 약속하여 평소에 못 보던 글을 두세 번 눈으로 읽어 보고 나서 외우기로 하세. 만약 한 자라도 틀리게 되면 약속대로 벌을 받기로 하세나.”

하기에, 나는 그가 늙었음을 업수이여겨,

“그렇게 합시다.”

하고서, 곧바로 서가 위에 놓인 《주례(周禮)》를 뽑아 들었다. 그래서 옹은 고공기(考工記)를 집어 들고 나는 춘관(春官)을 집어 들었는데 조금 지나자 옹이,

“나는 벌써 다 외웠네.”

하고 외쳤다. 그때 나는 한 번도 다 내리 읽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놀라서 옹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더니, 옹이 자꾸만 말을 걸고 방해를 하여 나는 더욱 외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잠이 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 옹에게 묻기를,

“어젯밤에 외운 것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옹이 웃으며,

“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를 않았다네.”

하였다.
하루는 옹과 더불어 밤에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옹이 좌객들을 조롱하기도 하고 매도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도 막아 낼 사람이 없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옹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여 옹에게 물었다.

“옹은 귀신을 본 일이 있소?”
“보았지.”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옹이 눈을 부릅뜨고 물끄러미 둘러보다가 손 하나가 등잔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외치면서,

“귀신이 저기 있지 않소.”

하였다. 그 손이 노하여 따져 들자,

“밝은 데 있는 것은 사람이요, 껌껌한 데 있는 것은 귀신인데, 지금 어두운 데 앉아 밝은 데를 보고 제 몸을 감추고 사람들을 엿보고 있으니, 귀신이 아니고 무엇이오.”

하니,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손이 또 물었다.

“옹은 신선을 본 일이 있소?”
“보았지.”
“신선이 어디에 있던가요?”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지.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옹은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을 보았소?”
“보았지. 내가 아침나절 숲 속에 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서로 나이가 많다고 다투고 있더군. 토끼가 두꺼비에게 하는 말이 ‘나는 팽조(彭祖)와 동갑이니 너는 나보다 늦게 태어났다.’ 하니, 두꺼비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더군. 토끼가 놀라 ‘너는 왜 그처럼 슬퍼하느냐?’ 하고 물으니, 두꺼비가 말했지. ‘나는 동쪽 이웃집의 어린애와 동갑인데 그 어린애가 5살 먹어서 글을 배우게 되었지. 그 애는 목덕(木德)으로 태어나서 섭제격(攝提格 인년(寅年))으로 왕조의 기년(紀年)을 시작한 이래 여러 왕대를 거치다가, 주(周) 나라의 왕통(王統)이 끊어짐으로써 순수한 역서(曆書) 한 권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진(秦) 나라로 이어졌으며, 한(漢) 나라와 당(唐) 나라를 거친 다음 아침에는 송(宋) 나라, 저녁에는 명(明) 나라를 거쳤지. 그러는 동안에 갖가지 일을 다 겪으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으며, 죽은 이를 조문하기도 하고 장례를 치르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루하게 이어져 왔지. 그런데도 귀와 눈이 밝고 이와 머리털이 갈수록 자라나니, 나이가 많기로는 그 어린애만 한 자가 없겠지. 팽조는 기껏 800살 살고 요절하여 시대를 겪은 것도 많지 않고 일을 겪은 것도 오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나는 슬퍼한 것이다.’ 토끼가 이 말을 듣고는 거듭 절하고 뒤로 물러나 달아나면서 ‘너는 내 할아버지뻘이다.’ 하였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될 걸세.”
“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보았소?”
“보았지. 달이 하현(下弦)이 되어 조수(潮水)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염전을 만들고 소금흙을 굽는데, 알갱이가 거친 것은 수정염(水晶鹽)이 되고 가는 것은 소금염(素金鹽)이 된다네. 온갖 음식 맛을 내는 데에 소금 없이 되겠는가?”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불사약(不死藥)만은 옹도 못 보았을 것입니다.”

하니, 옹이 빙그레 웃으며,

“그거야 내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깊은 골짜기의 반송(盤松)에 맺힌 감로(甘露)가 땅에 떨어져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靈)이 되지. 삼(蔘)은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이 으뜸인데 모양이 단아하고 붉은빛을 띠며, 사지를 다 갖추고 동자처럼 쌍상투를 틀고 있지. 구기자(枸杞子)는 천 년이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 하네. 내가 이것들을 먹은 다음 백 일가량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지냈더니 숨이 차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네. 이웃 할머니가 와서 보고는 한숨을 지으며 하는 말이, ‘그대는 주림병이 들었소. 옛날 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을 맛본 다음에야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였소. 무릇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이 되고 주림병을 고치는 것은 밥이 되니, 그대의 병은 오곡이 아니면 낫지 못하오.’ 하고는 밥을 지어 먹여 주는 바람에 죽지 않았지. 불사약으로는 밥만 한 것이 없네. 나는 아침에 밥 한 사발 저녁에 밥 한 사발로 지금껏 이미 70여 년을 살았다네.”

