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옹전(閔翁傳)
민옹이란 이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무신년 난리에 출정하여 그 공으로 첨사(僉使)가 되었는데, 그 뒤로 집으로 물러나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옹(翁)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였다. 유독 옛사람들의 뛰어난 절개와 위대한 자취를 사모하여 강개(慷慨)히 분발하였으며, 그들의 전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7세 때에는 벽에다 큰 글씨로 “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라고 썼으며, 12세 때에는 “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고 하고, 13세 때에는 “외황(外黃) 고을 아이가 유세를 하였다.”고 썼으며, 18세 때에는 더욱 쓰기를 “곽거병(霍去病)이 기련산(祈連山)에 나갔다.”고 했으며, 24세 때에는 “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고 썼다. 40세가 되었으나 더욱더 이름을 날린 바가 없었기에 마침내 “맹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라고 크게 써 놓았다. 이렇게 해마다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벽이 다 온통 새까맣게 되었다. 70세가 되자 그의 아내가 조롱하기를,
하니, 옹이 기뻐하며,
하고, 마침내 크게 쓰기를,
하니, 그 아내가 더욱 화를 내면서,
하니, 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하였다.
계유ㆍ갑술년 간, 내 나이 17, 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彝器)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더욱더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이때 어떤 이가 나에게 민옹을 소개하면서, 그는 기이한 선비로서 노래를 잘하며 담론도 잘하는데 거침없고 기묘하여 듣는 사람마다 후련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기에,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 함께 와 달라고 청하였다.
옹이 찾아왔을 때 내가 마침 사람들과 풍악을 벌이고 있었는데, 옹은 인사도 하지 아니하고 물끄러미 피리 부는 자를 보고 있더니 별안간 그의 따귀를 갈기며 크게 꾸짖기를,
하였다. 내가 놀라 그 까닭을 물었더니, 옹이 말하기를,
하므로,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옹이 말하기를,
하기에, 나는 당장에 풍악을 걷어치우고 옹을 자리에 맞아들였다. 옹은 매우 작은 키에 하얀 눈썹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유신(有信)이며 나이는 73세라고 소개하고는 이내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마음속이 예전과는 아주 다르게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래서 옹에게 말하기를,
했더니, 옹이 일어나서 나에게 축하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며,
하니, 옹이 말하기를,
하였다. 잠시 후 밥상을 들여왔다. 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음식을 들지 못한 채 이것저것 집어서 냄새만 맡고 있었더니, 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내가 놀라 옹에게 왜 화를 내고 떠나려 하는지 물었더니, 옹이 대답하기를,
하였다. 내가 사과를 하고는 옹을 주저앉히고 빨리 식사를 차려 오게 하였더니 옹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 올린 다음 수저를 시원스레 놀려 먹어 대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돌고 막혔던 가슴과 코가 트이면서 예전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밤이 되자 옹은 눈을 내리감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였으나, 옹은 더욱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아 나는 꽤나 무료하였다. 이렇게 한참이 지나자 옹이 갑자기 일어나서 촛불을 돋우면서 하는 말이,
하기에, 나는 그가 늙었음을 업수이여겨,
하고서, 곧바로 서가 위에 놓인 《주례(周禮)》를 뽑아 들었다. 그래서 옹은 고공기(考工記)를 집어 들고 나는 춘관(春官)을 집어 들었는데 조금 지나자 옹이,
하고 외쳤다. 그때 나는 한 번도 다 내리 읽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놀라서 옹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더니, 옹이 자꾸만 말을 걸고 방해를 하여 나는 더욱 외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잠이 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 옹에게 묻기를,
하니, 옹이 웃으며,
하였다.
하루는 옹과 더불어 밤에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옹이 좌객들을 조롱하기도 하고 매도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도 막아 낼 사람이 없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옹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여 옹에게 물었다.
옹이 눈을 부릅뜨고 물끄러미 둘러보다가 손 하나가 등잔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외치면서,
하였다. 그 손이 노하여 따져 들자,
하니,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손이 또 물었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하니, 옹이 빙그레 웃으며,
하였다.