하였다.
민옹은 말을 할 때면 장황하면서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어느 것 하나 곡진히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그 속에는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그는 달변가라 할 만하다. 손이 옹에게 물을 말이 다하여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이 올라 하는 말이,

“옹도 역시 두려운 것을 보았습니까?”

하니, 옹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만 한 것이 없다네. 내 오른 눈은 용이 되고 왼 눈은 범이 되며, 혀 밑에는 도끼가 들었고 팔목은 활처럼 휘었으니, 깊이 잘 생각하면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겠으나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되놈이 되고 만다네.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장차 제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쳐 죽이거나 베어 버릴 것이야. 이 때문에 성인은 사심(私心)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 것이며 사악함을 막아 진실된 자신을 보존한 것이니,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네.”

하였다.
수십 가지 난제(難題)를 물어보아도 모두 메아리처럼 재빨리 대답해 내 끝내 아무도 그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추어올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 반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롱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옹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어도 옹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누가 말하기를,

“황해도는 황충(蝗蟲)이 들끓어 관에서 백성을 독려하여 잡느라 야단들입니다.”

하자, 옹이,

“황충을 뭐 하려고 잡느냐?”

하고 물었다.

“이 벌레는 크기가 첫잠 잔 누에보다도 작으며, 색깔은 알록달록하고 털이 나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것을 명(螟)이라 하고 볏줄기에 기어오르는 것을 모(蟊)라 하는데, 우리의 벼농사에 피해를 주므로 이를 멸구〔滅穀〕라 부릅니다. 그래서 잡아다가 파묻을 작정이지요.”

하니, 옹이 말하기를,

“이런 작은 벌레들은 근심할 거리도 못 된다네. 내가 보기에 종루(鐘樓) 앞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황충이오. 길이는 모두 7척 남짓이고, 머리는 까맣고 눈은 반짝거리고 입은 커서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인데,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줄줄이 몰려다니며 곡식이란 곡식은 죄다 해치우는 것이 이것들만 한 것이 없더군. 그래서 내가 잡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큰 바가지가 없어 아쉽게도 잡지를 못했네.”

하였다.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말로 이러한 벌레가 있는 줄 알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하루는 옹이 오고 있기에, 나는 멀찍이 바라보다가 은어(隱語)로 ‘춘첩자방제(春帖子狵啼)’라는 글귀를 써서 보였더니, 옹이 웃으며,

“춘첩자(春帖子)란 문(門)에 붙이는 글월〔文〕이니 바로 내 성 민(閔)이요, 방(狵)은 늙은 개를 지칭하니 바로 나를 욕하는 것이구먼. 그 개가 울면 듣기가 싫은데, 이 또한 나의 이가 다 빠져 말소리가 분명치 않은 것을 비꼰 것이로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대가 늙은 개를 무서워한다면 개 견(犬) 변을 떼어 버리면 될 것이고, 또 우는 소리가 싫으면 그 입 구(口)변을 막아 버리면 그만이지. 무릇 제(帝)란 조화를 부리고 방(尨)은 큰 물건을 가리키니, 제(帝) 자에 방(尨) 자를 붙이면 조화를 일으켜 큰 것이 되니 바로 용(용)이라네. 그렇다면 이는 그대가 나를 욕한 것이 아니라, 그만 나를 크게 칭송한 것이 되어 버렸구먼.”

하였다.
다음 해에 옹이 죽었다. 옹이 비록 엉뚱하고 거침없이 살았지만 천성이 곧고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한 데다, 《주역(周易)》에 밝고 노자(老子)의 말을 좋아하였으며, 책이란 책은 안 본 것이 없었다 한다. 두 아들이 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은 받지 못했다.
금년 가을에 나의 병이 도졌으나, 이제는 더 이상 민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나와 함께 주고받은 은어와 우스갯소리, 담론(談論)과 풍자 등을 기록하여 민옹전을 지었으니, 때는 정축년(1757, 영조 33) 가을이다.
나는 민옹을 위하여 뇌문(誄文 추도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아아! 민옹이시여 / 嗚呼閔翁
괴상하고 기이하기도 하며 / 可怪可奇
놀랍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 可驚可愕
기뻐함직도 하고 성냄직도 하며 / 可喜可怒
게다가 밉살스럽기도 하구려 / 而又可憎
벽에 그린 까마귀 / 壁上烏
매가 되지 못하였듯이 / 未化鷹
옹은 뜻 있는 선비였으나 / 翁蓋有志士
늙어 죽도록 포부를 펴지 못했구려 / 竟老死莫施
내가 그대 위해 전을 지었으니 / 我爲作傳
아아! 죽어도 죽지 않았구려 / 嗚呼死未曾

 

閔翁者。南陽人也。戊申軍興從征功授僉使。後家居。遂不復仕。翁幼警悟聰給。獨慕古人奇節偉跡。慷慨發憤。每讀其一傳。未甞不歎息泣下也。七歲大書其壁曰。項槖爲師。十二。書甘羅爲將。十三。書外黃兒遊說。十八。益書去病出祈連。二十四。書項籍渡江。至四十。益無所成名。乃大書曰孟子不動心。年年書益不倦。壁盡黑。及年七十。其妻嘲曰。翁今年畵烏未。翁喜曰。若疾磨墨。遂大書曰范增好奇計。其妻益恚曰。計雖奇將幾時施乎。翁笑曰。昔呂尙八十鷹揚。今翁視呂尙猶少弱弟耳。歲癸酉甲戌之間。余年十七八。病久困劣。留好聲歌。書畵古釖。琴彛器諸雜物。益致客。俳諧古譚。慰心萬方。無所開其幽鬱。有言閔翁奇士。工歌曲。善譚辨。俶恠譎恢。聽者人無不爽然意豁也。余聞甚喜。請與俱至。翁來而余方與人樂。翁不爲禮。熟視管者。批其頰大罵曰。主人懽。汝何怒也。余驚問其故。翁曰。彼瞋目而盛氣。匪怒而何。余大笑。翁曰。豈獨管者怒也。笛者反面若啼。缶者嚬若愁。一座默然。若大恐。僮僕忌諱笑語。樂不可爲歡也。余遂立撤去。延翁坐。翁殊短小。白眉覆眼。自言名有信。年七十三。因問余君何病。病頭乎。曰不。曰病腹乎。曰不。曰然則君不病也。遂闢戶揭牖。風來颼然。余意稍豁。甚異昔者也。謂翁吾特厭食。夜失睡。是爲病也。翁起賀。余驚曰。翁何賀也。曰君家貧。幸厭食。財可羡也。不寐則兼夜。幸倍年。財羡而年倍。壽且富也。須臾飯至。余呻蹙不擧。揀物而嗅。翁忽大怒。欲起去。余驚問翁何怒去也。翁曰。君招客。不爲具。獨自先飯。非禮也。余謝留翁。且促爲具食。翁不辭讓。腕肘呈袒。匙箸磊落。余不覺口津。心鼻開張。乃飯如舊。夜翁闔眼端坐。余要與語。翁益閉口。余殊無聊。久之翁忽起。剔燭謂曰。吾年少時。過眼輒誦。今老矣。與君約生平所未見書。各默涉三再乃誦。若錯一字。罰如契誓。余侮其老曰諾。卽抽架上周禮。翁拈考工。余得春官。小閒。翁呼曰。吾已誦。余未及下一遍。驚止。翁且居。翁語侵頗困。而余益不能誦。思睡乃睡。天旣明。問翁能記宿誦乎。翁笑曰。吾未甞誦。甞與翁夜語。翁弄罵坐。客人莫能難。有欲窮翁者。問翁見鬼乎。曰見之。鬼何在。翁瞠目熟視。有一客坐燈後。遂大呼曰。鬼在彼。客怒詰翁。翁曰。夫明則爲人。幽則爲鬼。今者處暗而視明。匿形而伺人。豈非鬼乎。一座皆笑。又問翁見仙乎。曰見之。仙何在。曰家貧者仙耳。富者常戀世。貧者常厭世。厭世者非仙耶。翁能見長年者乎。曰見之。吾朝日入林中。蟾與兎爭長。兎謂蟾曰。