민옹은 말을 할 때면 장황하면서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어느 것 하나 곡진히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그 속에는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그는 달변가라 할 만하다. 손이 옹에게 물을 말이 다하여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이 올라 하는 말이,
하니, 옹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하였다.
수십 가지 난제(難題)를 물어보아도 모두 메아리처럼 재빨리 대답해 내 끝내 아무도 그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추어올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 반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롱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옹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어도 옹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누가 말하기를,
하자, 옹이,
하고 물었다.
하니, 옹이 말하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말로 이러한 벌레가 있는 줄 알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하루는 옹이 오고 있기에, 나는 멀찍이 바라보다가 은어(隱語)로 ‘춘첩자방제(春帖子狵啼)’라는 글귀를 써서 보였더니, 옹이 웃으며,
하였다.
다음 해에 옹이 죽었다. 옹이 비록 엉뚱하고 거침없이 살았지만 천성이 곧고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한 데다, 《주역(周易)》에 밝고 노자(老子)의 말을 좋아하였으며, 책이란 책은 안 본 것이 없었다 한다. 두 아들이 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은 받지 못했다.
금년 가을에 나의 병이 도졌으나, 이제는 더 이상 민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나와 함께 주고받은 은어와 우스갯소리, 담론(談論)과 풍자 등을 기록하여 민옹전을 지었으니, 때는 정축년(1757, 영조 33) 가을이다.
나는 민옹을 위하여 뇌문(誄文 추도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아아! 민옹이시여 / 嗚呼閔翁
괴상하고 기이하기도 하며 / 可怪可奇
놀랍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 可驚可愕
기뻐함직도 하고 성냄직도 하며 / 可喜可怒
게다가 밉살스럽기도 하구려 / 而又可憎
벽에 그린 까마귀 / 壁上烏
매가 되지 못하였듯이 / 未化鷹
옹은 뜻 있는 선비였으나 / 翁蓋有志士
늙어 죽도록 포부를 펴지 못했구려 / 竟老死莫施
내가 그대 위해 전을 지었으니 / 我爲作傳
아아! 죽어도 죽지 않았구려 / 嗚呼死未曾
[주D-002]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 항탁은 7세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감라(甘羅)가 여불위(呂不偉)를 설득하면서 한 말이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3]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 이본에는 ‘승상〔相〕이 되었다’로 되어 있다. 여불위는 진(秦) 나라 장수 장당(張唐)이 연(燕) 나라 승상으로 부임하기를 바랐으나, 장당이 이를 거부하자 감라가 그를 대신하여 장당을 설득하고 조(趙) 나라에 가서 유세한 것을 말한다. 감라는 진 나라 명장 감무(甘茂)의 손자로 여불위의 가신(家臣)이었다. 여불위에게 등용되어 12세에 조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조 나라를 설득하여 5개의 성을 할양받고 연 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영토를 획득하였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4]외황(外黃) …… 하였다 : 항우가 진류(陳留)의 외항을 공격하였는데 외항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 며칠 후 항복하자 항우가 노하여 15세 이상 남자들을 성의 동쪽에다 파묻으려 하였다. 이에 외황 영(外黃令) 사인(舍人)의 13세 된 아들이 항우에게 유세하여 외황 백성들을 살렸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5]곽거병(霍去病)이 …… 나갔다 : 곽거병이 18세에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표요교위(剽姚校尉)가 되어 흉노족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련산에까지 출정하여 공을 세운 것은 그가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된 21세 때의 일이다. 기련산은 중국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 경계에 있는 고산(高山)이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太平寰宇記 卷191 匈奴篇》
[주D-006]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 항우는 24세 때 처음 기병(起兵)하여, 진(秦) 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조왕(趙王)을 구하기 위해 오강(烏江)을 건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7]맹자는 …… 않았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나는 40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我四十不動心〕”고 하였다.