吾與彭祖同年。若乃晩生也。蟾俛首而泣。兎驚問曰。若乃若悲也。蟾曰。吾與東家孺子同年。孺子五歲乃知讀書。生于木德。肇紀攝提。迭王更帝。統絶王春。純成一曆。乃閏于秦。歷漢閱唐。暮朝宋明。竆事更變。可喜可驚。吊死送往。支離于今。然而耳目聰明。齒髮日長。長年者乃莫如孺子。而彭祖乃八百歲。蚤夭閱世。不多更事。未久吾是以悲耳。兎乃再拜郤走曰。若乃大父行也。由是觀之。讀書多者。最壽耳。翁能見味之至者乎。曰見之。月之下弦。潮落步土。耕而爲田。煑其斥鹵。粗爲水晶。纖爲素金。百味齊和。孰爲不鹽。皆曰善。然不死藥。翁必不見也。翁笑曰。此吾朝夕常餌者。惡得而不知。大壑松盤甘露。其零入地千年。化爲茯霛。蔘伯羅產。形端色紅。四體俱備。雙紒如童。枸杞千歲。見人則吠。吾甞餌之。不復飮食者。葢百日。喘喘然將死。鄰媼來視歎曰。子病饑也。昔神農氏甞百草。始播五糓。夫效疾爲藥。療饑爲食。非五糓。將不治。遂飯稻粱而餌之。得以不死。不死藥。莫如飯。吾朝一盂。夕一盂。今已七十餘年矣。翁甞支離其辭。遷就而爲之。莫不曲中內含譏諷。葢辯士也。客索問。無以復詰。乃忿然曰。翁亦見畏乎。翁默然良久。忽厲聲曰。可畏者莫吾若也。吾右目爲龍。左目爲虎。舌下藏斧。彎臂如弓。念則赤子差爲夷戎。不戒則將自噉自齧自戕自伐。是以聖人克己復禮。閑邪存誠。未甞不自畏也。語數十難。皆辨捷如響。竟莫能窮。自贊自譽。嘲傲旁人。人皆絶倒。而翁顔色不變。或言海西蝗官。督民捕之。翁問捕蝗何爲。曰是虫也。小於眠蚕。色斑而毛。飛則爲螟。緣則爲蟊。害我稼穡。號爲滅糓。故將捕而瘞之耳。翁曰。此小虫不足憂。吾見鍾樓塡道者皆蝗耳。長皆七尺餘。頭黔目熒。口大運拳。咿啞偊旅。蹠接尻連。損稼殘糓。無如是曹。我欲捕之。恨無大匏。左右皆大恐。若眞有是虫然。一日翁來余望而爲隱曰。春帖子狵啼。翁笑曰。春帖子榜門之文。乃吾姓也。狵老犬。乃辱我也。啼則厭聞。吾齒豁。音嵲兀也。雖然。君若畏狵。莫如去犬。若又厭啼。且塞其口。夫帝者造化也。尨者。大物也。著帝傅尨。化而爲大。其惟乎。君非能辱我也。乃反善贊我也。明年翁死。翁雖恢奇俶蕩。性介直樂善。明於易。好老子之言。於書葢無所不窺云。二子皆登武科未官。今年秋。余又益病而閔翁不可見。遂著其與余爲隱俳詼。言談譏諷。爲閔翁傳。歲丁丑秋也。余誄閔翁曰。嗚呼閔翁。可恠可奇。可驚可愕。可喜可怒。而又可憎。壁上烏未化鷹。翁盖有志士。竟老死莫施。我爲作傳。嗚呼死未曾。





 

[주D-001]무신년 난리 :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가리킨다.
[주D-002]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 항탁은 7세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감라(甘羅)가 여불위(呂不偉)를 설득하면서 한 말이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3]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 이본에는 ‘승상〔相〕이 되었다’로 되어 있다. 여불위는 진(秦) 나라 장수 장당(張唐)이 연(燕) 나라 승상으로 부임하기를 바랐으나, 장당이 이를 거부하자 감라가 그를 대신하여 장당을 설득하고 조(趙) 나라에 가서 유세한 것을 말한다. 감라는 진 나라 명장 감무(甘茂)의 손자로 여불위의 가신(家臣)이었다. 여불위에게 등용되어 12세에 조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조 나라를 설득하여 5개의 성을 할양받고 연 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영토를 획득하였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4]외황(外黃) …… 하였다 : 항우가 진류(陳留)의 외항을 공격하였는데 외항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 며칠 후 항복하자 항우가 노하여 15세 이상 남자들을 성의 동쪽에다 파묻으려 하였다. 이에 외황 영(外黃令) 사인(舍人)의 13세 된 아들이 항우에게 유세하여 외황 백성들을 살렸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5]곽거병(霍去病)이 …… 나갔다 : 곽거병이 18세에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표요교위(剽姚校尉)가 되어 흉노족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련산에까지 출정하여 공을 세운 것은 그가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된 21세 때의 일이다. 기련산은 중국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 경계에 있는 고산(高山)이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太平寰宇記 卷191 匈奴篇》
[주D-006]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 항우는 24세 때 처음 기병(起兵)하여, 진(秦) 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조왕(趙王)을 구하기 위해 오강(烏江)을 건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7]맹자는 …… 않았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나는 40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我四十不動心〕”고 하였다.
[주D-008]범증(范增)이 …… 좋아하였다 : 범증은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여, 나이 70세 때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을 찾아가 진(秦)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9]옛날에 …… 용맹하였으니 :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태사(太師) 상보(尙父)는 당시 매가 날아오르는 듯하였네.〔維師尙父 時維鷹揚〕”라는 구절이 있다. 강 태공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 나라를 정벌한 사실을 가리킨다. 단 그때 그의 나이가 80살이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설인지 알 수 없다.
[주D-010]계유ㆍ갑술년 간 : 영조 29년(1753)과 영조 30년(1754)이다.
[주D-011]지금 : 원문은 ‘今者’인데, 이본에는 ‘今子’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지금 그대는’ 이다.
[주D-012]팽조(彭祖) : 800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등에 소개되어 있다.
[주D-013]너는 …… 슬퍼하느냐 : 원문은 ‘若乃若悲也’인데, 이본에는 ‘若乃何悲也’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너는 어째서 슬퍼하느냐?’이다.
[주D-014]목덕(木德)으로 …… 이래 : 《십팔사략(十八史略)》 첫머리에, “천황씨(天皇氏)는 목덕으로 왕이 되니 세성(歲星 : 목성)이 섭제(攝提), 즉 인방(寅方)에 나타났다.”라고 하였는데, 《십팔사략》에서는 천황씨를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전 중국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초학(初學) 역사 교과서인 《십팔사략》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주D-015]주(周) 나라의 …… 이루어졌고 : 상고(上古)부터 주 나라 때까지의 정통 왕조의 역사를 섭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춘추(春秋)》에서는 일 년의 첫 달을 “춘(春) 왕정월(王正月)”이라 표기하여 주 나라의 왕통을 받들고 있음을 나타냈다. 순수한 역서란 《춘추》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16]마침내 …… 이어졌으며 : 원문은 ‘乃閏于秦’이다. 진 나라와 같이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왕조는 윤달과 같다고 해서 윤통(閏統)이라 폄하(貶下)한다.
[주D-017]팽조는 …… 요절하여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요절한 아이보다 더 오래 산 자가 없으니, 그에 비하면 팽조도 요절한 셈이다.〔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라고 하였다.
[주D-018]반송(盤松)에 …… 되지 : 복령(茯靈)은 곧 버섯의 일종인 복령(茯苓)을 말한다. 송진〔松脂〕이 땅에 스민 지 천 년이 되면 변하여 복령이 되고, 복령이 변하여 호박(琥珀)이 된다고 한다. 《廣東通志 卷52 寶》
[주D-019]삼(蔘)은 …… 으뜸인데 : 원문은 ‘蔘伯羅産’인데, 우리나라 인삼 중에서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을 나삼(羅蔘)이라 하고, 영동(嶺東)에서 나는 것을 산삼(山蔘)이라 하며, 강계(江界)에서 나는 것을 강삼(江蔘)이라 하고, 집에서 재배하는 것을 가삼(家蔘)이라 한다. 《心田考 3 應求漫錄》
[주D-020]동자처럼 …… 있지 : 쌍상투〔雙紒〕는 고대 중국의 예법에 따른 남녀 아동의 머리 모양이다. 《居家雜服攷 卷3 幼服》 조선 시대의 아동은 변발(辮髮)을 하고 있었는데, 연암은 정온(鄭蘊)이나 송시열 등의 선구적 시도를 계승하여 이를 쌍상투로 개혁하고 싶어했다. 《過庭錄》
[주D-021]이리저리 둘러대지만 : 원문은 ‘遷就而爲之’이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서, 대신(大臣)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그에게 분명히 죄가 있어도 그 죄상(罪狀)을 직접 가리켜 말하지 않고 “둘러대어 말함으로써 이를 덮어 준다.〔遷就而爲之諱也〕”고 하였다.
[주D-022]내 …… 되며 : 위엄이 있거나 무시무시한 모습을 용정호목(龍睛虎目)이라 한다.
[주D-023]갓난아기처럼 …… 보존하겠으나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그의 갓난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주D-024]사심(私心)을 …… 것이니 : 원문은 ‘克己復禮 閑邪存誠’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고, 한사존성(閑邪存誠)은 《주역》 건괘(乾卦) 풀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주D-025]용()이라네 : ‘龍’ 자를 ‘’ 자로 쓰기도 한다. 원래는 얼룩덜룩할 ‘망’ 자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