[주D-008]범증(范增)이 …… 좋아하였다 : 범증은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여, 나이 70세 때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을 찾아가 진(秦)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9]옛날에 …… 용맹하였으니 :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태사(太師) 상보(尙父)는 당시 매가 날아오르는 듯하였네.〔維師尙父 時維鷹揚〕”라는 구절이 있다. 강 태공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 나라를 정벌한 사실을 가리킨다. 단 그때 그의 나이가 80살이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설인지 알 수 없다.
[주D-010]계유ㆍ갑술년 간 : 영조 29년(1753)과 영조 30년(1754)이다.
[주D-011]지금 : 원문은 ‘今者’인데, 이본에는 ‘今子’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지금 그대는’ 이다.
[주D-012]팽조(彭祖) : 800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등에 소개되어 있다.
[주D-013]너는 …… 슬퍼하느냐 : 원문은 ‘若乃若悲也’인데, 이본에는 ‘若乃何悲也’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너는 어째서 슬퍼하느냐?’이다.
[주D-014]목덕(木德)으로 …… 이래 : 《십팔사략(十八史略)》 첫머리에, “천황씨(天皇氏)는 목덕으로 왕이 되니 세성(歲星 : 목성)이 섭제(攝提), 즉 인방(寅方)에 나타났다.”라고 하였는데, 《십팔사략》에서는 천황씨를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전 중국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초학(初學) 역사 교과서인 《십팔사략》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주D-015]주(周) 나라의 …… 이루어졌고 : 상고(上古)부터 주 나라 때까지의 정통 왕조의 역사를 섭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춘추(春秋)》에서는 일 년의 첫 달을 “춘(春) 왕정월(王正月)”이라 표기하여 주 나라의 왕통을 받들고 있음을 나타냈다. 순수한 역서란 《춘추》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16]마침내 …… 이어졌으며 : 원문은 ‘乃閏于秦’이다. 진 나라와 같이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왕조는 윤달과 같다고 해서 윤통(閏統)이라 폄하(貶下)한다.
[주D-017]팽조는 …… 요절하여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요절한 아이보다 더 오래 산 자가 없으니, 그에 비하면 팽조도 요절한 셈이다.〔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라고 하였다.
[주D-018]반송(盤松)에 …… 되지 : 복령(茯靈)은 곧 버섯의 일종인 복령(茯苓)을 말한다. 송진〔松脂〕이 땅에 스민 지 천 년이 되면 변하여 복령이 되고, 복령이 변하여 호박(琥珀)이 된다고 한다. 《廣東通志 卷52 寶》
[주D-019]삼(蔘)은 …… 으뜸인데 : 원문은 ‘蔘伯羅産’인데, 우리나라 인삼 중에서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을 나삼(羅蔘)이라 하고, 영동(嶺東)에서 나는 것을 산삼(山蔘)이라 하며, 강계(江界)에서 나는 것을 강삼(江蔘)이라 하고, 집에서 재배하는 것을 가삼(家蔘)이라 한다. 《心田考 3 應求漫錄》
[주D-020]동자처럼 …… 있지 : 쌍상투〔雙紒〕는 고대 중국의 예법에 따른 남녀 아동의 머리 모양이다. 《居家雜服攷 卷3 幼服》 조선 시대의 아동은 변발(辮髮)을 하고 있었는데, 연암은 정온(鄭蘊)이나 송시열 등의 선구적 시도를 계승하여 이를 쌍상투로 개혁하고 싶어했다. 《過庭錄》
[주D-021]이리저리 둘러대지만 : 원문은 ‘遷就而爲之’이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서, 대신(大臣)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그에게 분명히 죄가 있어도 그 죄상(罪狀)을 직접 가리켜 말하지 않고 “둘러대어 말함으로써 이를 덮어 준다.〔遷就而爲之諱也〕”고 하였다.
[주D-022]내 …… 되며 : 위엄이 있거나 무시무시한 모습을 용정호목(龍睛虎目)이라 한다.
[주D-023]갓난아기처럼 …… 보존하겠으나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그의 갓난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주D-024]사심(私心)을 …… 것이니 : 원문은 ‘克己復禮 閑邪存誠’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고, 한사존성(閑邪存誠)은 《주역》 건괘(乾卦) 풀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주D-025]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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